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상쾌한 아침이다. 눈을 뜨면 따뜻하고 포근한 아내의 손길을 느끼면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낀다. 매일 안개 속을 헤치고 찾아다니는 행복이 나에겐 언제나 강렬한 햇살처럼 뜨겁게 찾아온다. 오늘도 행복의 바람이 불어온다. 나에겐 넘치는 행복의 바람이다.
온 세상 그 어떤 바람도 아내의 손길처럼 따뜻한 바람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이것은 나에게 벅찬 선물처럼 느껴진다. 행복이란 느낌에 따라 달콤하기도 하고, 코끝을 스치는 감미로운 향수와 같기도 하며, 군밤처럼 구수하다. 사람에 따라 느낌은 저마다 다르리라. 내 느낌은 항상 군고구마같이 구수하면서 달콤하다. 이러한 향기가 항상 내 곁에서 은은하기 피어오른다.
아내의 사랑이 나에겐 으뜸가는 행복의 바람이다. 아내의 손길이 닫는 곳마다. 평화와 행복의 향기가 넘쳐흐른다. 가정의 평화는 아내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들딸들을 돌보는 데서부터 어느 하나 손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내의 손끝이 닿는 곳은 사랑이 가득하고 윤기가 흐른다. 그야말로 행복의 바람이 부는 원천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을 잡고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이 기뻐하시고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가슴이 뿌듯하며 처음으로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아들딸들에게 효도를 받고 보니 부모 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아내의 덕택이 아니면 가능했겠는가?
이 세상 부모들은 아들딸들이 자라서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손자들과 함께 선물꾸러미를 두 손에 들고 엄마를 부르며 대문에 들어서면 마냥 행복하다. 기를 때는 힘들었지만 자녀들로부터 효도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내가 처음 가정을 꾸밀 때는 꿈과 희망에 부풀었다. 마누라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 언제나 즐거운 아침식사를 준비하였다. 이제까지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다가 마누라가 해준 음식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아내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꿈을 키워 나갔다. 부푼 꿈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었다. 딸과 아들은 순탄하고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라고 부모에게 순종하였다. 아이들은 착해서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했다. 즐겁고 신나게 키웠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아이들도 건강하며 공부를 잘하고, 아내도 살림을 잘하고 부모님을 잘 모시니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모든 행복을 두 손에 거머쥐고 더 큰 꿈을 이룩하려고 앞만 보고 달렸다. 모든 생활이 즐겁고 신났다. 하는 일마다 다 원하는 대로 어려움 없이 잘 풀렸다. 이와 같은 것들은 다 아내를 맞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행복의 바람은 아내에게서부터 불어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전형적인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잘했다. 애들을 교육시키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소홀함이 없이 잘했다.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하여 주위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또 요리솜씨가 좋아 식탁을 즐겁게 만든다. 부모님 덕으로 미모가 빼어나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산다. 거기에다 20여년이나 운동으로 건강을 다져왔다. 몸도 부드럽고 날씬하며 외형적으로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이상형이다. 이런 천사 같은 여성을 아내로 맞게 되었으니 날마다 행복이 넘쳐흐른다.
아내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즐겁게 공부하도록 분위기 조성에 전념했다. 건강하게 관리해서 스스로 알아서 노력하도록 힘썼다. 아이들도 우리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말을 잘 듣고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을 하고난 뒤에도 전공을 살려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하여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식들의 교육이다. 비교적 바르게 잘 가르치고 부모 말에 순종하며 비뚤어지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해준 데는 모두 아내의 도움이 컸다. 아내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즐겁고 신나게 처리했다. 행복의 바람을 몰고 다녔다. 나는 아내를 도와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내는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때부터 헬스장, 수영장, 여성회관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크로마하프단에 들어가 악기를 배우고 익히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해가 거듭될수록 경력과 실력도 늘어갔다. 생활체육협회가 주관하는 전국경연대회에서 전주시의 대표로 출전하여 영예의 대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기타를 배우려고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대학시절에 조금 해봤던 기타를 하고 싶었다. 그 뒤 아내는 기타를 배우겠다고 나와 함께 등록을 했다. 기타는 한 번도 만져보지 않은 풋내기였다.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크로마하프를 연주한 경험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은 한 5년 정도 되었는데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었다.
아들이 가끔 우리에게 골프를 권유했다. 우리는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거절했다. 그 뒤 나는 전라북도서도협회가 주최하는 서도대전 한국화부문에서 특선을 했다. 멀리 제주도에서 생활하는 친구 내외가 일부러 전시회에 참석하러 왔다. 반갑고 고마웠다. 그 친구의 권유로 골프도 배우기 시작했다. 요즈음은 아내와 함께 골프연습에 빠져있다. 아이들이 골프클럽도 사주었다. 그리고 아들이 일부러 내려왔다. 명절 때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오지 않던 아들이 내려왔다. 가까운 골프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내와 함께 골프를 배우니까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같이 운동을 하니까 아주 좋았다. 행복의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아내에게 감사하며 언제나 아낌없는 사랑으로 행복의 바람을 끊임없이 일으켜 주기를 기대한다. 아내 만세를 부르고 싶다.
(2013.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