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기(조영연)가 펴낸 책 속의 지삼치산성(398쪽에서) 부분)
(산성은 수로봉(水路峯) 정상을 중심으로 하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라는데)
(무주군 부남면과 진안군 용담댐 일원의 금강수계)
(부당초교 앞에서 37번 국도)
(지삼치고개 정상에서:충남 금산군과 전북 무주군과의 경계)
(지삼치고개 정상에서:충남 금산군과 전북 무주군과의 경계)
(면소재지도 아닌데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부당초등학교
학교 뒤가 지심골이다 )
(래프팅연습장이 되어버린 금강변 : 감동 부락 앞, 돌상어 복원지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 중 개티마을 전투와 관련있는 자지산성이 뒤로 3개가 뾰족하게 보인다.. 난들 앞에서)
(자지성 동쪽끝자락에 부엉산이 있고 지금은 인공폭포가 흘러내린다.
바로 아래로 금강이 흐른다.)
(도리뱅뱅이: 이 근처 금강변의 별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은 음식이다)
( 여기 땅이름이 ‘난들’인데, 예쁜 우리말이 한자말 낙안(落雁)으로 둔갑한다. 平沙落雁이란말인가? )
(‘난들’ 마을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 다슬기(올갱이)잡는 아낙네도 있고)
(부엉산 밑으로 굴길이 뚫리고, 강건너는 충북 영동군 갈기산 줄기)
(산과 강은 서로 부여안고 흘러간다.)
(한여름의 자귀나무)
(밤에는 금실좋은 부부처럼 두 잎이 합해진다해서 합환수(合歡樹)라고도 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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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아침 9시에 대전시교육청 동문밖을 출발한다.
금산군과 전북 무주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삼치고개 서쪽능선에 있는 지삼치산성을 찾아 가는 길이다.
자료도 별로 없고, 낯설고 흔적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고성을 더운 여름에 풀숲을 헤치며 찾는 것도 무리인 듯, 가급적 안전한 답사방법을 찾아 나선다. 대전서 추부를 거쳐 금산읍내를 지난다.
무주로 가는 37번 국도 (과거 지도 690번)로 들어서면 부리면 양곡리에 505미터 높이의 수로봉(水路峰)이 있고 산 정상을 중심으로 테뫼식 석축산성이 축조되어있다고 한다(최병화의 공주대 석사논문에서). 성벽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다만 북쪽에 성벽 석재로 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성지기의 산성 엣세이(398쪽)에 의하면, 지삼치산성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와 (전북)무주군 가당리 경계에 있다고 적고 있다. 금산군청 발행의 금산 산하(1982)와 금산군지에 지삼치 고개의 테뫼성으로 2,300미터의 백제계 석성으로 기록된 것 밖에 없다고 하면서 과연 2km가 넘는 큰 성이었는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지삼치 고개를 넘으니 전북 무주군 관내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고개 아래로 가니 오른쪽으로 부남가는 길 표지판과 함께 동네 안에 초등학교(부당초등학교)가 보인다. 사람찾기 어려운 시골 사정인지라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냥 하평당까지 내쳐 올라 간다. 마침 버스정류소 안에 할머니 셋이 있어 몇 마디 물어봐도 신통치 않다. 지심재니,한티고개가 있다는 둥, 다시 되돌려 부당초등학교까지 내려와서는 교내에 주차한다. 마침 한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지삼재 고개가 맞단다.
고개로 이어지는 학교 뒤 골짜기가 지삼골이란다.
별 소득없이 다시 지삼재 고개마루로 되돌아 올라와서 접근로를 찾아본다. 고개 옆으로 난 대전- 통영간 고속국도로는 지나다니는 차량소음이 심한데, 도로 양옆으로는 보호 철망이 울타리 쳐져 있어 건너편 산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등산객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야생동물에게는 생존의 문제이리라는 것을 절실히 실감한다. 주변 지형을 확인한 후 다시 고개를 무주쪽으로되짚어 내려온다. 부남면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선다. 왼편으로 푸른 금강물이 질펀한데 래푸팅 안내가 보이고 보트를 타고 훈련 중인 사람들도 보인다. 굴암리이다. 금강과 절벽이 서로 엇갈려가며 감돌아 흐르는 곳 경치가 빼어나다. 대신 길은 사납기가 구절양장 같다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깊은 오지를 지나고 고개를 넘고 대류리, 대티 동네를 지나친다.
지삼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본 산 능선, 지삼치 산성을 어림해본다.
부당초등학교 뒤로 지삼골(지심골이라고 하는데)
금강 물줄기를 피하면 고개가 나타나고, 고개를 내려가면 다시 금강을 만난다. 숨바꼭질이다.
