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光) 팔래? 혼(觀) 팔래?
최길하
1.
'吳'나라에 "동봉"이라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동봉'은 명의에 더해 페스탈로치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콩도 한 줌 받고, 물고기도 한 마리 받곤 의술을 베푼다.
가난한 환자들이 참다참다 병을 키워서야 찾아왔다.
선생이 꾀를 낸다. 그냥 오면 된다고. 일을 시킨다.
치료가 끝나면 살구씨 한 알을 주면서 저 언덕에 심고가라 한다.
이렇게 몇 년이 흘렀다.
언덕에 살구꽃이 만발했다.
베푼 공덕만큼 동산의 살구꽃은 점점 번져갔다.
"행림회춘(杏林回春)"
이 고사성어가 그 살구꽃 핀 언덕이다.
"동봉"은 '상록수'가 된 것이다.
단양 수양개(애곡) 강언덕에도 "페스탈로치" 선생이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콩 한 줌 팥 한 줌 들고와 침을 맞고 갔다.
가난한 환자들은 매우 미안해 했다.
이 명의(名醫) 선생이 꾀를 낸다.
미안한 마음 갖지 말라고 노래를 시킨다. 그게 치료비였다.
억눌렸던 감정, 한(恨), 고단한 삶의 먹구름을 노래로 씻는 법을 터준 것이다.
듣는 그 의원도 송가인 노래는 아니지만 즐겁거든.
이만하면 치료비가 되거든. 병원(?)이 깔고앉은 땅값이 싸니까.
수양개란?
수(물) + 양(兩) 개.
"두(2)물내" = "양물내"
"양개 = 두 줄기 물 갈라지는 곳" 이란 뜻이다.
섬(시루섬)으로 인해 작은 개울 '샛강'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자의 고립어에 우리말 교착어를 붙인 고구려식 이두 표기법이다.
물은 생명이다. 그는 자연의 순리, 강물의 리듬과 삶을 조화시킨 윌든'의 '소로우'였다.
푸른 강물이 굽이져 가는 것도 이땅의 가난했던 민중의 노래(歌)가 아니겠는가?
저 돌아가는 굽이(曲)가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공명의 곡율이 아니겠는가?
세상이란 시간과 공간, 어제와 오늘이 모두 얽혀있는 그물이라는 것이 현대과학이다.
수양개 마을의 그 페스탈로치는 신동문 시인이다.
1960년대 <새벽> <사상계> <창작과 비평> 편집주간.
<경향신문>특집부장으로 우리 근대사 사상의 뿌리를 흠뻑 적신 분이다.
60-70년대 신동문은 지식 사회에서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1975년 갑자기 '위화도회군' 하듯 이 강언덕으로 내려온다.
'소로우'처럼 오두막을 짓고 언덕을 개간하고 머루포도를 심는다. "윌든"이다.
침술로 가난한 민중과 함께 호흡했다. "상록수"다.
그가 살던 수양개 강언덕에 드리운 덕의 그늘은 소백산 그늘 같다.
삶의 지혜는 남한강 굽이 같다. 수양개는 그 삶의 흔적이 깃든 언덕이다.
몽마르뜨 언덕? 옷만 잘 입혀놓으면 몽마르뜨언덕이 될 수 있다.
(신동문 시인이 197년부터 1993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집)
2.
올봄에는 이 수양개와 시루섬 강폭을 이어놓은 출렁다리가 완공된다.
근대화 시기 재난극복의 지혜와 가난했던 삶의 애환이 기록된 다리다.
지방마다 있는 그런 출렁다리가 아니다.
여기 누에처럼 살다간 사람들이 명주실타래를 뽑아 느리고 허공에 걸어놓은 현수교다.
"에밀레종" 전설 같은 한 어린 영혼을 달래 하늘로 올려보내는 진혼제의 다리다.
이런 비유를 들어 좀 뭐하지만
'고스톱판법'이 있다.
