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이러한 두 개의 로망이 합쳐진 자동차다. 에스컬레이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매트릭스 2’를 통해서이지만,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지누션’이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 에스컬레이드를 등장시키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커다란 차체와 크롬 도금된 거대한 프론트 그릴 그리고 캐딜락의 대형 엠블럼은 그들이 음악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리기에 최적의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날렵함을 갖춘 4세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SUV임에도 날카로운 선을 갖춘 브리티시 수트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는 캐딜락이 본래 갖고 있는 고급스러움을 그대로 대변한다. 수트 대신 노퍽 재킷(Norfolk jacket)과 헌팅캡을 조합하면 나타나는 레저의 이미지는 넉넉한 공간을 갖고 있는 SUV에 그대로 어울린다. 대형 SUV로써 이렇게 변할 수 있는 얼굴을 갖춘 자동차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에스컬레이드의 진면목을 알아볼 차례다. 오늘의 테마 음악은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 뮤직비디오에서 캐딜락에 탑승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여유를 즐기던 그의 모습이 에스컬레이드와 매치되면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밀레니엄 시대에 돌입하면서 수직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던 캐딜락의 디자인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역대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4세대 에스컬레이드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크롬 도금된 대형 프론트 그릴과 그 중앙을 장식하는 방패 모양의 대형 캐딜락 엠블럼이다. 과거와는 달리 무광 크롬을 사용하면서 반짝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다른 자동차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세로로 긴 형태의 헤드램프와 안개등은 LED가 적용되어 있는데다가 5개의 큐브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야간에도 멀리서 보면 한 눈에 에스컬레이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측면은 플라스틱 가드도 없고 펜더도 크게 돌출되어 있지 않아 매끈하다는 느낌을 부여한다. 차체가 상당히 크고 휠하우스도 크기 때문에 22인치라는 큰 지름을 가진 휠이 평범하게 어울린다.
사이드미러는 세로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차체 크기와 함께 가로 길이가 짧기 때문인지 좌우 확인이 힘든 면이 있다. 측면 사각지대를 자동으로 감지해서 경고하는 전자장비의 유용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리어 역시 프론트와 마찬가지로 웅장함과 미래지향적인 면이 공존한다. 루프부터 리어 범퍼까지 이어지는 테일램프는 세로로 긴데다가 LED를 적용했기 때문에 화려하고 시인성도 우수하다. 테일게이트에는 세로로 한 줄의 무광크롬 바가 적용되어 있어 엑센트를 부여한다.
외형에서 보여주었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는 실내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LCD 계기반과 센터페시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터치로 조작되는 에어컨 스위치 등이 특히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1열 외에는 사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찾기 힘들고, 그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대시보드는 물론 도어 트림에도 가죽, 우드, 스웨이드를 혼합 적용해서 질감을 높였다. 과거에는 없었던 흰색의 간접조명도 적용되어 야간에 무드를 연출한다.
4 스포크 스티어링 휠 좌우에는 버튼들이 조작하기 편하도록 위치하고 있고, 그 오른쪽 뒤에는 칼럼 타입의 변속 레버가 위치한다. 변속 레버에는 견인을 위해 따로 출력을 낼 수 있는 버튼과 시프트 스위치가 있는데, 후술하겠지만 에스컬레이드의 성능이 워낙 출중하기 때문에 패들시프트가 적용되지 않은 점이 약간은 아쉽다. 리어 미러는 평상시에는 거울로 뒷모습을 비추지만 탑승객 또는 화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질 경우 레버를 조작해 카메라 모니터를 출력할 수 있다.
시승 모델은 7인승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마 3열 좌석을 접고 4인승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1, 2열 좌석은 좌우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여유롭고 가죽을 적용해 고급스러움이 배가된다. 2열 시트는 앞뒤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등받이를 상당한 각도로 눕힐 수 있는데다가 독립적인 팔걸이도 마련되어 있어 편안함을 보장한다. 사실 그보다는 1열과 2열을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에어컨의 공이 더 클 것이다. 2열만을 위한 모니터도 마련되어 있다.
수납공간은 넉넉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1열 도어에도 이중으로 수납공간에 마련되어 있는데다가 센터콘솔의 수납공간은 신발 박스 정도는 여유 있게 들어갈 정도로 크다. 여유 공간이 많은 만큼 그 부분을 모두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과거의 미국 자동차와는 달리 소소한 곳의 마감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지고 손가락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단, 작은 조명 홀 같은 부분은 아직 마감이 아쉬운 부분이 있다.
