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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여전한 기다림”
□ 우리 시대에서 이사야서 64:1-9 읽기 □
이종록 (장로회대전신학교 교수, 대전선창장로교회 협동목사・구약학)
들어가는 말: 오래된 기다림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정서는 ‘오랜 기다림’이다. 2500년, 아니 그 이상 오랜 세월을 이어온 그런 기다림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아리게 하는 그런 기다림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강림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이 글귀 하나하나에서 짙게 묻어난다.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탄원과 간구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또한 지금껏 세상을 고통 속에서 살다간 모든 이들의 탄원과 간구이기도 하며, 지금 이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이들의 기다림이기도 하다. 그런 기다림 속에서, 그 애절한 탄원과 간구 속에서, 이 본문 속에서,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된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천상병,‘약속’
천상병의 시는 본문의 어조보다는 담담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서도 우리는 안타까우리만치 오래된 기다림을 읽는다. 이런 기다림은 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무슨 기다림인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물음들을 풀어보자.
최근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국제기구들] 자이르사태 SOS…1백여만 난민 사망위기
자이르 내전이 급격히 악화, 구호조치 차단으로 1백여만명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9일 유엔과 미국은 내전지역에 특사를 파견키로 했으며, 국제구호기구들은 긴급구호와 유엔개입을 촉구했다. 유엔은 동부 자이르의 난민 이동상황 파악을 위해 서방국들에게 이 지역 위성사진제공을 긴급 호소했으며, 미국주재 캐나다 대사인 레이몽 크레티엥을 다음달 6일 현지로 파견키로 했다. 미국도 다음달 7-8일 제임스 게이머슨 유럽주둔군 사령관을 자이르와 르완다에 보내 상황평가에 나설 것으로 외교관들이 전했다. 이날 유럽연합(EU)과 국제구호기구들은 제네바에서 프랑스의 자비에르 엠마누엘리 구호담당장관 주재로 대규모 난민사태에 대한 대책을 갖고 특히 경각에 달린 키부지역의 후투족 난민 50여만명의 생존대책 마련방안을 논의했다. 엠마 보니노 EU인도구호 담당 집행위원도 브뤼셀에서 회견을 갖고 긴급구호와 유엔 안보리의 개입을 촉구하고, 당장 후투족 난민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1백여만명이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미 50여만명의 난민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관계자는 고마지역에 르완다에서 밀려들어온 후투족 난민 40여만명이 접근 불가능의 고립상태에 놓여있으며, 우비라, 바카부 등에도 30여만명이 피난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이르군은 투치족 반군과의 전투외에도 르완다군과도 양국 접경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현지 구호요원들이 밝혔다. 양국군은 자이르의 부카부와 르완다의 시안구구 사이에 위치한 접경지역에서 충돌을 벌였으며, 이에따라 시안구구에 있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구호관들도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996년 10월 30일>
이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니. 얼마나 촉급한 상황인가?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을 누가 구해줄 것인가? 그들은 왜 그런 비참한 상황에 처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처럼 죽음이 예사로운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모른 체 할 수 없는 그런 지구촌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사야서 64장 1-9절은 옛날 사람들의 탄원과 간구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동등한 정서로 읽혀지는 본문이다. 그러기에 본문을 깊이 읽어볼 이유가 있다.
본문연구: 주여 강림하소서
구조
본문은 내용파악이 그리 어렵지 않은 글이다. 굳이 히브리어를 보지 않아도 누구나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본문구조를 보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간구
1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2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과거역사
3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
5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간구
8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이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9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문맥
이사야서 64장 1-9절은 크게 보면 이사야서 56-66장에 속하고, 범위를 약간 좁히면 63-66장에 속하고, 더 좁히면 63:15-64:12에 속한다. 63-66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이다.
63장 1-14절 하나님
63장 15절- 64장 12절 이스라엘
65장 1절-66장 24절 하나님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63장 15절-64장 12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하는 탄원이며, 대칭구조를 갖는다.
