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인 문인록(門人錄)은 선생의 문하생 167명의 인명(字, 生年, 本貫)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후손 수원백씨 48명, 장흥위씨 34명, 영광김씨 25명, 인천이씨 17명 등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최연장자 백기선의 생년은 1887년(丁亥), 최연소자 백용진(손자)의 생년은 1933년(癸酉)으로, 최연장자는 71세, 최연소자는 25세 연령 때였다. 선생의 혼(魂)이 서려 있는 죽림정사는 1990중반 년에 주변 산불로 전소(全燒)되어 현존하지 않아 아쉽이 남는다.
백씨문중 후손들은 이농(離農)에 따른 농촌 인구 감소, 제향문화 변화에 따라 입향조 이하 선조의 제향을 고민해오다가 세일제합사(歲一祭合祀)하기로 의결하였다. 후손 주원(추진위원장), 종면(총무), 은준(감사), 승정, 한주, 광준 등이 주도하였다. 통덕랑공(휘 진)의 제위답을 매매한 40,000,000원과 부령공파, 진사공파, 낭청공파 3개 종중에서 60,000,000원 등 100,000,000원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또 후손의 헌성금, 의무금(1位당 500,000원) 320,000,000원 등 총 420,000,000원 이상의 문중 재원(財源)을 마련하였다.
상금마을의 수원백씨 가현재(駕峴齋)는 부산면 기동, 운암공파종중 저존각을 모델로 벤치마킹한 사례입니다..
다만, 한옥이 아닌 현대식 콘크리트 형태의 건물입니다.^^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의 옛발자취와 장흥 상금마을 수원백씨 숨겨진 이야기를 잘보고 갑니다.
수원백씨 사우 진수재와 상금마을에 대해 잘 알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