4세대 에스컬레이드가 현재 탑재하고 있는 엔진은 하나, 6.2L V8 OHV 자연흡기 엔진이다. 5,600rpm에서 최고출력 426마력, 4,100rpm에서 최대토크 62.2kg-m의 막강한 출력을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와 4륜구동 시스템을 조합해 약 2.6톤의 차체를 견인해 나간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면 출력의 부족은 전혀 느낄 수 없다. OHV 엔진의 특성 상 저회전에서도 제법 강한 토크가 분출되기 때문에 시내에서 저속으로 주행할 때도 엔진 회전을 높일 필요가 없고, 그 결과 실내에서 미약하게 그르렁대는 엔진소리 외에는 조용함이 연출된다. 8단 자동변속기는 각 단의 기어비가 긴 편으로 1단 65km/h, 2단 99km/h, 3단 130km/h를 기록한다. 엔진 회전 한계는 6,000rpm으로 수동모드로 변속하면 엔진 회전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고 회전 한계에서도 강제로 변속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배기량 OHV 엔진을 탑재한데다가 스포츠모드도 갖추고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이 거대한 덩치를 스포츠카와 비슷한 느낌으로 가속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스포츠카라고 하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스컬레이드의 엔진은 약간의 개량만을 거친 뒤 캐딜락의 레이스 머신에 탑재되어 ‘데이토나 24시’를 정복할 정도로 잠재력이 높은 엔진이다. 고급스럽고 얌전한 것 같지만 놀 때는 놀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막강한 출력을 받쳐주는 것이 차체와 서스펜션이다. ‘바디 온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지만 GM의 최신 기술로 다듬어진 경량 플랫폼인 K2XX 플랫폼을 적용하고 있는데다가 프론트에는 독립식 코일오버 쇼크, 리어에는 5링크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경량화된 스테빌라이저가 적용되는데다가 캐딜락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같이 적용되어 SUV임에도 안정된 승차감을 실현한다. 큰 덩치를 초고속 영역으로 밀어붙여도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안정감은 코너링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차가 SUV인만큼 스포츠카의 감각으로 코너를 공략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는 높은 진입속도에서도 차체가 약간 휘청이고 마는 정도다. 노면을 요철을 만나면 프레임 바디의 특성 상 상부 바디는 거의 그대로 있고 하부 바디만 요동치는 느낌이 있는데, 에스컬레이드는 그 느낌조차도 아주 미미하게 전달된다. 게다가 노면 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거의 없어 실내는 정말 안정적이다. 고급 대형 SUV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에스컬레이드는 대배기량 엔진임에도 기름을 절약하는 의외의 면을 보여주는데, 100km/h에서 1,400rpm만을 기록하는데다가 V8 엔진을 순식간에 V4로 전환시키는 기통 휴지 기능도 있어 가속 페달에 자주 힘을 주지 않고 항속한다면 10km/l가 넘는 연비를 어렵지 않게 기록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드가 의외로 실용적인 자동차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최신 모델인 만큼 ADAS 장비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사각지대 감지 시스템, 전방 충돌 경고 시스템, 차선이탈 감지 및 방지 시스템 등 갖출만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의 경우 60km/h 이상의 속력에서만 작동하고 차선을 밟기 바로 전에야 반응하는 1세대 시스템이지만 한국의 도로 폭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장비이기는 하다. 위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시트를 통해서 진동을 전해오는데 시끄러운 경고음이 없어도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대형 고급 SUV라는 로망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자동차다. 물론 이 급에서 에스컬레이드보다 비싼 모델들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크기와 편안함이라는 명제는 다분히 미국의 그 느낌이기 때문에 미국이 본토인 캐딜락이 잘 살릴 수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에는 약점으로 꼽혔던 실내 재질과 마감과 같은 부분도 많이 개선되었다. 역시 100년을 넘는 세월동안 자동차를 만들어 온 경험은 쉽게 볼 수 없다.
이제 캐딜락에게 남겨진 과제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다. 본토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성공의 상징’이 되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과연 어떨까? 에스컬레이드는 크기에 비해 그동안 막강한 존재감을 국내에서 내비치지 못했지만, 최근 대통령의 경호차량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국내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스컬레이드의 로망을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글로벌오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