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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미각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의 후각과 미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물의 미각 기관은 자신들이 식량으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탐지하는 수용체이며 주로 뿌리에 분포한다. 식물은 식량을 찾기 위해 뿌리를 내뻗어 토양 속을 샅샅이 뒤진다. 그리고 그 결과 식물의 미각은 인간세계 최고의 미식가 뺨치는 수준으로 세련화되었다.
식물을 미식가와 비교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물의 뿌리는 땅속 몇 세제곱미터 범위 안에 존재하는 극미량의 무기염류를 찾아낼 수 있다. 기껏해야 요리 한 접시 속에 들어 있는 식재료 몇 가지를 감지해내는 미식가와는 급이 다르다.
그러나 식물의 미각과 인간의 미각에는 차이점이 하나 있으며, 늘 그렇듯이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식물 쪽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양 속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의 미세한 농도기울기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동물보다도 예민한 미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뿌리는 끊임없이 토양의 간을 보는데, 그 이유는 질산염, 인산염, 칼륨염과 같이 맛있는 영양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식물의 미각은 극소량의 무기염류를 찾아내는 고도의 정밀성을 자랑한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런 식물의 뿌리를 관찰해보면 된다. 식물의 뿌리는 무기염류의 농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자라며, 토양 속의 무기염류를 남김 없이 흡수한 후에야 성장을 멈춘다.
식물의 행동은 보기보다 휠씬 더 정교하다. 사실 식물은 자신이 감지한 무기염류의 농도기울기에 비해 필요한 것보다 휠씬 더 많은 뿌리를 뻗는데, 이는 당장의 필요보다 미래를 내다본 포석이다. 즉, 미래에 발견될지도 모르는 영양분을 확보하기 위해 귀중한 에너지와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광산회사들이 새로운 갱도를 파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는 일에 비견된다.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여 투자한다는 것은 식물이 지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식물의 미각기관을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식물이 원하는 영양소는 대부분 토양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식물 종들은 여느 식물들과 다른 식성을 갖고 있는데, 소위 식충식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식물 학자들이 최초로 발견한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1760년 1월 24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대지주로 1754년부터 1765년까지 주지사를 역임한 아더 돕스는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왕립학회 회원인 피터 콜린슨(1694-1768)에게 편지 한 장을 썼다. 그 편지에는 '파리를 잡는 능력'을 보유한 놀라운 식물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식물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식물 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키가 작고 흰 꽃을 피웁니다. 동그란 잎은 조가비처럼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털이 돋아 있습니다. 곤충이 잎을 건드리거나 잎 사이에 떨어지면 양 잎이 스프링덫처럼 닫혀 곤충을 가둡니다. 나는 이 놀라운 식물에 '센시티바 아키아파모스케Sensitiva Acchiappamosche(예민한 파리잡이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콜린슨은 이 최초의 식충식물 샘플을 영국의 박물학자 존 엘리스에게 보냈고, 엘리스는 '디오니아 뮤시풀라Dionaea muscipula(파리지옥)'라는 학명을 정식으로 부여했다. 1769년 엘리스는 파리지옥의 식충성을 확인하고 린네에게 편지를 썼다.
[잎과 꽃을 포함한 식물의 완전한 모습을 담은 그림을 동봉합니다. 자연은 이 식물에 새로운 영양섭취 방법을 부여했습니다. 그 잎에는 관절이 달려 있어 마치 먹이를 잡는 기계처럼 작동 합니다. 잎 한복판에는 미끼가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잎의 안쪽 면을 뒤덮은 미세한 적색 분비샘에서 분비된 달콤한 액체로, 불쌍한 곤충을 유혹하는 역할을 합니다. 곤충이 액체를 맛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잎의 민감한 부분이 자극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양쪽 잎이 꼭 닫혀 곤충을 압사시킵니다. 더구나 양쪽 잎의 가운데 부분에는 각각 3개의 가시가 돋아 있어서, 곤충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쳐도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편지는 식충식물을 식물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최초의 기록물로 유명하다.