가 63장 15-17절 간구(의문문)
나 63장 18-19절 현재상황(성전이 유린당함)
다 64장 1-2절 간구
라 64장 3-4절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
라‘ 64장 5-7절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
다‘ 64장 8-9절 간구
나‘ 64장 10-11절 현재상황(성전이 불탐)
가‘ 64장 12절 간구(의문문)
하나님설득
이스라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그 상황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한다. 이러한 간구에서 본문기자는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수사력을 발휘한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설득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도록 하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먼저 본문기자는 하나님을 충동한다. 하나님께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한 번 세상에 나타나셔서 사람들을 놀래켜보라고 촉구한다.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64장 1-2절).
이 구절을 풀어서 읽어보자. “주께서 만약 하늘을 찢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같게 하시기만 하면, 주의 대적들이 주의 이름의 높음을 새롭게 알고 열방들이 주의 앞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본문기자는 이렇듯 하나님을 은근히 부추기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63장 15절에서는 하나님을 은근히 야유하는 식으로 충동한다.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
이것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행동케 하려는 수사적인 기교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을 쓰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강림하시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면서 ‘강림’과 ‘진동’이라는 말이 여러번 쓰인다. 강림은 히브리어로 ‘야라드’인데, 1절과 3절에 나온다. 그리고 진동은 ‘잘랄’이라는 동사가 1절, 3절에 쓰이고, ‘라가즈’가 2절에 쓰였다. 그래서 ‘진동’의 의미를 가진 동사가 모두 3번 나온다. ‘잘랄’은 사사기 5장 5절, 이사야 64장 1절, 3절에서 ‘진동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드보라의 노래인 사사기 5장을 보자.
4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라아스)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5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잘랄).
‘잘랄’은 하나님의 강림으로 인한 산의 진동을 말하는 동사이다. ‘산의 진동’하면 출애굽이 연상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과거사역은 바로 출애굽이다. 본문기자는 새로운 출애굽, 즉 새로운 엑소더스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63장 1절과 연결해서 읽어보면, 연관성을 발견할 것이다.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본문기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과거역사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본문기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도 분명하게 알고 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다. 과거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서 오늘에 다시 살려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죄고백
하나님의 강림을 충동하고, 이스라엘의 과거역사, 즉 출애굽의 역사를 암시하는 말을 함으로써 그분의 과거사역을 이야기한 다음, 5-7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대했건만 이스라엘이 범죄했다는 것이다. 본문기자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고 이스라엘이 악을 범해서 심판을 당했으며, 이스라엘은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범죄한 이스라엘이 심판받은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여전히 죄악을 행하고 있음을 뼈아프게 자인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해도,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밝히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지름길이다.
관계확인
이렇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나서, 본문은 극적인 전환을 한다.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단어는 ‘그러나’이다. 비록 그들이 범죄해서 심판받은 것이 당연하다고 해도, 그들을 구원해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간구하면서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강조한다. 본문기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하며, 이스라엘을 그 자녀와 백성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지으신 자로 말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밝힌다. 이렇게 보면, 본문은 논리적으로 아주 짜임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과거사역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이 능히 그런 능력이 있는 분임을 말하고, 그런 다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심판의 불가피성을 말해놓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사력은 듣는 사람을 설득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고, 또 본문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이 어서 끝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밖에 없는 관계에 있는 분임을 밝힘으로써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촉구한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64장 8절).
이러한 말은 63장 16절에도 나온다.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본문 기자는 이러한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는 것이 당연함을 말한다.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64장 9절).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절규를 듣는 듯 하다. ‘보시옵소서’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주시는 것이 당연하거늘 왜 지체하고 있는지를 따지듯이 묻는다. 하지만 이것은 안하무인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자세이다. 이런 모습은 64장 12절에서도 볼 수 있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하시리이까 주께서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판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이 구절은 63장 17절을 연상시킨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컨대 주의 종들 곧 주의 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이며 주의 산업인 지파임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야할 당위성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강조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려움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부모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백성을 돌보지 않는 일이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팽개치는 행위임을 역설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심판을 당하고 있고, 그것이 비록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 속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결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담겨 있다.