(전북)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를 지난다. 대문바위에 소나무가 아름답다고 했더니 이내 부남터널이다. 터널을 지나 감동 마을까지 올라간다.
감동을 주는 마을에는 여름 야영객을 맞이한다는 푯말이 보인다.
잠시 마을 정자에 앉아 목을 축이고 간식을 나눈다.
6.25 한국전쟁 때 미군 딘 소장이 대전 전투에서 후퇴하면서 대구로 간다고 한 것이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이곳 부남에서 생포되는 불상사가 일어났음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감동 마을 앞에 너른 금강물이 보인다.
그곳은 돌상어 복원지이라는 안내판도 서 있다.
돌상어라니? 잉어과의 고기라는데 희귀종이다.
고개 너머가 용담댐이라서인지 (진안)용담댐과 연계해서 여름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차를 돌려 새마을 동네를 넘어가니 용담댐이 보인다. 금산방면으로 지나가다 635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지난번 백령성에서 보았던 지방도로 번호, 조수석의 산지기가 운전 중인 성지기한테 오른쪽으로 가자고 손으로 특유의 신호를 넣는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니 우리가 아까 왔던 부남으로 가는 길과 다시 만난다. 지형 학습을 제대로 시켜준 셈이다. 한참 가다가 고개를 넘어 내려가니 직진 대신에 이번에는 다시 왼쪽으로 틀어서 가잔다. 한티고개다. 고개를 내려가니 올 적에 들렸던 할머니 세분이 앉아있던 버스정류소다. 다시 부당초등학교를 지나 지삼치 고개로 올라선다.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는데, 어데가 좋을까? 산성 답사 대신에 금강 상류와 그 지형을 샅샅이 드라이브했으니 이제 금강 어죽이라도 먹어야 하겠다. 꿩 대신 닭이라고 산성 답사를 못하니 그 대신 산성과 관련된 주변 지형과 교통로를 음미하는 것도 더운 여름에는 괜찮은 답사 방법이라고 위안하며 차창 밖으로 바람을 쐰다.
산지기만 아는 길로 요리조리 안내하더니 결국은 제원면 소재지로 가는 길과 만난다. 제원역의 세마대 글씨도 보이고, 봉황천도 건넌다. 좌측 뾰족한 세봉우리에는 자지성도 있는데 보고 싶어 하는 작은 산지기에게 험한 곳이라 둘러대고는 가을날 날 좋은 때 가보기로 한다. 금강변에 이르니 오른쪽으로 저곡리산성이 나타난다. 산성 바로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이곳 개티에서 싸우다 전사한 전라감사 권율 장군의 사촌형인 권종 금산군수의 비각도 있는데 그냥 다리를 건넌다.
영동 양산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도로 공사 때문에 곳곳이 파여 있다. 역사적인 길들이 새로운 문명의 요구에 따른 신식 길 때문에 본모습을 잃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기만 하다.
자주 들리던 곳에 들려 어죽을 시켜 먹는다. 도리뱅뱅이도 먹어본다.
식후경이라, 강 건너 부엉산에서 내리는 인공폭포는 멈췄지만, 그 아래로 난 강변산책길을 따라 산책 겸해서 나선다.
부엉산 서쪽 끝자락으로 자지성의 세 봉우리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금강에서는 한 아낙네가 다슬기(올갱이)를 잡느라 더운 줄도 잊은 채 열중하고 있다.
장마철에는 얼마나 강물이 불어날까? 지금이 가장 물이 적은 갈수기인데, 신라군이 올적에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올 적에도 여름철이었을 텐데, 이 강을 어떻게 건넜을까. 자지성에서 보았던 짱돌크기의 강돌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산책로를 따라 굴길을 뚫는 공사현장까지 다가가 본다.
강 건너편으로는 월영봉과 갈기산 줄기가 코앞까지 막아선듯한데 강줄기는 이편 바위산 뒤로 급히 꺾어서 숨어버린다.
다시 되돌아 와서 차를 타고 제원으로 나와서 서대산 기슭 아래로 달린다. 봄철이라면 활짝펴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을 벚나무길을 달려 마전 요광리를 지나 대전으로 돌아온다.
장수 뜬봉샘에서 시작한 금강 줄기가 어떻게 계룡산 줄기를 휘돌아 수태극을 이루고 있는지를 확연하게 알게 된다. 산태극 수태극을 이루고 있는 곳, 요처(新都內)에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도읍지를 정했는데, 지금은 다만 정감록의 비결문 읽는 소리만이 바람결에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