파리지옥이 곤충을 사랑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린네는 전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엘리스의 결론을 기각하고 돕스의 처음 판단을 받아들여 파리지옥을 '감축성 식물'로 분류했다. 다시 말해서, 촉각자극에 불수의적으로 반응하는 식물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파리지옥이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지만, 린네는 파리지옥을 미모사와 마찬가지로 '손을 대면 잎을 저절로 오무리는 식물'로 간주했다. 이처럼 엘리스와 린네의 결론은 완전히 반대였다. 엘리스에 의하면 파리지옥은 동물을 잡아먹는 사냥꾼이지만, 린네에 의하면 그것은 촉각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식물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상반된 결론을 내린 이유는 뭘까? 생물학계에서 지명도가 낮은 엘리스는 통념에 젖지 않아 자신이 관찰하고 스케치한데 의거하여 논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린네는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으므로 '자연의 질서'라는 고루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연의 질서란 당대의 과학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었던 '생물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린네는 이런 고정관념에 얽매인 나머지 자신의 관찰을 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증거를 부인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잘못을 저지르 고 말았다. 그 후로도 많은 연구를 통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린네는 식충식물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하나 '식물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파리지옥이 특정 곤충을 먹이로 삼는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명백했다.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많은 생물학자들은 공상에 의존하여 파리지옥의 행동을 설명했다. 즉, 그들은 "파리지옥의 잎이 닫히는 것은 일종의 반사행동이므로 파리지옥이 곤충을 살해할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곤충은 원하기만 하면 파리지옥의 잎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노쇠했거나 죽기를 각오한 등의 다양한 이유 때문에 그러지 않은 것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들은 오늘날의 우리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코미디 수준이지만, 당시의 과학계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 식충식물이 존재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사실을 부인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설명도 받아들일 기세였다.
생물학자들의 설명은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도 죽어서 소화되기 전에 포충엽을 빠져나오는 곤충이 단 한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맛이 없거나 단단한 물체가 잎 속에 들어간 직후, 닫혔던 잎이 다시 열리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제대로 된 답변을 들으려면 1875년 찰스 다윈이 <식충식물>을 출판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식충식물>이 출판된 후, 비로소 과학자들은 식물이 곤충을 잡아먹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식충식물'은 진실에 가까운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확했다. 왜냐하면 다윈의 시대에는 다양한 발견과 관찰을 통해 이미 수많은 식물들이 쥐나 도마뱀과 같은 소형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물들은 '육식식물' 대신 '식충식물'로 분류되었 는데, 그 이유는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식물 앞에 "육식'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너무 부담스러운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많은 종들, 특히 일부 벌레잡이통풀의 경우 소형 포유동물까지 잡아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식충식물'로 분류되어야 했다.
그런데 일부 식물들이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진화적 요인이 깔려 있다. 육식식물들이 수백 년 동안 진화해온 습지의 토양에는 질소가 부족하 거나 전무하기 때문에 단백질 합성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뿌리 대신 지상부를 이용하여 질소를 섭취하기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단백질 저장소'인 곤충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잎의 형태를 조금씩 바꿔 포충엽으로 개조했다. 곤충을 포충엽에 가둬 죽인 후, 이들은 곤충의 시체를 소화시켜 영양소를 섭취했다. 포획한 동물을 효소를 이용하여 대사시 킨 다음 잎을 통해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은 육식식물의 결정적 특징이다.
대표적인 육식식물인 파리지옥과 벌레잡이통풀의 사냥기술을 살펴보자. 여느 위대한 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먹잇감을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파리지옥의 경우, 미끼는 포충엽에서 분비하는 매우 향기롭고 달콤한 분비물이다. 이 분비물의 냄새와 맛에 넘어가지 않을 곤충은 없다.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유사품(가짜 먹이)이 얼씬거릴 때는 포충엽을 오므리지 않는다. 포충엽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못 먹을 것을 삼키거나 접근하던 먹이가 도망칠 수 있으므로 곤충이 포충엽의 한가운데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 실패율을 최소화한다.
'죽음의 덧'을 구성하는 두 잎의 표면에는 작은 털이 3개씩 돋아나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센서로 작용한다. 이 털을 건드리면 덫이 닫히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즉, 덫이 닫히려면 털을 2개 이상 건드려야 하며 그 시간 간격이 2초를 초과하면 안 된다. 이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파리지옥은 뭔가 흥미로운 것이 걸려들었음을 감지하고 덫을 닫는다.