상황-전쟁
그런데 도대체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에 처했길래 하나님의 구원을 그토록 간구하고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그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수시로 불러댄다. “여호와여”라는 호격이 64장 8절, 9절, 12절에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쿨라누)가 6절, 7절, 8절, 9절에 나온다. 그들이 이토록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에서 그 상황을 찾아보자.
64장 10절과 11절을 읽어보자.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바로 전쟁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대국에 의해서 침략을 당해서 성소가 약탈당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형편없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쟁의 참화는 63장 18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특히 주의 성전이 유린당하고 파괴된 것을 언급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충동해서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일으키시도록 하려는 의도이다. 여하튼 전쟁이 문제이다. 이스라엘을 어려움에 처하게 한 것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인류를 비참하게 만들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게 한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래서 본문은 오늘에도 동일한 감정으로 읽혀진다.
[보스니아] 25만 사망 2백만 고향 등져
옛 유고내전 기간 동안 전쟁으로 인해 죽거나 실종된 사람은 모두 25만명 가량이다. 또 이른바 `민족청소'로 집과 재산, 가족을 잃고 고향을 등진 난민은 2백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사망・실종자는 미 오하이오주 데이턴 평화협상 때 미 관리들이 추산해 발표한 것일 뿐 정확한 희생자수는 알 길이 없다. 내전기간 동안의 인적 피해 통계를 낸 교전당사자는 이슬람계 보스니아 정부뿐으로, 이에 따르면 보스니아 정부쪽에서만 15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고 17만5천명 이상이 다쳤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이민족의 재산과 가옥, 문화를 완전히 파괴하고 고문과 집단성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동원해 자민족 단일생활권을 만드는 `민족청소'가 광범하게 이뤄져 수많은 난민을 낳았다. 세르비아계는 한때 장악했던 보스니아 영토의 70% 이상 지역에서 이슬람교도 수십만명을 내쫓았으며 지난 7월에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이슬람교도 4천여명을 총살한 뒤 집단매장해 국제적 비난에 직면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나 이슬람쪽도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규모 민족청소를 자행했기는 마찬가지다. 이슬람 정부쪽은 보스니아 중부지역에서 크로아티아계를 쫓아냈고 내전 막바지에는 크로아티아와 연합해 서부 및 북부 지역에서 세르비아계 수만명을 추방했다. <한승동 기자. 한겨레 1995년 11월 22일>
이렇게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죽어가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그 누군가에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그 소리가 본문에서 들려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원과 어우러져서 우리 귀를 울린다.
전쟁이 일어나면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다 고통을 당하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어른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어린이들이 가장 고통을 당한다.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얼마나 희생되는지 그 실상을 알아보자.
[프리즘] "아주 어린이 고통 아십니까"
“아프리카 각국 대통령 여러분, 우리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무엇을 느끼십니까?” 6일 아프리카 카메룬 수도 야운데의 국회의사당에서 개최된 [어린이 정상회의]의 개막사를 통해 우간다 대표인 크리스토러 오켈로(17)는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원망을 토로했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의 후원으로 이틀간 개최된 [어린이 정상회의]는 아프리카의 내전과 종족분쟁으로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의 실상을 알리고 개선책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회의. 우간다 등 유혈분쟁을 빚고있는 아프리카 11개 국가의 어린이 대표 22명이 참석해 아동 학대, 어린이를 전선으로 내모는 행위, 지뢰사용금지 등 어린이들이 처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그동안 르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 다른 종족의 포로로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전쟁에 투입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날 개막 선언을 한 오켈로 소년도 91년부터 4년간 우간다 반정부군에 의해 두번이나 납치됐다 풀려난 경험이 있다. [어린이 정상]중 선발된 남녀 어린이 2명은 오늘부터 시작하는 아프리카 단결기구(OAU) 총회에 참석, 어린이 인권보호에 초점을 맞춘 결의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이틀간의 어린이 정상회의를 지켜본 살림 아메드 살림 OAU사무총장은 격려사를 통해 “아프리카 각국 정상들이 어린이와 난민보호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음을 반성한다”며 “이제 아프리카의 희망인 어린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이하원 기자, 조선일보 1996년 7월 7일>
이러한 사실에다가, 지난 10여년 동안 이 지구상의 전쟁터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새삼 놀랄 것이다.
