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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노동절이 필요한 노동계급
2024년 9월 2일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노동절이 제정된 지 130주년 되는 날이다. 북미 노동계급의 노동절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오늘날 대부분 노동자에게 노동절은 그저 하루 더 쉬는 날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노동조합이 바비큐 파티와 행진을 벌여 더 많은 노동계급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일 뿐이다. 이번 노동절을 맞아 우리는 자본의 대규모 경제 공격과 제국주의 경쟁 심화에 대응하여 노동계급이 독자적인 계급 행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캐나다의 노동절은 비(非)정치적이면서도, 수공업 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행진을 벌였던 공동체 단위 행진에 그 기원을 둔다. 그러나 노동 운동의 발전과 계급 투쟁의 증가로 말미암아, 각 마을, 공동체의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행진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파업 행진의 형태를 띠었다. 1872년 5월, 온타리오의 해밀턴에서 파업 노동자들이 노조 현수막을 들고 산업지구를 통과해 행진했다. 10년 후 이들 노동자 행진은 소규모 광산 마을부터 거대 도시에 이르기까지 흔한 것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공식적인 국가 노동절은 수십 년 후인 1894년이 되어서야 선포되었다. 노조원들이 수년간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노동 시간 단축과 같은 더 중요한 요구를 한 끝에 마침내 하원이 양보하여 9월 첫째 월요일을 국가 노동절로 선포했다. 정부로서는 작고 쉬운 양보였다. 이렇게 노동절은 토론토와 같은 도시에서 노동자와 노조원들의 필수 기념일이 되었지만,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1880년대 미국에서는 경기 불황 속에서 노동조합과 아나키스트, 사회주의 단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콜럼버스(Columbus) 기사단, 중앙노동조합, 미국노동총연맹과 같은 노조는 별도의 날짜를 지정하여 공개 행진과 시위를 개최하고 노조 간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노동절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된 해에는 계급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특히 1894년 5월 11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카고에서 벌어진 풀먼(Pullman) 파업은 4,000명의 철도 노동자가 와일드캣(비공인) 파업을 시작하고 풀먼 차량을 실은 열차를 보이콧한 사건이다. 주 정부는 연방 금지 명령, 군부대와 회사에 파업 단속반을 투입하고 체포하는 등 잔인하게 대응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은 화해 제안을 통해 점점 커지는 계급투쟁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주 정부가 풀먼 노동자들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지 8일 만에 노동절은 연방 공휴일이 되었다.
9월 첫째 월요일은 1886년 5월 1일부터 노동자 단체들이 매년 8시간 노동을 위해 파업을 조직했던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선택된 날이다. 시카고에서 이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주로 알버트 파슨스(Albert Parsons)와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 같은 아나키스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모두 '헤이마켓(Haymarket) 사건'의 여파로 처형당했는데, 투쟁 파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헤이마켓 광장에서 진격하는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지면서였다. 이 광장에서의 시위는 전날 밤 맥코믹 리퍼 공장의 파업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폭력과 파업 단속반 폭력으로 두 명의 파업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소집된 것이었다. 이 비극 이후, 5월 1일은 1889년 제2 인터내셔널의 첫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유럽 전역에서 널리 기념하게 된다.
오늘날 노동절은 부르주아 지도자들이 계급 착취 체제에 더 잘 협력하기 위해 노동계급 독립의 필요성을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인식 없이 노동을 기념하는 화려한 축제에 불과하다. 이러한 노동절 소풍, 행진, "역사적인 승리"에도 미국의 실질 임금은 6.3% 감소했다. 지난 4년간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21.4%, 캐나다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17.6%였다. 자본은 심각한 수익성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 계급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10년간 정부 정책을 통해 캐나다 부동산 시장에 자본과 저축이 유입되었으며,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더욱 증가했다. 한때 토론토와 밴쿠버 지역의 주택 거품이 만연해졌다. 코로나 기간 캐나다 모기지 계약의 75%가 2025년에 만기가 도래할 정도로 투기 자산으로 주택을 구매했으며, 많은 노동자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이자율이 적용될 것이 예상된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최근 성장이 근본적인 경제 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경제는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실업률이 너무 낮아지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경기 둔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진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다.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 기간 이후 경제의 '연착륙'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실업률을 높이고 임금을 더 낮추는 것이다. 실업률이 3.9%까지 상승한 것을 본 한 대형 투자자는 이것이 "연준이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미국 제조업으로의 복귀를 칭송하며, 공장의 새로운 성장이 사상 최저 수준의 노동 조건과 노동 규제에 따른 것이라고는 절대 밝히지 않는다. 이 계획의 안착을 위해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민 정책에 협력해 왔다. 민주당은 수사학적 '환영'을 제시하는 한편, 공화당은 강력한 집행과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불안정한 노동력을 창출하고 전반적으로 임금을 낮추면서 인종차별적 수사로 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맹공에 맞서 노동계급은 자신을 방어하고 기본 생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싸워왔다. 미국에서는 파업 노동자 수가 2022년 12만 명에서 2023년 50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파업은 자본주의의 지시에 따라 사측과 국가와 함께 노조 스스로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필요할 때 노동자 규율을 강제하고, 더 나쁜 양보를 강요하고, 파업을 막고, 국가 경쟁을 위해 침체한 산업에 노동력을 투입하는 등 오랫동안 국가와 통합해왔다. 노조의 승리는 곧 노동자의 패배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조의 역할은 100년 이상 된 법률을 이용해 '국가 안보'를 빙자해 합의를 강요하는 의회에 의해 중단된 미국 철도 파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후 주요 철도 노조는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 합의안을 받아들이도록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지난가을, 전미노동조합(UAW)은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번갈아 가며 진행하도록 지시하여 회사 이익을 저해하지 않고 노조 간부들이 전쟁 자금에 손을 대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노력을 분열시켰다. 몬트리올에서는 지난 4월부터 SAQ의 정부 주류 판매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15일 파업을 위한 대규모 투표를 했지만, 지금까지 단 이틀만 파업하여 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엄격한 직급 체계의 압박으로 인해 많은 SAQ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이 거의 없는 시간제 근무만 허용되고 있다. 이는 광범위한 노동계급이 직면한 공통적인 문제이지만, 노조는 '가장 나쁜' 협상안만을 제시하고 있다.
