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한국의 탄생화와 부부꽃배달 / 자금우, 산호수, 백량금
♧ 12월 28일. 오늘의 역사와 기념일.
* 1926년 -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 후 순국
♧ 12월 28일. 한국의 탄생화
* 열매가 아름다운 자금우과 식물 : 자금우과 자금우속 11종
* 대표탄생화 : 백량금
* 주요탄생화 : 자금우, 산호수
※ 12월 28일 세계의 탄생화
석류 (Pomagranate) → 6월 20일 한국의 탄생화
1926년 오늘은 나석주열사께서 당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산이었던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순국하신 날입니다. 일본놈들이 열사의 시신을 어찌 처리하였는지 해방 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서울 현충원 무후선열재단에 위패만 봉안되어 있습니다. 무후선열재단은 유관순열사처럼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없는 독립투사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고인의 짧은 삶과 큰 죽음에 삼가 존경과 추모의 예를 갖춥니다.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1년 365일 중 오늘은 362일째의 날입니다. 오늘로 2018년은 99%의 날이 지나가고 남은 날은 이제 1% 입니다. 1년의 시간과 함께 한국의 탄생화도 하루 하루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한국의 탄생화는 지난 1년간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우리에게 산소를 제공하고, 식량이 되어 주고, 약이 되기도 하고, 편안함을 주고,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고 있는 약 17,000종의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생일을 정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싯구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잠깐의 삶을 사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름을 불러줄 친구들은 남부지방과 울릉도에 사는 키 작은 상록 나무들입니다. [자금우], [산호수], [백량금]. 어디에서 한번은 들어봤을 듯한 멋진 이름을 가졌습니다. [자금우과 자금우속]의 같은 가문의 동성동본의 나무들인데도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나무라고는 하지만 키가 한뼘에서 무릎 정도로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아래 땅을 차지하고 옆으로 자라는지라 얼핏보면 풀 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입니다.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익은 빨간 열매를 겨우 내내 달고 있답니다.
[자금우(紫金牛)]의 `자금`은 `부처님의 조각상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뜻한다고 합니다. 부처님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중국에서 한약 본초명을 [자금우]라 정한것을 그대로 쓰고 있답니다. 별명으로는 친구인 [백량금]에 빗대어 [천냥금]이라고 부릅니다. 꽃말도 천냥금의 별명에 맞게 [덕 있는 사람, 부, 재산]입니다.
바다에 사는 `산호`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호수(珊瑚樹)]는 [자금우]와 비슷한데 가지와 잎에 털이 나 있고, 잎가에 톱니가 있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별명은 [털자금우], 꽃말은 [용감, 총명]입니다.
[백량금]은 [자금우]에 비해 키가 조금 더 크고 길쭉한 잎을 가졌습니다. [자금우]의 별명이 [천냥금]인데,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백량금]의 별명은 [만냥금]이랍니다. 꽃말은 [내일의 행복]입니다.
성탄절 철학이야기. [높음과 넓음]. 오늘은 그 네번째 이야기입니다. 우주에서는 `높다`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위와 아래를 정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나로부터 멀다는 것은 `높음`이 아니라 `넓음`을 나타냅니다. 빛의 속도로 달은 1초의 거리에 있고, 태양은 8분, 태양계의 끝인 오르트 구름의 경계까지는 6개월, 우리 은하계의 중심까지는 약 3만년,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까지는 250만년, 우주의 경계까지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약 1천억광년 정도의 거리와 그 거리 만큼의 넓이를 가졌습니다. 물론 빛의 속도록 1천억년을 간다해도 우주의 끝에 닿지는 못합니다. 우리 우주는 빛의 속도 보다도 더 빨리 커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만약에 태양이 달 처럼 가까이 있으면 어찌될까요? 물론 그 뜨거움으로 지구가 불바다가 되겠지만, 크기로만 본다면 지구의 하늘은 태양으로 가득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태양처럼 높이 멀리 있는 하느님을 우리에게로 가까이 끌어내려 낮게 만드는 일입니다.
불경스럽다고요? 철학자의 눈에는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는 일로 보입니다. 우리가 성탄절로 기념하는 예수님의 탄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낮은 하느님은 곧 넓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하느님입니다. 성전에서만 만나는 특별한 하느님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 하느님입니다.
모든 생명은 연대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한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팀에서 함께 경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겼는데 어떤 사람은 질 수는 없습니다. 이겼으면 함께 이긴 것이고 만약에 졌다면 함께 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 구원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구원 받았는데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팔은 구원을 받았는데 다리는 구원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생명의 연대와 함께 생각해보시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