유니세프 '96 아동현황보고서 발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12일 '96 세계 아동현황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세계 1백70여개국에서 동시에 발표된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동안 전쟁으로 인해 ▲2백만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4백-5백만명의 어린이가 불구가 됐으며 ▲1천2백만명의 어린이가 집을 잃고 ▲1백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고아가 되거나 부모와 헤어지고 ▲충격으로 인한 정서장애로 고통받는 어린이의 수는 1천만명이 넘는다. 이 보고서는 "세계 도처에서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어린이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르완다나 보스니아의 경우처럼 정치나 인종문제로 인한 내전은 어린이와 부녀자를 공격목표로 삼고 있고,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인종청소'라는 명목하에 무자비하게 성폭행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현재 16세 이하 어린이중 병사로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수가 25개국에서 수천명에 달하며 라이베리아의 민족애국전선, 모잠비크 레나모군 등의 군대는 징집한 어린이들을 사나운 전투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신체적 학대를 가하고 친족의 고문과 처형을 목격하거나 직접 참여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어린이들은 길들이기 쉽고, 도망가지 않고, 보수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쓸만한 병사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AK-47 소총과 같은 무기는 10세 정도의 어린이도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가볍기 때문에 어린이 징집을 가능케 한다는 것. 보고서는 이밖에 "내전중인 앙골라에서 올 한해동안 전체 어린이의 66%가 살인장면을, 91%가 시체를, 67%가 고문장면을 목격했다"면서 "악몽.공포감.불안감에 시달리는 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충격은 부모와 헤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1995년 12월 12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어린이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죽어갔다니.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면서,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고통 속에서 이들은 어떤 세상을 바랐을까? 아마도 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신석정,어머니 당신은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
실천하는 삶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단순히 구원만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해내고,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새롭게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행하는 죄악을 낱낱이 밝힌다. 그들이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했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립함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이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새로운 관계설정을 하려는 그들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아뢰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한다. 짧은 글이지만, 이 글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하나님과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우리는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구가 핵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그린피스와 더불어, 국경없는 의사회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가 크다.
