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09-12-08 21:07 조회 : 1684 |
| | | 초겨울 단상(斷想)
겨울이 은빛 갑주를 철렁이며 마을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눈물도 얼어붙는 한복판의 겨울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동안 추위에 길이 들기도 하겠지만 한겨울은 확실하고 명징한 때문이지요. 지금 같은 초겨울이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천지사방이 적막하며 사물은 연무(烟霧)처럼 모호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이 계절 아슴아슴 가슴을 스치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봅니다.
낮게 드리운 하늘은 안개로 자욱하고 헐벗은 나무는 추위에 떨며 살갗에 소슬한 바람이 스칩니다. 불안함이 짙어지고 낯선 곳에 혼자 던져진 것만 같은 소외감도 엄습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 한편 절망과 고독 속에 한없이 빠져 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늪에 한번 발을 담그면 밑바닥에 닿은 후에야 비로소 헤어 나올 수 있는 이치인가 봅니다. 사람은 철저한 소외, 불안과 절망 가운데서도 위안을 찾고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속에 인간다움이 있지 않을까요? 계절은 인간존재의 불완전성과 함께 인간존재의 존엄과 회복을 생각케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귀 기울여 보면 적요함을 뚫고 멀리서 종소리와 북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마음에 파고(波高)를 일게 하는 종소리는 인적 드문 어느 마을 교회의 첨탑에서 들려오고, 북소리는 이름 모를 촌락의 성긴 관목 숲에서 들려옵니다. 헌데, 이상도 하지요. 소리가 멀리서 뿐 아니라 가까이에서도 들리는 것이. 종소리는 머리 위로 새 떼처럼 흩어지고 북소리는 가슴 속에 말발굽처럼 울려 퍼집니다. 계절은 호소하고 채근(採根)합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어디로든 떠나라고. 도대체 왜 그러고 있느냐고?
계절의 정취가 마냥 무거운 것만은 아니고 애틋함도 있습니다. 그 옛날 대학시절 강의실에서 훔쳐보았던 사모하던 여학생의 이상하게도 생경했던 옆얼굴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토요일 오후 신축 도서관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며 들었던 한 묶음 여학생들의 쾌활한 소성(笑聲)도 귓바퀴에 맴돕니다. 그녀들의 가슴에는 책과 노트들이 상품처럼 한 아름씩 들려있었답니다. 어느 해였던가 아니면 매년 그러했던가. 기말시험이 끝나는 12월 초 어느 날도 생각납니다. 대학에선 시험이 끝나면 자연스레 겨울방학으로 이어지잖아요. 축축한 낙엽이 몸을 뒤채는 교정에는 돌아선 사람들과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낙엽처럼 흩어졌고, 안녕이란 인사말은 꼬리 긴 휘파람처럼 메마른 가슴에 남았군요. '아우프 비더제엔(Auf Wiedersehen)!'
낙엽 뒹구는 스산한 포도(鋪道)를 걷다보면 캐럴 리드 감독의 흑백영화 '제3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범죄자인 연인(오손 웰스)의 장례를 치른 후 비엔나 국립묘지 가로수 길을 걸어 나오던 안나(알리다 발리)의 맥시코트 자락도 떠오릅니다. 그녀를 사모하는 연인의 친구(조지프 커튼)가 길 한쪽 마차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는데(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한통속이 되리라 짐작했는데), 웬걸,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또각또각 걸어 나와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낙엽은 분분히 떨어지고 안톤 카라스의 치타 선율(해리 라임 테마)은 후드득 양철 지붕 위를 부딪는 빗방울처럼 가슴을 두드립니다.
겨울 숲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운이 좋으면 목마(木馬)를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거든요.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의 시(詩)에 나오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가 발가벗은 겨울 숲 어디엔가 쓰러져 있을 것 같습니다. 용도 폐기되어 주저앉아 있을지도 모를 목마를 구호하며 묻고 싶습니다. 숙녀는 왜 우리를 떠났냐고. 그리고 넌 왜 또 주인인 숙녀를 버리고 가을 숲으로 떠났던 것이냐고….
'목마와 숙녀'는 전후의 암울한 풍토를 형상화한 감상(感傷)적인 시였습니다. '가을로 떠난 목마'는 사라진 모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아픔을 추상(抽象)한 것이지요. 저 역시 시에 나오는 표현처럼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고' 중년을 거쳐 시나브로 노년의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겨울의 강(江)에 한 자락 옷깃을 담근 채 시린 바람을 맞으며 반추(反芻)해 봅니다. 목마뿐 아니라 저도 떠나왔음을. 저도 어떤 이들에게는 목마처럼 사라져간 대상이었고, 당연히 그들에게 상처를 주어왔으리라는 것을. 무엇보다, 비록 초라하나 그간의 작은 성취는 다름 아닌 제가 떠나온 사람들에게서 힘입은 것이었음을.
*자유칼럼그룹(www.freecolumn.co.kr)에 2009. 12. 8(화) 김창식 |
| 임병식 | 09-12-09 09:10 |  | 김선생님의 글에서는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것도 북유럽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아마도 그쪽에서 생활을 오래하신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겨울은 '그리운 것을 더욱 그립게'하는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이마가 차가운 날에 코트깃을 새우고 발아래 널부리런 낙엽들을 밟고 자나는 때는 많은 상념들이 스치기도 하지요. '목마와 숙녀'. 저도 그 시를 좋아합니다. 아니, 박인환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 | 김창식 | 09-12-10 19:31 |  | 회장님, 저도 박인환 시인 무척 좋아합니다. 애상적이라고 하지만 낭송하면 그렇게 멋드러질 수가 없습니다. | |
| | 임재문 | 09-12-09 14:37 |  | 새록새록 피어나는 겨울에 대한 상념이 부럽습니다. 이겨울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겨울을 들어서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09-12-10 19:37 |  | 임재문 선생님, 언제나 찾아주시고 격려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09-12-10 09:20 |  | 모습도 글도 상상을 초월할만큼 실체보다 젊군요.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문학의 향기가 물신 풍기던 송년의 밤, 무릎이 닿는 좁은 원탁테블에 앉아 속삭이던 짧은 대화가 달콤했습니다. ㅎㅎ | |
| | 김창식 | 09-12-10 19:40 |  | 최선생님도 많이 젊으십니다. 다음에도 선생님 곁에 앉겠습니다. 정이 새록새록 솟아나서요.^^ | |
| | 이희순 | 09-12-10 10:27 |  | 선생님의 초겨울 풍경은 다들 말이 없군요. 박인환의 허무주의적 모더니즘에 저도 빠져드는 듯 그의 시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심판의 계절 가을을 지나 추수 끝난 저 들녘에 남아있는 것들은 무엇인지요.
숲속에서 쓰러져있는 목마를 발견하는 것은 불운일지도 모릅니다. 목마와 숙녀가 우리 곁을 떠나간 이야기는 오래 전의 전설일 뿐 겨울의 강에 적신 옷자락에서 묻어나는 추억만이 슬픈 사랑을 말해주고 이제 농부는 방황의 광야에 불을 놓을 것입니다. | |
| | 김창식 | 09-12-10 19:46 |  | 이희순 선생님, 박인환의 '얼굴'에 이어쓰신 마지막 맺음은 릴케의 시를 읽는듯 합니다. | |
| | 정진철 | 09-12-11 20:37 |  | 전에 모임때 젊으신분으로 보았는데 조심스럽고 여린 감성이 느껴집니다~ 그런 섬세한 정서로 좋은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 |
| | 김창식 | 09-12-14 09:44 |  | 정 선생님, 감사합니다. 글이 좀 애상적이라 부끄럽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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