포획된 곤충이 몸부림치며 털을 건드리면 파리지옥은 닫은 잎을 더욱 단단히 오므린다. 그리고 곤충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죽었다고 간주하고 잎에서 소화효소를 분비한다. 소화효소는 곤충을 거의 완전히 소화시킨다. 나중에 다시 열린 잎 속을 들여다보면 식물과 곤충이 치른 격전의 혼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파리지옥의 잎 위에서 잡아먹힌 곤충의 외골격이 발견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또 하나의 끔찍한 포식자 벌레잡이통풀은 파리지옥과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벌레잡이통풀은 특별한 주머니 모양의 기관을 진화시켰는데, 이것을 포충낭이 라고 한다. 포충낭의 입구 언저리에서는 달콤하고 향기로운 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그에 이끌려 다가온 곤충이 달콤한 액체를 빨아먹으며 향기가 나는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포충낭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다. 포충낭 내부는 자연계에서 가장 미끄러운 소재로 이루 어져 있다(과학자들은 이 특성을 기술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포충낭 속에 빠진 먹이는 소화액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탈진하고 이를 확인한 벌레잡이통풀은 소화활동을 개시한다. 가엾은 곤충은 영양분이 풍부한 수프로 바뀌어 서서히 흡수된다.
벌레잡이통풀 속 중에는 곤충뿐만 아니라 도마뱀과 소형 파충류, 심지어 제법 커다란 쥐까지도 잡아먹는 종이 있다. 희생자들의 뼈대는 마치 전리품처럼 포충낭 밑바닥에 쌓인다. 이것은 미래의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물질에 눈이 멀어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육식식물은 '식물이 미각을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지만 식물의 식습관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첫째,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육식식물의 가짓수는 적지 않다. 현재까지 알려진 육식식물은 최소한 600종인데, 저마다 상이한 덫과 도구를 이 용하여 다양한 동물들을 포획한다. 그러므로 식물의 육식성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더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600종에는 곤충을 포획하여 간접적으로 이득을 얻는 식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식물까지 고려한다면 육식식물의 수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식물(육식식물로 엄격히 정의된 식물)들만이 소형동물을 소화시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섭식행위가 식물계에 만연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주변의 감자나 담배, 혹은 참오동나무(본래 중국산이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흔히 발견됨)의 잎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거기에는 작은 곤충들의 시체가 무수히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뭇잎이 끈 끈하거나 독소를 품은 물질을 분비하여 곤충들을 죽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식물들이 소화시킬 수도 없는 곤충들을 왜 죽였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문제 같지만 잠깐만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설사 곤충을 소화시킬 수 없다고 해도 곤충의 시체가 땅으로 떨어져 분해되면 질소가 방출될 것이고, 그러면 식물이 그것을 섭취할 수 있다. 나뭇잎에 계속 달라붙어 있는 곤충들은 세균이 처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식물은 질소가 풍부한 노폐물을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수의 식물들은 육식식물로 분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식단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식물들을 전문용어로 원시육식식물이라고 부른다.
그 밖에도 식물의 식생활에는 놀랄 만한 것들이 많다. 2012년 초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브라질 세라도 지역의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에서 서식하는 필콕시아Philcoxia(질경이과의 일종) 속 식물은 끈끈이 잎adhesive leaf을 이용하여 땅속의 선충nematode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끈끈이잎은 모래로 덮여 있으며, 선충은 끈끈이잎 근처를 지나가다 잎에 달라붙은 다음 소화되어 필콕시아에게 (토양에 부족한) 질소를 제공하게 된다. 지금까지 지하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확인된 식물은 필콕시아밖에 없는데, 식물학자들은 이 점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척박한 토양에 사는 식물들도 필콕시아와 유사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까지 육식식물로 분류된 식물은 약 600종이다. 그러나 원시육식식물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하 사냥꾼들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그 가짓수는 휠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식물의 식생활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이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
첫댓글 낮설게 느껴지는 식물에 뇌가있고 육식식물,식물들의 식생활,식물들의 한계가 어디일까요 대단한 식물 능력 인정해야 겠습니다 대단한 울 카페지기님도 인정 👍
한련화를 기르며 식물이게도 생각이 감각이 있다는 것을 여러번 실감하며 땅속뿌리의 역활에 대해 배웁니다.
미각? 놀라운 설명이네요. 파리지옥풀의 꽃은 수직으로 높이 올라가서 피는 이유는 자신의 꽃가루를 수분해주는 매개곤충은 잡아먹지 않으려는 진화인데... 미각으로까지 설명하면 서로 사맞지 않기는 하겠지만 여튼 식물만세입니다. 카페지기 만만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