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의 시신을거두고 단종의 초혼제까지지낸 김시습을 철권통치자 세조는 왜처벌하지 않았을까 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이삼엄한 사건에침묵하지만 후대야사는 이를세조의 치밀한정치적 계산과 인재에대한 미련으로기록한다 정사와야사의 간극을통해 두인물의 서늘하고도 기묘한관계를 사료적으로 고찰해본다 정치적 실리에따른 선택적 숙청과방임 세조의 1417~1468 숙청방식은 정권을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에 집중되었다 사육신과같이 단종복위를 목적으로 구체적인 군사행동이나 쿠데타를 계획한인물들은 가차없이 처형되었으나 생육신처럼 정계진출을 거부하고은거하며 소극적으로 저항한 인물들에게는 처벌대신 방임의 태도를취했다 이는 김시습 1435~1493 현실정치 체제밖으로 스스로 이탈하여실질적인 역모의 위험성이없었기에 가능했던 정치적 판단이었다 세종의 인재를아낀 명분과 정통성확보 김시습은 5세때이미 세종대왕 으로부터 그천재성을 인정받아 장차크게 쓰일인재로 공인된 인물이었다 세조는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킨후 자신의 정통성을 세종의 학문적계승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따라서 세종이 직접발탁했던 당대최고의 지식인인 김시습을 살해하는것은 자신의 정치적정통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패륜적행위로 비춰질수있었다 세조는 오히려 김시습을회유하려 시도함으로써 자신이 인재를아끼는 대범한군주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했다 유교질서밖의 승려신분을 활용한 저항과묵인 김시습은 단종의 폐위소식을 접한후 읽던책을불태우고 스스로 삭발하여 승려가되었다 법명을 설잠이라하고 산천을유랑한 그의행보는 유교적 관료사회의 규범밖에 머무는것을 의미했다 세조는 김시습의 거침없는언행을 처벌하는대신 이를 세속을등진이의 돌출행동으로 치부하며 방치했다 이는 김시습을제거하여 얻을이득보다 그를살려두어 자신의 관대함을 증명하는것이 정치적으로 훨씬유리하게 작용 되었을것이다 김시습과 세조 사육신 시신수습과 세조의 고의적묵인이다 김시습이 노량진에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지냈다는 일화는 17세기학자 허목의 미수기언권15 사육신묘기등 후대 야사기록에 근거한다 당시세조의 삼엄한정보망을 고려할때 세조가 이사건을인지했을 가능성은 매우높다 그러나 이를공식화하여 처벌할경우 김시습을 죽여야만하는 정치적 부담이생기므로 세조는 이를 비공식적으로 묵인하고 실록에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사안을 덮었을것으로 보인다 이는왕권을 위협하지않는 선에서의 충절은 눈감아주려는 세조의 치밀한계산이 깔린결과이다 두사람 사이에는 세종시대의 기억을공유하는 특별한 유대감이존재했다 세조는 무뿐만아니라 학술과예술 특히 불교에능통한 지식인군주였다 김시습 또한 유·불·도를 아우른 당대최고의 천재였기에 세조에게 김시습은 비록자신을 비난할지언정 자신의 학문적깊이를 이해할수있는 드문 대화상대였다 피의 숙청이후 죄책감에시달렸던 세조에게 승려가된 김시습은 처단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신의 내면적고뇌를 투영하는 거울과같은 존재로 여겨졌을것이다 문헌을통해본 세조와 김시습의일화고찰 동야휘집에 전하는 인재소환의기록 조선후기 이희준 1772~1839 편찬한야담집인 동야휘집에는 세조 1417~1468 산중에은거하던 김시습 1435~1493 재능을아껴 전지를 내린일화가 기록되어있었다 중사를보내 설잠에게전하라 너는비록 산속에있으나 또한 재능있는 선비이니 속히나오라 여기서설잠은 김시습이 단종폐위이후 승려가되어 사용한법호다 이기록은 김시습이 정치적으로는 조정을등졌으나 그의 학문적깊이는 최고통치자인 세조에의해 여전히높게 평가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인용된다 동야휘집 연려실기술에 나타난 양광과묵인 조선후기실학자 이긍익 1736~1806 기사본말체로 엮은역사서 연려실기술은 세조가 김시습의기행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김시습은 비록미친체하며 살고있으나 또한 재능있는선비이니 중사를보내 불러오게하라 이구절은 세조가 김시습의행동이 진실된 광증이아니라 의도적인 미친체함을 간파하고있었음을 시사한다 세조는 그를처벌의대상인 정치적 적대자가아니라 세상을등진 재주있는 선비로 범주화함으로써 그의 불복종을 묵인하고 회유하려했던 통치전략을 보여준다 공식사료와 야사의 기록적차이 이상의일화들은 조선후기 지식인사회에서 김시습의 절의와재능을 칭송하기위해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기록들은 국가의 공식사료인 조선왕조실록 에서는 확인되지않는다 역사학계에서는 이기록들을 실제일어난 사건으로 단정하기보다 김시습의 독특한 삶의궤적과 그를바라보는 당대의 시각이반영된 