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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앙은 끈질겨야 합니다.
본문/벧전1:17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무슨 일이든 어떻게 시작하느냐 보다 어떻게 끝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숭극적인 끝은 마지막에 우리 주님께서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해 주시는 때일 것입니다.
이땅에서의 생이 끝날 때 우리의 전부이신 주님께 칭찬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을 잘 끝마치려면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법을 배워야 합니다. 즉 끈질긴 신앙 정신을 갖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 남자가 배를 타고 강의 서센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젖고 있습니다. 그는 물의 흐름과 정 반대로 나아가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태운 화려한 배들이 종종 그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 큰 배에 탄 사람들은 웃고, 마시며 편안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물살과 싸우는 그 남자를 쳐다보며 비웃었습니다. 큰 배에 탄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 남자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잠시 후 그 남자는 물살을 거슬러 가는 일에 지쳐버렸습니다. 피곤하고 낙심한 그는 노를 내려놓았습니다. 배는 가속도 때문에 잠깐 올라가는 듯했지만 곧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 슬프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뱃머리는 여전히 상류를 향하여 있었지만 배는 이제 강물의 흐름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곧 그 남자는 또 찬척의 커다란 임대용 낚싯배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는 이 배는 다른 배와 달랐습니다. 그의 노 젓는 배처럼 이 낚시배 역시 뱃머리는 상류를 향해 잇었지만 강물의 흐름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그 큰 낚시배가 상류, 즉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배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그룹이 되었습니다. 하류를 향해 가는 다른 낚시배들과 달리, 이 배는 뱃머리가 상류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안타깝게도 계속 아래로 흘러가고만 잇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강은 세상은, 노 젓는 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능하며 살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몸을 뜻합니다. 노 젓는 배에 탄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의 노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큰 임대용 낚싯배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나타내며 강의 흐름은 이 세상의 흐름, 즉 악한 영이 좌우하는 세상 질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남자에게는 은혜의 노를 저어서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힘은 곧 그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힘이 약해져서 점점 싸움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는 필요한 것을 다 가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력이 다하여 노 젓기를 멈추고 맙니다.
그 사람이 노 젓기를 그만두자, 배는 순전히 가속도 때문에 잠깐 앞으로 상류로 움직입니다. 여기서 속임수가 등장합니다. 얼마 동안은 여전히 자신의 삶속에서 열매를 봅니다. 열매 맺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 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긴장감이나 경계심이 없이 편안하게 살면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배는 멈춥니다. 그 다음에 하류로 떠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나중엔 물살을 따라 빠른 속도로 떠내려갑니다. 이 환상의 중요한 부분은, 그의 뱃머리는 여전히 상류를 향해 있지만 그는 물살을 따라 뒤로 내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기독교 신앙의 겉 모습만 가지고 있지만, 살은 세상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2:15-17절에,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결국 바른 배, 즉 그와 같은 다른 “신자들”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큰 낚싯배에 탄 그들은 모두 스스로 교회에 속해 있다는 생각합니다. 그들 또한 강의 상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이야기와 노래와 습관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안주해 버렸기 때문에 편안하며, 세상의 흐름에 좌우하는 악한 영에게 글려갑니다.
이 “기독교의 배”에 탄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 세상에 의해 핍박이나 조롱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때로는 환영을 받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도 바울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한 것처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빌3:14)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방식에 거의 또는 전혀 저향하지 않고 삽니다.
세상에서 행하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악법이나, 반기독교적인 교육감이 전국에서 반기독교적인 교육을 지금2-30년동안 장악하는 데에서 전혀 불의에 대한 저항이 없습니다.
이 낚싯배의 이야기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각 사람은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 가까운가? 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항상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고후13:5/새번역성경)
그런 분들에게 성경은 히12;12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책망과 권면을 하십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5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끝까지 잘 달려가기를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혹여 가다가 지쳐서 노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 표류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기를 눈곱만큼이라고 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며, 사람들이 끝을 잘 맺었을 때와 잘 맺지 못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을 보자,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며, 당대에 가장 지혜롭고,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전 세대와 그후의 많은 세대 가운데 누구도 오르지 못한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집권 후반부에 흔들려서, 손에서 노를 놓아버렸습니다.
