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을 새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연금술(하)
최광희 박사
(상편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하여 원재료인 액체, 즉 나프타로 되돌리는 열분해 연금술을 살펴보았다.)
4. 액체 기름이 단단한 플라스틱이 되기까지
화학 공장으로 건너간 액체 상태의 나프타는 단계별 가공을 거치면 우리 눈에 익숙한 형태로 변모한다. 먼저, 액체 나프타를 800°C의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충격을 가해 분자 고리를 잘게 쪼갠다. 이 과정을 크래킹(Cracking)이라고 하는데, 이때 액체였던 기름이 순식간에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으로 분리된다.
이 가스 성분들을 다시 화학 반응을 통해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서로 이어 붙이면 끈적끈적한 액체를 거쳐 마침내 단단한 고체로 굳어진다. 이를 공장에서 다루기 좋게 쌀알 크기로 썰어낸 것이 플라스틱 원료, 즉 ‘펠릿(Pellet)’이다. 플라스틱 공장에서는 이 펠릿을 열로 녹여 사출 틀에 찍어냄으로써 각종 플라스틱 용기를 만든다.
5. 원유보다 비싼데도 여기에 투자하는 이유
그렇다면 폐플라스틱 재활용의 경제성은 어떨까? 가성비만 비교하면 원유에서 나프타를 얻는 것이 폐플라스틱을 정제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원유는 중동 등에서 바다를 건너 수천 킬로미터를 실어 오므로 많은 물류비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유는 대량 생산, 즉 ‘규모의 경제’를 무기로 삼는다. 파이프로 콸콸 뽑아 배에 싣고 파이프로 내리는 전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어 원유의 물류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반면 폐플라스틱은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모아야 하고, 사람의 손이나 선별 기계로 이물질을 씻고 잘게 부수어야 하므로 ‘수거와 분류’에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이 수천억 원씩 투자해 이 열분해 공장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환경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자선 사업이 아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비즈니스 계산과 전 세계적인 ‘규제의 반전’이 숨어 있다.
첫째, 원료를 확보할 때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는다. 재활용 기업들은 폐플라스틱을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나 수거 업체로부터 쓰레기를 처리해 주는 처리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시작부터 돈을 벌고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력한 프리미엄 시장을 만들었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앞으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때 재활용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섞지 않으면 엄청난 벌금을 물리는 것을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기업들은 제품을 팔기 위해 재활용 기름을 찾기 시작했다. 수요가 많다 보니, 폐플라스틱에서 짜낸 ‘친환경 기름’은 땅에서 캔 원유 기름보다 시장에서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셋째, 탄소 배출권 거래의 보너스다. 원유를 정제할 때는 엄청난 탄소 배출 비용을 감당해야 하지만, 폐플라스틱 열분해는 쓰레기를 원천적으로 줄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탄소 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에서는 이 배출권을 팔아 많은 추가 수익을 올린다. 결국 기술 발전으로 공정 에너지는 줄어들고, 규제 덕분에 판매 가격은 치솟으니, 플라스틱 재활용은 이제 황금알을 낳는 블루오션 시장이 된 것이다.
결론: 지구를 살리는 무한 동력의 시대
결국 플라스틱의 생애 주기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순환이 반복된다. 폐플라스틱 → 저온 열분해 → 나프타(액체 기름) → 에틸렌(가스) → 펠릿(알갱이) → 새 플라스틱
사용하고 버린 쓰레기를 원자 단위까지 쪼갰다가 다시 결합하는 이 화학적 재활용 덕분에, 새로 태어난 플라스틱은 원유로 만든 플라스틱과 비교해도 강도, 투명도, 위생 상태가 훌륭하다. 충분한 정제와 인증 과정을 거치면 식품 용기까지도 활용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무한 반복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분해하는 데 몇백 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간의 지혜와 첨단 기술은 그 몇백 년의 시간을 단 몇 시간의 열분해 공정으로 단축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미 사용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계속해서 돌려쓰는 ‘플라스틱 무한 순환’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여정은, 인류에게 이런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릴 위대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