[국경없는 의사회] 전쟁-질병-기아지역 차별없는 구호
제3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국경없는 의사회] 는 지난 68년 국제적십자사 요청으로 나이지리아 내전에 파견됐던 프랑스의사들이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귀국한 후 조직적인 구호활동의 필요성을 호소하면서 태동하기 시작, 71년 12월에 설립된 세계 최대규모의 민간 구호단체. 중립 공평 자원의 3대 원칙에 따라 정치, 종교,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은채 전쟁 자연재해 질병 기아등으로부터 고통받는 지구촌가족에게 차별없는 구호를 실시,국제사회서 적십자사와 더불어 인도주의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고 전세계 13개국에 대표사무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시아지역에는 일본과 홍콩에 사무국이 설치돼 있다. 세계 45개국에서 모인 2천9백여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세계 2백 60만명에 달하는 독지가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독자적인 재정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전체예산 2억달러(약 1천6백억원)중 86%를 구호활동에 쓰고 있으며 암스테르담등 세계 5개지역에 독자적인 보급지원체제를 구축, 세계 어느 곳이든 24시간 이내에 구호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기동력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비정부단체로는 유일하게 북한 수해 현장에 직접 투입돼 전염병 예방활동을 벌이고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걸프전, 보스니아내전, 르완다내전등에 빠짐없이 구호의 손길을 뻗쳤다. 이제껏 70개국에 구호팀을 파견했으며 현재도 35개국에 의료팀을 주둔시키고 있다. 걸프전때는 60대의 전세기를 동원하고 7개의 난민캠프를 설치, 7만명을 구호해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으며 특히 이라크의 화학무기 살포 현장에 직접 들어가 이를 최초로 전세계에 폭로하기도 했다. 금년 1월 자이르의 킨샤샤비행기 추락사고로 8백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펴 인터폴등 관련단체들을 놀라게 했다. 현재 이 단체의 회장직을 맏고있는 필립 비베르송(41・프랑스)은 프랑스보르도 제2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의학박사로 우간다, 르완다, 기니, 스리랑카등서 구호활동을 폈으며 특히 전염병에 관련해 해박한 자료와 괄목할 논문을 발표, 국제의학계의 주목을 끌고있다. 한국인은 아직 한명도 이 단체에 가입이 돼 있지않은 실정인데 한양대의료팀이 지난해 르완다에 도착했을때 이 단체와 현장에서 공동으로 구호활동을 폈던 게 유일한 접촉이었다. <조선일보 1996년 9월 11일>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고 필립 비베르송 회장이 한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 우리는 범세계적으로 2가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도약하고 발전하려는 도전이고 또 한가지는 굶주림과 인종분규등으로 사망 위험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다른 신생공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개발이라는 도전을 해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도적인 도전에도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런 의미와 함께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에서 주는 서울평화상을 받게 됨에 따라 매우 고무적인 희망을 갖게 됐고 국경없는 의사회(MSF)를 대표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급변하는 세계의 한 부분입니다. 이 세계는 많은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박탈과 고립, 불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난과 폭력속에 혼자 자라고 있는 세계 대도시 거리의 어린이들, 전쟁과 파괴로부터 피난하는 수백만 난민들, 탄압의 희생자들, 창궐하는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아프리카의 빈민들. 오늘의 이 상을 이들 모두에게 바칩니다. <한국일보 1996년 10월 11일>
이들은 지극히 절망적인 현장을 누비면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아닌 ‘다음’이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머잖아
북악에 바람이 불고
눈을 날리며, 겨울이 온다.
그날. 눈 오는 날에
하얗게 덮인 서울의 거리를
나는 봄이 그리워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이러한 <다음>이 있었다.
이 새벽. 이 <다음>.
이 절대한 불가항력을
나는 내 것이라 생각한다.
이윽고 내일
나의 느린 걸음은
불보다도 더 뜨거운 것으로 변하여
나의 희망은
노도보다도 바다의 전부보다도
더 무거운 무게를 이 세계에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음>은
눈 오는 날의 서울의 거리는
나의 세계의 바다로 가는 길이다.
