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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자락길은 데크가 잘 설치되어 보행 약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
안산은 조선왕조의 한양 천도 과정에서 한때 주목받은 적이 있다.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이 그것이다. 하륜이 제시한 무악주산론은 무악을 주산으로 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의 연희동과 신촌 일대가 궁궐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경복궁은 정도전이 주장한 북악주산론(北岳主山論)에 따라 북악산 아래에 건설된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따라 도성을 쌓으면서 안산은 사대문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오늘날 안산은 서울의 유명 산을 제치고 봄철 가장 걷기 좋은 길로 떠올랐다. 봄철 풍광이 워낙 빼어나고, 걷기 좋은 데크 덕분이다.
안산 자락길의 가장 큰 특징은 ‘순환형 무장애 숲길’이란 점이다. 기존 무장애 숲길이 짧은 구간 편도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획기적이다. 그래서 안산자락길의 들머리를 독립공원, 서대문구청, 연희숲속쉼터, 한성과학고, 금화터널 상부, 봉원사, 연세대학교 등 다양하게 잡을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벚꽃 명소인 서대문구청 들머리로 출발점을 잡았다.
서대문구청 앞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홍제천을 만난다. 홍제천으로 진입하면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암벽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안산 산비탈에는 벚꽃이 흐드러진다. 여기서 홍제천을 건너 물레방아를 지나 안산으로 들어선다. 산비탈을 조금 오르면 안산 최고의 벚꽃 군락지가 펼쳐진다. 이곳 ‘벚꽃 광장’의 왕벚나무들은 밑동이 굵고, 꽃들도 풍성하다. 천천히 벚꽃 터널을 따르면 은은한 향기가 가득하고, 꽃술에는 잉잉거리는 왕벌들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지나는 사람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고, 꽃그늘 아래 가족이 둘러앉아 김밥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 정겹다. 그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살아있다는 행복감에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안산 벚꽃광장은 왕벚나무 수백 그루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서울 어느 벚꽃 명소보다 호젓해서 좋다. |
보행 약자는 서대문구청 뒤편 도로를 50m쯤 오르면 왼쪽으로 벚꽃광장이 이어진다. 여기서 벚꽃을 구경하고, 도로를 따라 50m쯤 더 오르면 만남의 장소다. 여기서 숲을 바라보면, 데크길이 보인다. 원점회귀 코스이기에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좋지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힘이 덜 든다. 호젓한 데크 숲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숲속무대를 지나면 위쪽으로 메타세콰이어 군락지가 보인다. 그쪽으로 오르면 넓은 데크 마당에 해먹들이 걸려 있다. 치유의 숲길 ‘숲 속에서 낮잠’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해먹에 누워 나무와 하늘을 올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산 치유의 숲길 ‘숲 속에서의 낮잠’ 해먹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다. |
다시 길을 나서면 무악정 정자가 보인다. 정상 봉수대는 무악정 앞에서 올라간다. 15분쯤 오르면 마치 거대한 포탄을 세워놓은 듯한 봉수대를 만난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무악 동봉수대지(毋岳 東烽燧臺址)다. 조선시대 봉수체계가 확립되었던 세종 24년(1438)에 무악산 동·서에 만든 봉수대 가운데 동쪽 봉수대터다. 평안북도 강계에서 출발해 황해도와 경기도 내륙을 따라 고양 해포나루를 거쳐온 봉수를 남산에 최종적으로 연락하는 곳이었다. 그동안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4년에 자연석을 사용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지금의 봉수대는 봉화를 올리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가히 서울 최고다. 북동쪽으로 인왕산이 우뚝하고 그 너머로 북한산 비봉능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서쪽으로는 한강이 휘어져 서해로 흘러가는 모습이 시원하고, 서울 시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하다.
다시 무악정으로 내려오면 안산천약수터에 닿는다. 시원하게 약수 한 바가지를 들이켠다. 안산은 숲이 좋아 약수터도 많다. 산 곳곳에 무려 20개가 넘는 약수터가 있다. 구렁이 담 넘듯 슬슬 이어진 오르막을 따르면 능선에 올라붙는다. 뒤를 돌아보면 봉수대가 보인다.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안산천 약수터. |
안산 능선은 부드럽고 조망이 좋다. 뒤로 암봉이 우락부락한 정상이 보인다. |
능선에서는 건너편 옹골찬 인왕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능암정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의 조망은 기대 이상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우뚝하고, 뒤로 북한산 비봉능선이 활짝 날개를 펴고 있다. 그 앞으로 빌딩과 아파트, 서대문형무소 등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어지는 내리막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어우러진 꽃대궐이다.
능선 상의 전망대. 인왕산이 우뚝하고 뒤로 북한산 비봉능선이 날개를 활짝 벌렸다. |
안산의 데크길은 봄철이면 개나리들로 치장한다. |
산허리에 따르는 데크길은 발걸음이 멈춘 곳이 모두 전망대다. 독립공원, 한성과학고, 안산초등학교를 차례로 확인한다. 인왕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전망대를 지나면 데크길의 종착점을 만난다. 휠체어충전기가 보이고 좀 더 걸어가면 출발했던 만남의 장소다. 한 바퀴를 돌았지만 크게 부담도 되지 않고,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인왕산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 안산 자락길은 발길 멈춘 곳이 모두 전망대다. |
코스요약
걷는 거리 : 7km
걷는 시간 : 3시간
걷는 순서 : 서대문구청~무악정~(봉수대)~안산천약수터~능암정~전망대~천연마당~독립문파크빌 앞~북카페 쉼터~전망대~서대문구청
교통편
대중교통 : 서대문구청은 3호선 홍제역 4번 출구로 나와 홍제천을 따라 걸어가면 더 좋다. 안산 들머리까지 20분쯤 걸린다.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와 이진아도서관 또는 한성과학고 뒤편으로 가면 자락길을 만난다.
걷기여행T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