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역설을 극복하는 3가지 브랜드 전략
와인 하면 프랑스, 보드카 하면 러시아 등 어떤 상품을 생각하자마자 한 국가가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 나라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겠지만, 원산지 외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의 기업 입장에서는 이보다 골치 아픈 게 또 없다. 대중의 인식을 뛰어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원산지 역설(Provenance paradox)’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마케팅 및 브랜딩 전문가 로히트 데쉬판데(Rohit Deshpande)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원산지 역설’을 극복하는 3가지 비법을 공개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0년 12월호 ‘왜 베네수엘라 초콜릿은 사지 않는 걸까(Why You Aren’t Buying Venezuelan
Chocolate)’에 실린 핵심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편집자주>
만약 당신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초콜릿’을 고른다고 해보자. ‘스위스산’과 ‘베네수엘라산’ 둘 중 어느 제품을 사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스위스산을 고를 것이다. ‘초콜릿 하면 스위스’란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품을 처음 출시한 나라가 그 상품의 최고 품질임을 자동적으로 인정 받고, 그 후 출시된 다른 나라의 제품 가치는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원산지 역설(Provenance paradox)’이라고 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원산지 기업들이야 소비자의 이런 인식을 수혜로 여길 수 있겠지만, 반대로 그 외 나라의 기업들은 만만치 않은 손해를 보게 된다. 최고급 품질의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를 수출하는 베네수엘라 기업 엘 레이(El Rey, 스페인어로 ‘왕’이란 뜻)도 한 예이다.
스위스의 린트(Lindt)나 벨기에의 고디바(Godiva) 등 세계 최고 품질의 초콜릿은 모두 엘 레이에서 수출한 카카오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엘 레이의 카카오 원료는 30%의 프리미엄 가격이 붙을 정도로 시장에서 그 가치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엘 레이가 자체 초콜릿 생산을 시작해 외국 시장에 출시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다른 제품보다 고급 품질에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스위스, 벨기에 등 유럽산 초콜릿이 최고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뛰어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도 브랜드 및 원산지 경쟁에서 밀리니 제 가격을 받을 수 없고, 가격경쟁으로 승부를 하려고 가격을 낮추니 오히려 낮은 가격 때문에 질 낮은 제품으로 오인돼 더 팔리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엘 레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들이 이러한 ‘원산지 역설’의 피해를 더 많이 입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국제 마케팅 전문가 로히트 데쉬판데는 ‘마케팅과 브랜드 메이킹으로 승부하라’고 조언한다. 짧은 사례와 함께 ‘원산지 역설’을 뛰어넘는 세 가지 비법을 살펴보자.
첫째, 브랜드 진화 단계를 고려해 전략을 세워라.
초기에는 저렴한 가격의 브랜드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점차 고급화된 브랜드로 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가 이러한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닛산의 인피니티, 혼다의 아큐라, 도요타의 렉서스 등은 해외 시장 진출 초기, 품질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브랜드를 알린 다음 서서히 고급 브랜드를 출시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시켜 나갔다.
우리나라의 LG도 198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한국산이라 그 품질을 인정받지 못해 베스트바이(Best Buy), 홈 디포(Home Depot) 등 일류 유통점에서 판매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LG는 지속적으로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1995년 LG(Life’s Good)로 브랜드를 개명하며 고급 브랜드화에 착수했다. 현재는 시장에서 인기 제품으로 거듭났다.
둘째, 제품 및 브랜드의 특징을 부각시켜 소비자의 관심을 제품 자체로 돌려라.
멕시코 코로나(Corona) 맥주가 이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코로나 맥주는 ‘프랑스 발리 해변가에서 마시는 맥주’로 브랜딩 컨셉을 잡고 ’재미, 태양, 바닷가’와 어울린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코로나 마케팅의 그 어느 면에서도 원산지인 멕시코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결과는 대 성공. 이제 미국에서는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 맥주보다 코로나 맥주가 더 많이 팔린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잘 팔리는 맥주일 정도로 어디서나 인기가 좋다.
셋째, 제 2의 브랜드(Second Brand)를 출시하여 원산지와 분리시켜라.
이는 마케팅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전략으로, 원산지를 철저하게 숨기기 위한 목적이다. 때문에 성공사례가 밝혀진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다음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산 브랜드를 고집하기 보다 ‘Made in US’ 상표를 붙인 제 2의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원산지 때문에 손해 본다고 바뀔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하기 보다 더 치열하게 마케팅, 브랜딩 전략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 세계경영연구원 IGM 비즈니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