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4,1-11; 루카 19,11ㄴ-28
+ 오소서 성령님
제1독서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어좌에 앉아 천상 어전의 영광을 받으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환시에 등장하는 천상 어전의 모습은 모세가 세운 성막을 연상시키는데요, 모세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양을 본 따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탈출 26,30; 히브 8,5),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환시는 초대 교회의 전례에 영향을 주었는데요, 우리가 지상에서 거행하는 전례가 하늘에서 거행되는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앉아 계신 어좌 둘레에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역대기에 나오는 스물네 사제(1역대 24장) 또는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가 상징하는 하느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마지막에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는데, 봉건 영주들이 황제 앞에서 자신들의 금관을 벗는 것처럼, 주님 앞에서 승리의 왕관을 내려놓음으로써, 자기들의 승리와 영광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네 생물이 있는데, 각각 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와 같았습니다. 교부들은 이를 네 복음서의 상징으로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맹수를 대표하는 사자, 가축을 대표하는 황소,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사람, 새들을 대표하는 독수리로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의 상징으로 이해됩니다.
이들이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달려 있었다고 하는데, 상상해 보면 너무나 기괴한 모습입니다만, 이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항상 깨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결국 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알고 계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네 생물은 에제키엘서(1장, 10장)에 나오는 케루빔 또는 이사야서(6장)에 나오는 세라핌과도 비슷한데요, 밤낮으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 뭐라고 노래하지요?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라고 노래하는데요, 우리가 미사 때 노래하는 “거룩하시도다”는 오늘 요한묵시록의 노래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를 연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상에서의 전례가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왕권을 받아 오려는 귀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선 유다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정의와 선으로 우주를 다스리심을 거스르면서, 자기 마음대로, 악으로 다스리려는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미나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 말씀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인데 비해, 한 미나는 100데나리온입니다. 탈렌트의 60분의 1정도 되는 금액인데요, 7백만 원 정도 됩니다. 첫째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둘째 종은 다섯 미나를 벌어들였는데, 셋째 종은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왕권을 받아 온 귀족은 셋째 종을 크게 나무라며,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라고 묻습니다. 당시에 은행은 없었지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그들에게 맡기지 않았느냐고 꾸짖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에 욕심이 많으시다”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물을 남에게 나누어주어 그가 착한 삶을 산다면, 그것이 이윤이라 해석하십니다.
한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셋째 종의 잘못이, 영적인 선물을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것이라 해석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영적인 선물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 수건에 싸 놓은 셋째 종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적인 선물일까요?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이 다 영적인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은 무엇이든 다 영적인 것이고 무엇이든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오우라 성당, 나가사키, 일본(2024년 11월 5일 김유정 신부 촬영)
https://youtu.be/RPAuTSi16_w?si=PsmBnPHe1sbdZvqO
슈베르트, '독일 미사곡' 중 '거룩하시도다' (Zum Sanc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