솔로몬에게는 여려명의 이방인 아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오직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을 놓고서 엄청난 갈등잉 있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거짓 평화를 유지하려고 여호와께만 충성하지 않고, 자신이 총애하는 아내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을 위해 제단을 쌓고 심지어 숭배하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지만, 그의 자녀들과 손주들은 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에게 맡겨졌던 강력한 통일 왕국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다가 분열되어서, 결국은 끝늘 잘 맺지 못했습니다. 만일 솔로몬이 끈질기게 지조를 지켰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 솔로몬과 세례요한을 비교해 봅시다. 세례요한은 단호하고 굳은 태도로 진리를 붙잡았으며, 용감하게 그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다가 요한도 솔로몬처럼 역경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경우엔 훨씬 더 안좋은 결과가 생길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유대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투옥,고문, 그리고 죽음까지 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혹하고 극단적인 결과가 예상되었는데도, 진리에 대한 요한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삶은 한결 같았고, 그가 선포하는 매시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유산은 솔로몬의 유산에 비해 탁월하였습니다.
우리도 역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헛되고 피상적인 가치와 진지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세상 정사와 권세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합니다. 현혹되기 쉬우며 매혹적입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쳐서 인내심을 버리고, 포기하고, 세상 주류를 따라가도 괸찮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집니다.
우리가 끝까지 완주하려면 반드시 끈질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끈질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어둠의 세계에 진정한 위렵이 되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끈질긴 신앙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끈질김은 단호하고, 집요하고, 굴북하지 않는 자세나 태도를 묘사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뜻을 굽힌다는 것은 좀더 관대하고, 느슨해지는 것, 양보하는 것입니다.
끈질긴의 몇 가지 비숫한 단어는 “확고한, 엄격한, 가혹한, 타협하지 않는, 막을수 없는 완강한, 끈덕진”등이 있습니다.
끈질김은 악하고 완강한 세력을 묘사할 때도 쓸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 단어를 긍정적이고 경건한 의미로 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용감하고 단호하고 주어진 임무를 반드시 끝내는 사람에게 이용서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끈질긴 사람을 어떤 사람도 단념시킬 수가 없습니다.
끈질긴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순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잘 끝마치려고 노력하는 끈질긴 그리스도인은 가장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끈질기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공부도, 그리고 사업이나, 여러 가지 생업에도, 그리고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이런 무딘 신앙으로서는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앞에 신앙의 열정을 남은 생애 동안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처럼 냉냉한 신앙을 성령님께서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시고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끈질긴이 신앙의 미덕을 심어주시기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신앙의 끈질김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그냥 자생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눙력을 주시는 자 안에 거해야 합니다.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작은 인내심을 붙잡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있습니다. 약한 부분을 잘 아십니다. 끈질김은 하나도 없이 모든 면에서 약하고 포기하고 나약한 우리를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을 우리의 이런 행위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안으십니다. 더 깊고 놀라운 일을 원하시고 게획해 놓으셨습니다. 시편에 보시면 시139:16절에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과거에 어떤 경험과, 사건과 사고를 체험했다고 해도, 주님은 그런 우리를 아시고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 산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이 모든 것들은 능히 이길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 끈질긴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이기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또한 히브리서12:1절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잘 달릴 수 있도록 힘주십니다. 그 경주를 마치기 까지 그냥 달려가지 않고 끈질기게 달려갈 것을 원하십니다.
마무리를 잘 하려면 집요함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딤후4:7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는 학업가운데, 재정이나, 건강, 다른 부분에서 어려움을 만날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은 새 힘을 주십니다.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막10:27절)
하나님께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단 예수님이 이 약속에 중요한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절)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려면 끈질긴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한 사람 한분 모두가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원하십니다. 마치 예수님에게 하신 말씀처럼(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3:17)
또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마지막 까지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중요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저와 여러분이 이 믿음 안에 사느냐 그렇게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기를 원해요, 열정적이고, 끈질기게 섬겨본 적이 없어요,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을 고쳐 먹고, 주님앞에 이 문제를 놓고 시간을 내어 간절하게 기도와 말씀 가운데 앉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보기 있나니, 라고 한 말씀처럼, 때로는 어려움을 감내하고, 끝까지 이길을 달려갈 것을 여러분 스스로 다짐해 보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부정적이고, 나약한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단을 여러분에게 항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어둠의 영을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게으름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끈질긴 신앙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던 것처럼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열쇠를 주십니다. 삶에 막힌것들이 다 열리게 됩니다. 어떤 강한 물살에도 끄덕하지 않는 능력을 주십니다.
기 도
여러분 이시간 한가지 기도할 제목은 바로 새롭게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이렇게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거나,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일에 끈질기게 순종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들을 기도 가운데 깨닫고 나의 남은 삶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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