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국어 선생님
이헌 조미경
고교 2학년 수학여행은 가족에게는 선머슴아의 얼굴로, 친구들에게는 문학소녀의 얼굴로 각인된 사건이었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갔다. 수학여행 이튿날 점심 후 흔들바위를 구경하고 하산할 때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을 그리더니, 순식간에 소나기가 내렸다. 산길을 뛰다시피 걸었지만,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거리는 아무리 빠르게 걸어도 올라 갔을때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를 덜 맞기 위해 친구들과 말을 줄이고 서둘러 걸었지만, 야속한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우비가 없던 나는 겉옷은 물론이려니와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는 몸에 척 달라붙어 구불구불 산길을 걷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운동화에 빗물이 스며 드니 기분은 꿀꿀하고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우리들이 묵었던 여인숙은 3층짜리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마당도 없이 멋없이 지어진 건물로
한 방에 5명 이상이 잘 수 있는 온돌방으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이 양쪽으로 있었다. 복도 창문으로 바라본
설악산 근처는 여인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창문을 열고 옆 건물인 다른 여인숙에서는 남학생들이
창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어디서 왔느냐? 몇학년이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구들은 우리가 묵은 숙소인 여인숙 방을 나와서 마당에서 옆 건물 남학생들이 돌맹이에
전화 번호를 적어서 던지면, 돌맹이를 방으로 가지고 와서 펼쳐 보고 메모를 했다고 한다.
둘째날 저녁, 감기 기운에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다. 아침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나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영문을 모르고 함께 웃었다. 그러나 나는 웃고 있는 친구 얼굴을 보고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바탕 배가 아프게 웃었다. 우리방에 있던 친구들은 밤 늦게 까지 수다를 떠느라 늦잠을 잤는데 옆방에서 잠을 자던 친구들이
내가 자는 방에 살그머니 들어와 매직과 치약으로 얼굴을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에는 매직으로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다른 친구는 치약으로 얼굴을 그림을 그려 놓아 서로 인상을 쓰면서 세수 했다. 3일째에는 오색 약수터를 갔는데, 그때부터 심하게 목이 붓고 아팠다. 말을 할때마다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인해, 친구들이 서로 나에게 말 하지 말고 침묵을 지키라고 했다. 하지만, 즐거운 수학여행에서 어떻게 수다를 떨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결국 즐거운 수학여행은 몸살감기로 버스 안에서도 계속 잠만 잤다. 가을의 정취는 잠을 자는데 시간을 허비 하고 2박 3일의 수학여행은 끝이 났다. 2박 3일의 수학여행 후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목이 쉬어 기침을 심하게 하는 나에게
얼마나 친구들과 떠들고 놀았느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그랬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 해 가을 백일장에서 국어 선생님께서는 기행문 후기글을 과제로 주셨다. 그 당시 나는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잠자는 친구들 얼굴에 치약으로 그림 그리기, 매직으로 만화 캐릭터를 친구들 얼굴에 그리는, 짓궂은 친구들과 함께 장난친 이야기와
잠에서 깨어난 친구들의 어이없는 표정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킥킥대던 여인숙의 아침과
심지어는 아침 식사 시간에도 화를 내던 친구들과 옆 여인숙에서 던진 돌멩이에 전화번호를 적어둔 성숙한 친구들의
이야기, 선생님도 모르는 우리들만의 비밀을 사진을 찍듯이, 소상하게 고백한 일로 인해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행여 남학생들과 연락을 시도하고 연애를 할까 걱정하는 선생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들을 교무실로 불러 우리를 닦달하셨다.
그때 내가 쓴 기행문은 우리 반 대표로 뽑혀 전교생이 읽을 수 있는 백일장에 나갔지만, 아쉽게 상은 받지 못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내게 대학을 가려면 문창과나 국문학과를 가라고 하셨다. 지금도 가끔 글이 막히면 40년 전의 여고 시절 국어 선생님이 너무나 궁금한데, 나중에 국어 선생님의 소식을 들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이미 고인이 되신 후였다.
국어 선생님의 가르침과 수업 시간에 국어 과목이 너무나 재미있었는데, 선생님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나는 작가의 길을 걷게 해 준 두 분의 은사님 중
한 분을 만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작가의 길은 나무나 험난 하기에.
오래전 문학인의 길에 들어섰을 때 너무나 뵙고 싶고 궁금했던 선생님과 교수님
지금도 나는 청출어람을 강조하신 조회경 교수님을 잊지 못한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교수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하고 싶고, 나의 고민울 털어놓고 싶은데, 교수님을 찾아 뵐 용기도
없고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은사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언제쯤 청출어람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여 교수님처럼 훌륭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