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새 주소 / 권윤영
“갑자기 항암치료 일정이 잡혔어. 이번 모임에 나가기는 어려울 거 같아.”
“컨디션이 좋아질 때 모이면 되지. 다음 주쯤 내가 갈게.”
모임에 참석하고 있을 때 5년째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M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같은 업종의 동료로 만난 20년 지기 친구다. 함께 일하며 뜻이 맞는 또래 네 명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어 식사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우리들은 공동 관심사로 인해 만나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모두 개성이 강했으나 의외로 조합이 잘 맞았다.
어느 날 그녀가 폐암 진단을 받게 되자 모임은 자연스럽게 미루어지곤 했다. 그녀의 투병이 길어지자, 여행은 못 가더라도 매달 한 번씩이라도 만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친구들이 서로 돌아가며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다. 이번엔 M이 모임 장소를 정할 차례였다. 그녀는 내게 자기 대신 모임 주선을 해달라 연락을 한 것이었다. M의 안부도 살필 겸 만났던 모임인지라 컨디션이 좋을 때 만나기로 하고 난 친구의 건강이 걱정되어 집으로 직접 찾아가겠다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M은 폐암 진단 이후 몇 차례 수술을 받으려 했으나 암의 크기나 위치로 보아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그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M은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항암치료를 잘 견디며 예전만큼 왕성한 활동은 아니었으나 생업을 잘 유지해 갔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체중이 줄고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했으나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5년이 지나자 그녀는 더이상 환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환자가 아닌 암과 함께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친구일 뿐이었다. 가끔 힘내라는 안부 전화와 그녀의 일정을 배려하며 모임을 이어가고 각자의 생활을 영위해 갔다.
내게 모임 주선을 부탁하던 전화가 마지막 통화였다. 하필 방문하려 했던 그 주는 강추위가 몰아쳐 다소나마 날이 풀리면 찾아가려 미루던 중이었다. 그런데 부고장이 서둘러 도착한 것이다. 멍했다. 며칠 전 통화했던 음성이 생생한데 이젠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후회 막심했다. 통화 후 바로 만났어야 했는데….
장례식장의 M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딸의 결혼식에 혼주로 당당히 섰던 날의 모습이었다. 곱게 차려입은 그날의 모습은 우아하고 건강해 보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영정 사진으로 마주 대하게 된 것이다. 사진을 보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친구가 떠났다는 사실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문득 ‘이젠 친구들을 하나둘 보내야 하는 나이가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들어 죽음이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온다면 준비된 죽음을 마주하고 싶었다. 천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다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는 삶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미완의 삶과 다르지 않겠지. 당장 죽더라도 ‘그동안 잘 살았다.’라고 자족하며 조용히 나의 심신을 놓아주고 싶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한순간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에 나는 당황했고 그 충격에 나의 일상은 흔들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무심한 행동을 하고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한 일상을 누렸다. 인간 존재의 실존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그 시절 그의 행동들은 충격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후 재판을 받을 때 그러한 행동은 뫼르소를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인식하게 해 사형 구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창 시절 소설을 읽으며 ‘뫼르소’의 행동에 당황하고 나 또한 그 배심원들과 같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는 충격이었던 ‘뫼르소’의 그러한 무심함은 이제 생각해 보니, 냉담함이라기보다는 무의미한 관습과 규범이 강요되는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형태의 저항이었으리라. 삶이 유한하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
며칠 후 친구의 납골당 주소가 문자로 왔다. 발인날 분주한 업무와 마음이 힘들어 화장터까지 배웅하지 못했던 터였다. 아쉬운 마음에 부탁했던 그녀의 주소가 도착한 것이다. 문자만 바라볼 뿐 아무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M의 집에 놀러 갈 때면 아파트 호수가 헷갈려 전화번호 옆에 기록해 놓았다. 이제 바뀐 그녀의 주소를 어디에 적어야 할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필요 없어진 그녀의 주소를 새 주소로 바꿔 놓아야 할까. 아니면 전화번호를 지우고 납골당 주소만을 메모장에 남겨야 할까.
문자를 보관한 채 며칠째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언제쯤 그녀의 주소를 제대로 기록해 놓을지 하루하루 미루고만 있다. 아직은 그녀의 새로운 주소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문득 용기가 생기면 그녀의 새 주소를 기록하고 집들이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야지. 유독 사람 좋아하는 그녀는 목마른 기다림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새집에 잘 안주해 있는 M을 만나게 되면 그 마음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