-천상병, ‘다음’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쟁없는 세계이다. 그런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구체적인 운동들을 펼쳐나가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전쟁 없는 세계」라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 없는 세계」운동은 지난 해 칠레 산티아고대학에서 열렸던 국제 [휴머니스트 공개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모임은 「인간개발을 위한 공동체」라는 비영리 사회문화운동 단체가 주최했는데 이 단체는 지난 60년대 아르헨티나 멘도자에서 학생운동을 벌였던 「휴머니스트 운동」의 멤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전쟁 없는 세계」는 지난 해 산티이고 모임에서 탄생한 이래 현재까지 20여개국의 민간단체들이 참여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캐나다 칠레 콜럼비아 영국 프랑스 헝가리 아이슬랜드 이탈리아 멕시코 네덜란드 페루 러시아 스페인 스위스 미국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유고 등이 그런 나라들이다. 이 운동의 목표는 물론 전쟁 없는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연차적인 캠페인을 통해 오는 2000년에는 단 1주일간만이라도 전쟁을 종식시켜 전쟁 없는 세계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는 물론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분쟁과 갈등이 생겨날 때마다 합리적 주장은 언제나 야만적 폭력을 선호하는 주장들에 의해 뒷전에 밀려났다. 더욱이 과거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법체계는 전쟁을 정치의 합법적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전쟁은 수십만,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왔으며 한 나라 전체를 파멸에 빠뜨려 왔다.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해결됐어야 할 문제들의 해결을 가로막아 왔고 쉽게 해결될 수 있는 현재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고 있다. 핵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도달한-그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오늘날, 인류는 이에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전쟁 없는 세계」의 전세계적 운동은 이토록 소중한 목표의 실현을 위한 흥미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토론과 모임, 공개적 발언과 출판 등을 통해 이 운동은 오늘날의 전쟁의 진정한 기원들을 대중들에게 폭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전쟁의 대의명분과 진정한 이유는 서로 모순된다는 것, 그리고 정치가들이 말하는 전쟁의 이유와 변명들은 거짓이라는 게 드러날 것이다. 나아가 끈질기고 참을성 있게 문제의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전쟁은 회피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전쟁 없는 세계」의 활동과 행동계획들은 현존 분쟁지역들의 전쟁의 불씨를 끄기 위한 일반여론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할 것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이를 통해 정부가 아닌 사회, 특히 의사와 핵과학자, 생물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인류에게 핵전쟁의 참화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같은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들을 제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보통사람들에 의한 외교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이다. 이같은 잠재력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은 활용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래의 분쟁지역에 전쟁의 불똥이 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존하는 정부기구들이 일부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더이상 이를 성취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유엔은 물론이고 유럽안보협력회의 등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과제가 쉽지 않음은 명백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과 정부의 내면생활에서 정치가 쇄신되어야 하며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 없는 세계」의 운동은 한마디로 전세계적인 대화의 운동이다. 한국가내, 그리고 국가들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을 뛰어넘는 국가간의 대화, 관용에 바탕을 두고 상호존중에 의해 지탱되는 대화, 현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롭고 진정 평화적인 정치적 수단들을 지향하면서 정치형태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대화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 운동은 상호이해를 통해 평화의식을 건설할 수 있다. 도덕적 측면에서는 정치수단으로서의 전쟁과 폭력을 거부함으로써 삶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심리적 측면에서 이 운동은 과거로부터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 인류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전세계 인류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2000년 벽두의 단 1주일만이라도 총성이 멈추고 전쟁이 그친다면 이는 엄청난 상징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는 인간이 평화를 위한 의식적 선택을 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평화로운 시작을 위해 모든 나라와 모든 정부, 그리고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 없는 세계」의 운동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은 너무도 분명하다. 위대한 인도주의자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미래는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미래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생각과 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전쟁 없는 세계」의 운동은 이처럼 가장 고상한 행동의 한 모범이라 할 수 있다.<경향신문 8월 9일>
나오는 말: 여전한 기다림
본문에서 우리가 읽은 것은 오래된 기다림이었다. 그 기다림은 여전하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이미 오셨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고, 우리가 실천하는 삶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오신 그분을 기다리며, 그 기다림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어설프긴 하지만, 내가 쓴 ‘기다림’이라는 시로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아직도 여전한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나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그래도 기다림은 즐거움입니다
그날을 위해
나는 극상품 향유를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분이 먼 길을 걸어오시는 날
동구 밖에서 기별이 오면
옥합을 깨뜨리겠습니다
나는
눈물을 아껴두겠습니다
그분이 저만치 오시면
달음질쳐가
차마
그 발에 얼굴을 대고
한참이나 울어보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정갈히
감아두겠습니다
그래
그분의 젖은 발을
내 고운 머리칼로 닦아드리겠습니다
아직은 기별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그래도 기다림은 설레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