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 예로부터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제주도.
지금도 여자 보다 남자가 많은 것만 빼고는 돌과 바람은 여전하다.
어디 그 뿐이랴. 바람은 물론, 비도 많이 내리고, 안개끼거나 흐린 날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겨울이면 눈도 참 많이 온다.
이런 제주에서 날씨 안좋다고 이런 날 빼고, 저런 날 빼면, 정작 좋은 날 며칠이나 될까.
그러니 제주를 즐기려면 우선 날씨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또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제주섬의 풍광과 분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니 말이다.
요 며칠 눈 내리고, 흐린 날이 계속되더니 어제는 모처럼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맑은 날.
하지만 기온이 낮고 바람이 불어 제법 추운 날이다.
원래 제주올레길 17 코스를 일부 걷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뒤풀이를 하자고 했지만, 최근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세로 모두가 걱정.
그래서 17 코스 전체 구간 걷는 것까지만 하기로 하고, 출발점인 광령1리사무소 마당에 10 명의 제주의 길벗들이 모였다.
잠깐 마스크 내려 서로 인사 나누며 얼굴을 익히고는 10시 조금 남짓해, 광령리사무실을 출발, 종점인 산지천 광장으로 향한다. 사진은 광령1리사무실
오늘 걷기의 개요도. 광령천을 따라 외도까지의 약 1/3은 마을길, 나머지 2/3 구간은 바다길이다.
제주의 하천은 비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 대부분인데 광령천은 겨울인데도 제법 물이 많다.
광령천을 따라 계곡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 경치가 빼어나고 스릴도 만점이라고.
그 계곡 위에 우뚝 자리잡은 집이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멋진 모습이다.
외도까지는 이렇게 멀리 바다가 바라보이는 완만한 내리막길
그 길엔 콜라비가 크고 싱싱하게 여물어 가고
제주 화산석 돌담엔 아직 붉게 물든 담쟁이 넝쿨이 남아있고
제주수선화도 피었다. 지금 한라산엔 눈이 깊게 쌓였으니 제주의 겨울은 봄, 가을, 겨울, 3 계절의 공존이랄 수 있다.
외도의 월대천에 도착
우리는 이 곳 카페 뒤편에서 바람을 피하며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 빼고는 오늘의 유일한 단 한번의 휴식이었다는.ㅎㅎ
외도의 월대천은 제주섬의 북쪽 바다로 흘러가는 하천 중에서 가장 수량이 많은 곳이다.
저 하천변에 꽃까지 피어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며 머리 속으로 잠시 봄날을 그려본다.
드디어 바다에 도착. 바닷바람은 거칠어 파도가 장관을 이루고, 우리는 잠시 귀 기울여 알작지해안의 몽돌이 파도에 구르는 소리를 듣는다.
멀리 이호해변의 트로이목마 같은 등대가 보이기 시작.
오늘 길을 걸으며 길벗님들과 이런 저런 제주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의 관심사는 주로 코로나 걱정.
어서 코로나가 빨리 끝나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오후 1시경 도두항에 도착한다. 오늘 걷기 구간의 3/5 정도 지점.
점심식사는 생우럭 매운탕. 육지와는 달리 고추장, 고추가루가 안들어가고 된장으로만 끓여낸 제주식입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식사 전까진 끝까지 마스크 착용, 식사 중엔 철저한 입다물기.
두 사람씩 상을 같이 했지만 정면이 아닌 서로 어긋나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ㅎㅎ
식사 후 도두봉에 올라
겨울바람에 말라가는 억새밭도 만나고
제주공항 너머 멀리 눈 덮힌 한라산도 바라봅니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두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늘 평화스럽고 눈이 시원합니다.
제주공항 쪽으로 가는 바다길엔 파도가 세서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또 그 곳엔 예전에 제주 사람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돌로 축조해 놓은 원담이 보이네요.
원담은 밀물 때 담장으로 들어간 물고기가 바닷물이 빠지면 갇히게 되니, 그때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고기잡이 방법이랍니다.
본격적인 염전이 없던 제주에선 이렇게 너럭바위에 소금물을 가두어 말려 소금을 생산했다는데 이를 '빌레' 라고 합니다.
바람은 불지만 날씨는 정말 맑고, 시야가 깨끗해 멀리 관탈도와 육지까지 보이는 날.
이렇게 바다길을 따라 제주 원도심에 도착합니다.
관덕정에 이르러선 잠시 제주에서 관덕정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이재수의 난과 4.3의 아픔을 되새겨 보기도 했지요.
5시경 동문로터리에 도착해, 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행과 헤어지고, 남은 분들은 끝 지점인 산지천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점심시간과 휴식시간 포함해 약 7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정담 나누고, 각자의 제주살이 얘기도 하자니 동질감으로 한층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낯선 제주에 내려온 사연도, 또 살아가는 모습도 각자 다르지만 분명한 건 제주가 좋아서 이 곳에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자주 걸으며 제주를 맘껏 즐기고, 또 서로 의지하고 위로받는 좋은 사이가 되길 바라봅니다.
첫댓글 지나번 출장으로 다녀온제주 서귀포부근길을 걸었는데 새롭고 신선함이었습니다.
오면서 생각한건 현직은퇴하면 한달제주살이 하면서 돌아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걷고계신 훈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번 재주까지 오셨는데 제가 일이 있어 만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제주 한달살이, 정말 많이들 오세요.
꼭 한번 오셔서 올레길 전구간 걷고, 한라산과 좋은 숲길도 걸으시길요.^^
사진만 봐서는 어디 외국이라도 되는듯이 생소하고 아름답습니다.
발품 안팔고 구경 잘했습니다.
멀리 뵈이는 훈장님도 세월의 흔적이....
제주의 겨울은 꽃과 초록이 계속되니 사실 봄과 공존이지요.
하지만 또 오늘 같이 눈보라 몰아치면 육지 보다 더 춥고.
그리고 저라고 어디 세월을 비껴갈 수 있겠습니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