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았다지만 이래서야 쓰겠는가!
솔향 남상선/수필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요란스럽던 매미 소리가 한풀 꺾인 듯하다. 그런가 하면 조석으로 처량한 울음 소리를 내는 귀뚜라미의 목청이 어쩌면 배톤 터치라도 한 듯싶다. 매미 소리는 작아지고 실솔(蟋蟀:귀뚜라마)의 처량한 울음은 목청을 돋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기온이어서인지 수은주 온도는 한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고 있다.
날씨가 무더워서인지 바닷가며 산속의 나무 그늘이 그리웠다. 이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친구가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운일암 반일암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 했다. 거기에 가 본 지는 꽤 오랜 세월 - 여러 해가 되었건만 또 한 번 발걸음이라도 하고픈 충동이 이는 절경이었던지라 그러자고 했다. 기암절벽에 천혜적 산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어서 잘 되었다싶어 따라 나섰다.
셋이 타고 있는 승용차는 지치지도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엔 운일암·반일암, 용소바위, 쪽두리바위, 천렵바위, 대불바위 같은 집채 만 한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전에 갔을 때는 산자락에서 솟구치는 맑고 시원한 냉천수가 사이사이를 휘감아 흐르는 계곡에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의 절경이었는데, 지금은 어인 일인지 물이 마른 곳도 있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시장기가 든 데다가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봤다. 주차장 근처라 그런지 보이는 식당은 두 군 데밖에 없었다. 맛 집을 찾아 시장기를 달래 보려 했던 생각은 공연한 기대인 것 같았다. 옥수수 장수의 포장마차만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10분 정도 골목을 누비고 좋은 식당을 찾아봤다. 상의 끝에 그래도 괜찮은 식당이다 싶은 매운탕 집에 낙점을 찍었다.
식당 마담은 할머니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할멈보다 연하인 70대 초반 목수인데 일하시느라 출장 중이라 했다.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여러 메뉴가 있었으나‘매운탕 중 4만 5천원, 매운탕 대 6만원’에 시선이 집중되는 거였다. 매운탕 중(中)이면 우리 일행 3인에 적당할 것 같이 매운탕 중을 시켰다.
기다리던 매운탕이 나왔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대자 매운탕이 우리 식탁에 놓이고 식당 마담 할멈까지 우리 일행 옆에 공기 밥을 들고 와 식사를 하는 게 아닌가! 양해 한 마디 구한 적 없던 일이 생긴 거였다.
관광 간 기분 망칠 수 없어 이백의‘산중문답’에 나오는‘왜 사냐건 웃지요(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 답으로 그냥 웃는다,)’를 생각하고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맛있게 먹어야 할 시래기 매운탕이 제 맛이 아닌 것도 같았다. 점심을 먹었지만 배가 고파 포장마차 옥수수를 사다 먹었다.
계산할 때가 되었다. 현금을 달라는 거였다. 현금이 없어 카드 계산을 하는데, 5만 원 영수증을 끊어 주는 거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매운탕 4만 5천원에 공기 밥 3개 3천원, 세금 2천원 해서 5만원이라는 거였다. 일거수일투족이 닳고 닳아서 돈만 아는 할멈이었다.
"민첩혜일(敏捷慧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눈치 빠르고 약삭빠르다’는 의미이니
빠른 대처 능력과 영리함을 말함에 앞서 지나치게 약삭빠른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이리라.
'재빠르고 기민하다'는 "민첩(敏捷)"도,‘약삭빠르고 영리하다'는 "혜일(慧黠)"도
좋게 쓸 수 있는 단어이건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말로 탈바꿈해서야 되겠는가!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나이가 들면서 오욕칠정의 노예로 속화(俗化) 되기 쉽다.
또 닳고 닳아서 순수성을 잃어가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연륜을 더하면서 가난한 부자로,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분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받는 즐거움보다는 주는 기쁨으로, 베풀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러할진대
나이로 닳고 닳아
인생 속물로 간주되는
비판의 대상으로 살아서야 쓰겠는가!
‘물고기 한 마리가 물을 흐리게 한다,’는 일어탁수(一魚濁水)라는 말도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가게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관광지에서 이래서야 쓰겠는가!
‘닳고 닳았다지만 이래서야 쓰겠는가!’
'덕으로써 이웃이 된다.’는,
‘여덕위린(與德爲隣)’이란 말도 있다.
헤쳐가기 힘든 인생세파라지만
세인들은 이 단어 앞에 무색한 얼굴이 돼선 아니 되겠다.
첫댓글 멀쩡한 사람도 돈 앞에는 추해지는 경우가 참 많네요. 관광객을 상대로 그렇게 장사를 하면 안될 텐데, 아쉬운 가게입니다.
염치도 교양도 없는
할머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