대신, 노동자들은 파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조직화하여 파업의 성격을 결정해야 한다. 의회도, '선량한' 고용주도, 노조도, 그 어떤 힘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다. 2023년 여름, 공동 전선은 60만 명의 퀘벡 노동자를 파업에 동원했다. 그러나 전투적인 퀘벡 노동의 신화를 전국적으로 재생산했지만, 노조의 전선은 노동자들을 위한 전선이 아니었다. 아무리 전투적인 노조라도 국가와 협력과 무장의 필요성 때문에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경제적 조건을 방어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노조 지배를 대신하여, 그리고 필연적으로 노조에 대항하여 스스로 조직화해야 할 것이다.
수익성 위기에 직면한 자본가와 국가는 자신의 손실을 경쟁자에게 전가하려고 하며, 이는 제국주의 전쟁의 일반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고기 분쇄기(인해전술), 가자지구의 살인적인 포위 공격, 이스라엘과 이란의 벼랑 끝 전술, 중국과 미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군사 방어 조약은 이러한 위기의 결과이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가자 지구의 젊은 노동자들은 두 전쟁에서 수십만 명이 학살되는 등 전 세대가 희생되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불법화되고 탄압받는 파업과 반정부 시위는 민주주의가 자본의 독재를 위한 위장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진흙 참호, 산더미처럼 쌓인 도시 잔해 아래 굶주린 시체, 자본주의 착취의 채찍이 날카로워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의 악몽 같은 풍경은 세계 자본주의가 전 세계 노동계급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은 경제 및 군사 인프라를 구축하고, 동맹을 결성하고 유지하며, 생산 및 금융 기관을 재편하면서 절대적인 패권을 결정하기 위한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지원하면서 점점 더 중심을 잃고 있다. 중국은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당 사이에 연립 정부를 위한 회담을 개최하며 입지를 다졌다. 이스라엘은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는데, 이는 제국주의적 오만함의 발로이자 노동계급을 멸망시킬 지역 전쟁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노조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도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밖에서 노동계급의 경제 투쟁의 기구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노동력 판매를 위한 협상 기구라는 고유한 논리를 바탕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의 법적 틀 안으로 편입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국가 노동 조직을 감독하는 의회 위원회 기관으로 TLC가 초대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조를 합법화하고 뉴딜 정책의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이 과정을 마무리했다. 노조 통합은 파업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노조 탄압은 자본가와 국가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계급 활동의 가능성을 높였다. 노조에 대한 법적 인정은 노조와 국가를 수천 개의 실타래로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노조는 현실적인 협상을 가장해 더 나쁜 협상을 강요한다. 노조는 자본을 위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자라는 존경받는 지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가의 대부분 분파는 수익성 위기가 다시 찾아오면서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다시 노조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 노조가 하는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내일 당장 노조 카드를 찢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 스스로가 투쟁의 주체가 되기를 촉구한다. 몬트리올에서는 리틀 버건디(Little Burgundy)의 보육원 노동자들이 바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메일 체인을 조직하고 노조를 넘어 파업의 방향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사례는 오늘날 투쟁에 대한 현대적인 교훈이 되지만, 1972년 총파업 당시 도시 전체를 장악했던 파업위원회에 비하면 미약하다.
그러나 경제 투쟁만으로는 역사의 무대에서 자본주의 통치에 도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자본의 뿌리에 맞서는 정치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 의회적 의미의 정당이 아니라 일관된 정치적 전망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투쟁의 최전선에서 투쟁하며, 항상 전체 투쟁과 연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2024년 9월 2일
계급투쟁(Klasbatalo)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옮긴이│지나
<위 기사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북미 지부인 「국제주의 노트」와 「반란」 최신 호(9호, 10호)에 실린 내용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9-02/the-working-class-needs-a-militant-labo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