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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파리 패럴림픽대회(이하 파리 패럴림픽)’가 한창이던 지난 8월 말,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 6개로 종합 20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었지만 며칠 동안 금메달 소식이 없어 약간의 긴장 상태에 있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파리 패럴림픽을 준비하며 우수선수 집중 육성과 파리 현지 사전캠프 운영 등 총력을 기울인 상태에서 인적·물적 투자가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성과를 경기 결과로 보여줘야 할 시점이었다.
장애인선수와 경기에 대한 홍보를 하다보면 ‘스토리 좋은 선수없냐?’란 질문을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자주 듣는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장애인 중에 스토리 없는 사람이 있는가? 그들의 인생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리얼리즘 다큐드라마다. 그런데 국가대표급 장애인 선수에게는 스토리에 앞서 전제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그건 바로 ‘성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인생 스토리가 남달라도 성적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운동선수로서의 평가에 한계가 있다.
탁구 김기태가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5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2024년 9월 6일 결승에서 대만의 전보옌을 세트스코어 3대 1로 꺾고 우승한 뒤 시상식에 서 있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이는 어찌 보면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당연한 것이고, 패럴림픽에 나가는 선수에게는 국민의 세금으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니 자신의 직업에 대한 당연한 성과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성적이 좋아야 다음 선수와 대회에도 예산과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후배들을 위해서도 어쨌든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파리 패럴림픽에서 한국팀이 목표했던 종합성적 달성을 눈앞에 두고 긴장해 있을 때 탁구 김기태의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지적장애(스포츠등급 T11) 선수였다. 리우, 도쿄에 이어 패럴림픽에 3번째 나왔다는데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 패럴림픽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많은 17명의 선수가 출전한 탁구 종목에서 김기태가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탁구대표팀에는 김영건, 주영대, 윤지유, 서수연 등 쟁쟁한 휠체어 선수들이 많았고 지적장애 김기태는 국가대표팀의 이를테면 무명선수였던 셈이다.
패럴림픽은 2012년 런던대회부터 수영, 육상, 탁구에서 지적장애 선수에게 문호를 열어주었다. 덕분에 수영에서는 조원상, 이인국, 강정은 선수가 패럴림픽 수영장의 물맛을 보았으며 송병준이 런던대회에서 지적장애 탁구 첫 메달(은)을 딴 적이 있다.
파리 패럴림픽에서 열린 남자 탁구 단식 결승전의 김기태 경기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지적장애 선수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경기력향상연금’, 즉 메달연금을 매월 100만원씩 받는다. 이 액수는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이후 비장애인 선수의 올림픽 연금과 동일하게 지급되는 금액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매월 10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패럴림픽이라 가능한 일이다.
김기태는 아버지 김진섭씨를 따라 탁구클럽에 갔다가 그 가능성을 발굴한 경우다. 산수 셈이 잘 안되길래 좀 늦나보다 했는데 아빠의 라켓을 갖고 공을 다루는 게 범상치 않았다. 탁구클럽 회장 아들과 레슨을 같이 받았는데 가르치지 않아도 스윙이 자연스럽게 나와 ‘탁구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아들을 탁구에 입문시켰지만 아버지는 자식의 장애를 인정하면 영원히 세상에 못 나갈 것 같아서 선수 등록을 망설였고 그러다 시간이 지체된 것을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다.
용인 꿈나무대회에서 우승하자마자 엘리트 코스를 찾아 용인집에서 탁구팀이 있는 부천의 중학교로 아들을 입학시켜 본격적인 선수생활에 들어갔지만,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포기하길래 심하게 나무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당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그때 서야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한다. 경기가 끝난 체육관에서 아들을 호되게 나무라며 몰아쳤던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후회가 된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지난주에 끝난 경남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서울시 소속으로 참가한 김기태는 남자 개인과 복식 그리고 단체전 경기에서 우승하며 대회 3관왕을 했다.
김기태를 오랫동안 지도해온 박재현 서울시 감독은 김기태를 센스와 감각이 좋은 선수로 평가한다. 파리 패럴림픽 입상 이후 경기력이 부쩍 좋아졌고, 청소년 시기부터 비장애인 선수들과 훈련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와 기술력이 뛰어나고 특출했던 선수였기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켜봐 온 유망주였다고 한다.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서울시 대표로 참가한 김기태의 혼성복식 경기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박 감독은 김기태의 약진을 보며 발달장애 학생에게 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말한다.
“김기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운동이 발달장애 학생의 인생에 변화를 이끌어주었다. 발달장애 학생들은 개인차가 크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나 이는 세분화된 맞춤훈련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야 한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나 자식에 대한 인지를 빨리하고 밖으로 나와 무슨 운동이던지 해서 자녀에게 맞는 종목을 찾는게 중요하다.”
운동부에서의 훈련이 좋은 자극이 되므로 김기태처럼 비장애인과 통합교육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학교체육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특수학교 교육만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우며 어렸을 때부터 전문성을 키워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는 끈기 즉 ‘버텨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박 감독은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발달장애 부모에게 시간과 기회 그리고 이를 버텨낼 경제적 여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기태는 남다른 재능을 일찍 발견해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생활체육에 관심 있던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김기태를 유소년 시절부터 지켜봐오다 자신의 선수로 만든 서울시장애인운동경기부 박재형 감독이 경기를 마친 김기태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현옥
우리 사회는 현재 안전한 환경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삶의 질 향상과 기회가 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발달장애는 사회적 책임과 가족의 어려움이 깊어지고 있다.
모두가 김기태처럼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금메달을 딴 직후에도 대중과 눈을 맞추지 않던 김기태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며 웃는 모습은 평온하고 그 나이의 청년다웠다.
발달장애인의 체육활동에 맞는 적절한 지원과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 육성 등 투자가 이루어져 우리 주변의 또 다른 김기태가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스매싱을 날릴 수 있게 이들을 찾아내서, 멋진 경기로 세상과 한판 붙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옥 객원기자는 25년 동안 장애인체육계에 종사했으며, 현재 장애인스포츠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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