국회에서 제정한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방구석조례로 만들어지는 법이라
동네마다 법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 법중 공통된 법이 있다.
'광' 팔기다. 어느 꾀돌이가 좀더 스릴있게 즐기자고 '새'도 팔자고 했다.
롯또 당첨금 올리자는데 싫어할 사람 있겠나. 곧 전국으로 헌법개정이 됐다.
말은 심심풀이 놀이라지만, "놀면 뭐해?"에 드러나는 심리처럼 놀음이다. 만지면 커진다.
화투장을 받고보면 광은 빛 光자가 있어 빛이 난다. 금방 눈에 띈다.
그런데 새(고돌이)는 광에 비하면 안개꽃이다.
사실 '고돌이'는 이름처럼 영혼인 새가 키워드다.
'광' 파는 것보다 '새' 파는 게 합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젠 고스톱도 핸드폰이 컴퓨터가 되면서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됐다)
관광(觀光)!
눈에 보이는 '光'속에, 보이지 않는 혼의 개념이 '觀'이다.
갑이 '觀'이고 을이 '光'이다.
그래서 광관(光觀)이 아니라 관광(觀光)이다.
텍스트가 이미지를 꾸며주어야 한다. 광고학의 헌법 1조다.
카피가 이미지를 꾸며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긴다.
觀으로 光을 빛내야 한다.
觀은 보이지 않는 아주 미시세계다.
우리 감각기관 5감은 빠르기가 다르다.
보고, 듣고, 향기맞고, 맛보고, 접축하는 5감 빠르기를 보면
색> 성> 향> 미> 촉 이다.
그러나 감동의 크기는 그 반대인
색 <성 <향 < 미 <촉 이다.
색이 광(光)이고 촉이 관(觀)이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태풍이 아니라 솔솔 부는 봄바람이다.
요즘 갑자기 트롯 붐이 불처럼 일어났다.
촌스럽다고 아저씨 아주머니 노래라던, 눈물이 찰랑찰랑 고이는 노래다.
고향, 사랑, 추억 '찌질(?)'한 情'의 얼룩들이 묻어있는 노래다.
"더러운 그 정 때문에"란 말이 있다. 그렇게 살아온 DNA가 유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 환경과는 이질적이다. 그런데 왜 다시 트롯을 불러냈을까?
제작자 바보 아니야? 저게 팔릴까? 했는데 왠걸 불까지 붙었다.
미세한 떨림의 농음과 그 찌질(?)한 가사를
상반되는 빛(무대 조명)과 융합함으로서 세포분자(감정)를 흥분시기기 때문이다.
觀을 잘 팔아 光을 빛내야 한다.
홍석천이 대통령한께 얘기했듯, 지방마다 있는 그 출렁다리가 되선 안된다.
산 첩첩, 물 굽이굽이, 뻐꾹새 우는 단양땅에 바람의 씨가 날려
부모 모시고 처자식과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물 속으로 들어간 섬둥지가 시루섬 마을이다.
일단 주인이 없으니까. 섬 안에 들어가 땅콩 심고 고구마 심고,
몽돌 틈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다가 밤중에 물난리를 만났고
7m 높이 직경 4m 안에서 237명이 스크럼을 짜고 살아난 기념물이다.
어제는 온도가 달구어진 '린나이'에 물을 끓이려 냄비를 올렸더니
작은 진동으로 시작된 냄비가 차츰 격렬한 춤을 추면서 원밖으로 무대를 벗어났다.
몇 번을 잡아다가 놓아도 울림이 계속 증폭되었다.
觀은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부터 일어난다.
관이란 이런 미세한 떨림으로부터 크게 증폭된다.
미국의 현대과학으로 놓인 거대한 '타코마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가 바람에 무너졌다. 미국이나 현대과학도 감동엔 속수무책이다.
지나가는 바람에 쇠와 시멘트 와이어로 만든 다리가
현악기가 되어 트롯가수가 되어 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의 현대과학도 속절없이 무너트린 것이 "감동"이라는 것이다.