설화적기록으로 이해한다 실록에 기록되지않았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세조가 김시습의도발적인 행위들을 공식적인죄로 다루지않고 비공식적 영역에 머물게함으로써 불필요한 정치적파장을 최소화 하려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한다 세조가 김시습을 살려두고인재로 대우했다는 이야기는 정통사서인 실록에는없으나 동야휘집과 연려실기술등 민간과 문인사회의 기록을통해 강력하게 전승되었다 이는 김시습이라는 인물이가진 도덕적권위와 세조정권의 복잡한인재관이 결합하여 형성된 조선시대의 중요한 역사적담론이라 할수있다 국가공식기록인 조선 왕조실록이 김시습의저항과 세조의방조에 침묵한것은 어쩌면 그서슬퍼런 시대적 긴장감을감당하기 어려웠던 권력의의도된 회피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연려실기술과 동야휘집같은 야사가 그들의 기묘한인연을 세세히 복원해낸것은 시대가 차마꺾지못한 지조와 천재성을 우리역사가 끝내잊지 않으려했던 민심의 기록일것이다 피의 숙청속에서도 조카를위해 초혼제를지냈던 김시습 그리고그를 미친체하는 인재라부르며 끝내 죽이지않았던 세조 두사람의 위태로운 동행은 지조가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묻는다 구름은 흩어지고 물은 흘러가는데 인간의 정만은 가을달처럼 남았구나 매월당김시습 매월당집중에서 천재라 불렀으나 스스로 하이바를깎고 평생 방랑의길을 택했던 매월당김시습 그가평생 잊지못했던 한사람 그리고 그비극적인 죽음곁을 묵묵히지켰던 또다른 충신엄흥도 권력의 칼바람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않았던 두사람 단종의 비극적인삶뒤에는 자신의 모든것을걸고 그를지켰던 두인물이있다 방랑하는 지성 김시습 세살의 시를짓던 신동이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소식에 책을불태우고 평생권력을 조롱하며 방랑한 생육신의상징이다 행동하는충절 엄흥도 영월의말단 관리였으나 옳은일을하다 화를당해도 달게받겠다며 모두가외면한 단종의 마지막을 책임진인물 결코만날수 없을것같던 두사람은 충심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역사의 페이지에서 만난다 차가운영월땅 아무도 거두지못한 단종의 마지막 1457년늦가을 유배지 영월에서 단종이 열일곱의짧은 생을마감한다 세조의 서슬퍼런감시아래 단종의시신은 거두는이없이 차가운 동강물속에 던져진다 시신을 거두는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포고령이내려진 그야말로 어둠의 시대였다 권력의 기세에눌려 충성을맹세하던 신하들조차 숨을죽였고 어린 왕의죽음은 그렇게 적막한강물속에 버려져있었다 충절를위해 화를달게받으리 엄흥도의 목숨건수습 모두가 몸을사릴때 영월호장 엄흥도는 홀로통곡하며 차가운 강물속에서 주군의시신을 정성껏 건져올렸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는것이 두려운 것이아니라 의리를 저버리는것이 더두렵다는 말을남기며 강가에서 정성스레시신을 수습했다 그는자신의 세아들과함께 어둠을틈타 단종의시신을 지개에지고 산으로향했다 가문의 멸문지화를 각오한 이무모하리만큼 숭고한 결단이있었기에 어린왕은 비로소 차가운 물속이아닌 영월의 동을지산기슭에 영원이 잠들수있었다 권력의칼날보다 무거웠던 신하의의리가 버려진 왕의마지막 길을비추는 등불이 된것이다 동학사의조우 어의를안고 찾아온충심 장례후엄흥도는 단종의 어의를품에안고 계룡산 동학사로향했다 그곳은 이미단종의 넋을기리기위해 초혼제를준비하던 김시습 설잠스님이 있었다 시신을묻은 관리와 그영혼을달래던 선비의만남 두사람은 서로의손을잡고 나라를잃은 슬픔과 임금을향한 그리움을눈물로 나누었다 김시습은피눈물로 얼룩진 단종의어의를 어루만지며 비록나라는 무너졌어도 끝까지 지켜내야할 선비의 도리가무엇인지 다시금 뼈에새겼다 실제로동학사 숙모전에는 두사람의위패가 나란히 모셔져있으므로 이이야기는 충분한상징적 근거를가진다 흩어진가족과 지켜낸의리 그들이선택한 고독한은거 엄흥도는 결국관직을 버리고 일가족을 데리고 깊은산중으로 피신해야했다 세상의눈을피해 이름없는 산천을헤매면서도 그들은권력의 부귀영화보다는 가슴속에품은 떳떳한신념 하나를 등불삼아 긴세월을견뎌냈다 송시열의외침과 숙종의결단 두사람의충절이 세상의 빛을본것은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뒤였다 우암송시열은 효종시절부터 엄흥도같은 충신이 버려져서는 안된다며 끊임없이 복권을주장했고 마침내 숙종대에 이르러서야 단종을왕으로 복위시키며 김시습과 엄흥도의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백성들이 입에서입으로 전해진 이들의진심은 수백년의 세월을견뎌 결국 정당한역사의 평가를받아냈고 오늘날 우리에게 잊혀선안될 인간의존엄을 일깨워준다 매월당 김시습의시 자적 종일토록 구름보며 앉아있노니 구름 가고오는것이 내마음처럼 한가롭네 이몸을청산에 아주 맡겨두니 세상일 뜬구름과 같아 아무상관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