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분강개파(悲憤慷慨派)
임병식 rbs1144@daum.net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을 방일한 후 우려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출처가 거의 일본에서 나온 것들로 양국정상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완승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언론조차 ‘이처럼 일방적인 성과를 내도되는 건가’하고 의아해 하고 있다니 기분이 착잡하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비분강개(悲憤慷慨)을 하게 된다.
비분강개는 슬프고 분해서 의분이 복받치는 것. 그런 인물의 전형으로는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剩餘人間)’ 에서 최익준이 대표적이다. 그는 중학동창생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허구한 날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다. 항상 간호사보다 먼저 나와 청소를 해놓고는 소파에 몸을 눕히고서 신문을 탐독한다.
그러고 나서 원장과 간호사가 출근하면 그날 신문에 보도된 못된 범죄에 대해 핏대를 올려 성토한다. ‘처 죽일 놈’이라느니,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 놈’이라느니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말에 호응을 해주면 더욱 열을 내서 말하고 들은 척도 안하면 횅하니 나가버린다.
그 소설을 생각하면 꼭 내가 그렇지 않는가 한다. 그처럼 어디를 횅하니 나가지는 않지만 혼자서 흥분하여 화를 끓인다.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강제징용자배상 문제에 대해 거론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고, 독도문제와 후꾸시마산 생선 규제문제, 오염수 바다 방출 문제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후꾸시마산 고기와 오염수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고 하나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그저 애매하게 ‘정상 간의 내밀한 대화내용은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라는 애매한 말만 흘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태도가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번 회담의 결과는 여론조사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평가는 5%가 상승한 반면, 한국 대통령의 지지도는 3 %이상이 빠졌다. 우려되는 일이다. 이번 회담결과를 두고 정부에서는 미래를 연 회담이라고 자평한다. 12년 동안 대립과 갈등관계에 있던 두 나라의 관계를 정상화 시켰다고 말한다.
박진 외무부 장관은 강제징용자 배상문제에 대해 국내 수혜기업이 대신 물어주는 제3자 배상방안을 발표하며 우리가 컵에 물을 절반을 채웠으니 나머지는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 반신반의했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듯하다.
우리 측 기대와는 달리 일본은 일언반구의 언급이나 호응의 태도가 없는 것이다. 이로 미뤄보아 물 컵을 걷어 차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지극히 순진한 접근방법이며 허망한 발상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담을 마치고 나서 정부대변인은 '미래'을 얻었다고 했다. 얼마나 할 말이 없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그런 허망한 수식어를 듣자니 기가 막힐 뿐이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개선도 좋고 지소미아 협정, 반도체 협력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추구하려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군사협력은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방위문제는 기존에 채결한 한미군사방위조약이 있고, 일본과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 군사정보를 교환하면 된다. 그런데 3국이 뭉쳐서 군사적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북.중.러가 한 카테고리에 묶일 것이고, 대립은 불가피해질 것이 아닌가. 이것이 북한 핵위협을 막자는 명분이지만 중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5년 내에 반드시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고 한다. 시진핑이 3연임을 달성한 후 당 최고위원회에서 공공연히 병합을 공언을 했다. 그렇다고 보면 거의 침공은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보아야 한다.
그리되면 우리 형편은 어떤가. 한미일이 군사협정에 묶이면 우리는 사면초가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미움을 사는 것은 물론,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최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보듯이 무기는 지원하되 출병을 망실일 것이며 일본은 자국헌법에 명시된 해외출병이 불가함을 들어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어느 나라 병력이 투입이 되겠는가.
그 문제도 심각하지만, 지정학적 위치상 러시아와 중국과 척을 짓는 것도 큰 재앙이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최근에 많이 줄어 들었다 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역량이 세계 4분의 1수준이며 러사아도 주요 교역국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들 나라가 배제된다면 어디서 활로를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 위협인데, 세 나라가 묶여서 무엇이 좋다는 것인가. 미국의 의도에 따른 대중국 압박수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이다.
크게 보아 대의명분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출발선상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위해 서슴없이 빗장을 열어주니 일본도 놀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통 큰 양보를 한 것은 앞을 멀리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뜨악한 판에 화가 나게 하는 것은 깐죽이는 일본의 태도이다. 그들은 우리를 다루기 쉽다며 신이 나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하다.
들리는 말에 일본 우익들은 차제에 한국을 더욱 옥죄어서 납작 엎드리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오염된 수산물도 수입 문을 활짝 열어 제치도록 압박하고 미국이 편을 들어주는 이때에 독도문제도 확실하게 발을 들여놓자고 떠든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야당과 일부 단체에서 거리로 몰려나와 굴욕적인 회담을 철회하라고 외치고 있는데 바라보는 마음이 참담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소설 속에서 행동으로는 무얼 하나 실천한 것이 없는 채익준의 또 다른 친구, ‘실의의 인간’ 최봉우처럼 무기력증에 빠져 지내고 있다. 눈 흘기며 비분강개만 하면서 다만 끌끌 혀만 차고 있다. (2023)
첫댓글 해박한 동북아 정세를 바탕으로 한.일간의 최근 현안을 중심으로 시원한 내용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내린 최종판결을 뒤집은 것도 문제지만, 독도문제, 핵물질 방출, 오염생선 압박,
더구나 삼국의 군사동맹으로 인한 분쟁지역의 파병압박에 내몰릴것이 심히 우려됩니다.
비분강개한 심중을 작품으로 천하에 알리셨으니 가만 앉아계신 것이 아니지요 요즘 글을 쓰는 사람들은 혹여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필화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여 시덥잖은 소재만 다루려는 경향이 지나칩니다 위정자들의 가치관이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합니다
아낙군수의 처지에서 혼자서 분노와 울분을 토한듯 무슨 울림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나라돌아가는 형편이 심히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호시우행이라는 말처럼 나라의 장래를 똑바로 바라보고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잘 챙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