감동이 공명이 아닌가? 감동은 시멘트 철로 만든 다리도 무너트린다.
현대 과학으로 놓은 다리가 바람의 노래에 해체되다니 다리가 GPU 인공지능이 아닌가?
지나가는 어느 바람의 주파수에 거대한 다리도 울며 무너진다.
우리는 "그게 관계가 있어?"한다. 그래서 유사한 것으로 집합을 만들려고 한다.
'어상천수박'처럼 박싹에 수박싹을 접붙여야 한다.
사과가 "앱풀"아닌가? 그게 왜 손에 들고다니는 컴퓨터로 건너가 몇 년만에 세계에 퍼졌을까?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시름도 많다"
이렇게 거리가 먼 것을 끌어다 편집해야 시너지가 나온다.
바람이 다리를 감동시켜 무너트리듯 해야 한다.
光은 觀에서 나온다. 觀은 섬세한 마이크로파다. 신경망 같은 것이다.
이게 전자와 양성자가 부리는 미시세계의 매직 양자역학이다.
먼지에 먼지에....10에 (-)20mm 쯤되는 미세먼지가 세상을 움직이고
그 먼지가 내 마음을 움직인다.
구라가 아니라 싸이언스다.
미스트롯으로 시작한 트롯 열풍이 이렇게 방송을 장악할 줄 누가 알았나?
그것은 우리 가슴에 잠재된 정서의 압력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톡' 거드리니 골든벵이 '팡' 터진 것이다.
알 속에서 병아리가 다 되면, 어미 닭이 그 초음파를 듣고 밖에서 '톡' 쫀다.
"줄탁동시(啐啄同時)" 그때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
3.
신동문 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제 많지 않다.
단양에서 시기 적절하게 기념사업을 했더라면
단양은 대한민국 언론 문화 정계가 자동적으로 들락날락 하며 광고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 단양은 차원이 다른 관광상품이 됐을 것이다.
지자제마다 홍보대사라는 연예인을 내세우고 있다.
효율성이 있나?
21세기 대한민국 의식수준은 마늘빵이나 구워파는 시대는 갔다.
21세기는 정교한 문화 예술과 결합되는 관광으로 변할 것이다.
문화도 과학도 사회도 인생도 편집이고 디자인이다.
100년 200년 전 이야기도 각색하면 오늘의 퓨전음악이 된다.
이날치의 '범내려온다'를 봐라.
텍스트와 이미지, 색과 각도만 살짝 변주하면 된다.
"행림회춘(杏林回春)" 상록수 언덕을 디자인 하면 어떨까?
늦은감이 있지만 이번 애곡리를 디자인 할 때 같이 융합하면 좋겠다.
몽돌밭 시루섬에 들어가 뽕나무를 심고 물난리를 겪은 애환의 서사도
근대화의 몸부림 상록수정신이었고, 신동문이 펼친 것도 상록수 정신이다.
앞을 내다보는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
앞으로 관광은 문화예술과의 융합에 답이 있다.
<산골분교 교육사 추억관> 같은 상록수의 상징 조형이나
수양개 선사박물관과 연계한 미술관도 좋다.
21세기 관광은 '光'파는 것에서 '혼(觀')파는 것으로 갈 것이다.
삼성이 라디오나 계속 만들어 팔았으면 오늘이 있었겠나?
첫댓글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글을 읽으면, 뭔가 창조할 수 있을것 같은 떨림? 같은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2026년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다른것을 같다 이식하면 창조지. 어상천 수박 만드는 법이 농부의 창작품인데
어떻게 만드느냐 하면 박싹에다 수박싹을 붙여. 그러면 박의 건강한 체질에
수박의 맛이 결합되거든.
이질적인 것을 결합 편집하면 되요. .
@최 길하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상천 수박이 그렇게 탄생을 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보고
꿈도 꾸어보는 새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