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기의 한토막을 소개한다.
"동네 양아치들이 찍어 달라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난리다.
평일 날에는 가끔씩 지나가는 군대 차나 부식 팔러다니는 봉고트럭 할아버지가 전부 일 정도로 한가했는데, 요즘은 선거 막바지라서 그런지 매일 시끌벅쩍 하다. 언제 지랄발광이 끝날지..휴..."
매년 선거철이 되어 온 동네가 개판이 될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아무리 양아치라고 우습게 알아도 저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 아닌가.
나아간다면 저들이 우리들의 역사를 규정짓고 만들어가지 않는가. 가치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저들의 가치에 의해 저들의 천박한 역사관에 의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가. 나와 연관된 직간접적인 인간들도 수 없이 많고 내가 속해 있는 정당도 있지만 나는 선뜻 누구 하나 찍을 수 없다. 아무리 찍고 싶어도 손이 벌벌 떨려서, 잘못 찍을 것이 뻔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 처럼 그렇게 엉터리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자고로 민족이라는 말을 지꺼린 인간들이 바로 저런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은 19 세기 이후다.
조선시대 까지 우리가 교육 받았고 거의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와 민족의식을 규정 짓는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서민들은 도저히 구경도 할 수도 없는, 선비들일지라도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희귀한 문서였다.
게다가 단군신화가 몇 줄 언급되어진 신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만주 동북 지구 어느 만주 부족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헌화로가 이름 지어진 그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국가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갈족이 있다면 기가 막혀 웃을 것이다.
게다가 명문화된 역사란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후에 남겨진 극소수 사료만으로 기술된 허구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된 이야기 조차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권력을 가진 자와 또는 가지려고 하는 자와, 그래서 그런 자들이 쓸 수 밖에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렇고 광개토왕이 그렇고 풍신수길이 그렇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 세기 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20억 사이로 추측이 된다. 그 인구는 거의 이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20 세기 들어와서 인류의 생활과 성문화가 극도로 발달하여 지금은 70 억 가까운 인구가 되었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중세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와 인도와 동 서아시아 일부의 역사가 전부다.
중세까지의 역사에 등장한 인구수를 대충 잡으면 5천만명이 넘지 못한다. 나머지 14억 오천만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 아시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의 부족들 그리고 북극의 부족들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머지 14억 5천만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되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의 문명 역시 그들의 사회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글자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역사란 강제된 기록이고 허구라는 것이다. 그것에 준거하여 민족이란 말이 탄생된 것이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한국사를 우리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이고, 일본사기를 두고 백제인인가 일본인인가 또는 백제 귀화인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계몽주의자 홉스 루소 로크에 걸처 완성된 사회계약설은 현대국가 정치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는 절대적이다.
루소의 사회계약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국가: 나라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민주주의가 되기 어렵다.
루소에 의하면 국가는 지극히 규모가 작아서 인민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알고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투표를 통해 충분히 민의가 전달이 된다.
2.삶이 간소해야 한다.
복잡한 사회구조와 질서는 많은 법과 절차를 만들어야 하고, 이는 바로 권력을 가진 상층부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같은 죄를 지어도 자본주의 현대 국가에서는 변호사를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 감옥에 가는 경우가 많다.
3. 지위와 부의 평등: 선진국들에서는 인구의 5퍼센트가 국부의 6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4. 사치의 부재: 민주주의를 하자면 사치는 금물이다. 사치는 부유함을 필수적으로 만들고 그러면 부 자체가 미덕이 된다.
민주 국가의 모든 노력은 국민들의 복지이지 사치가 아니다. 사치는 가난뱅이와 부자를 모두 타락시킨다.
부자는 사치를 소유함으로 타락하고 가난한 자는 질투를 통해서 타락한다. 사치는 사람들을 타인의 의견에 대한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과연 역사에 기록된 국가라는 개념은 루소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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