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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다라,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시작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 복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묵상글
<아침기도의 기적: 나는 아침마다 인생을 리셋한다>
예수님께서는 온종일 병자를 치유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는 복음 선포를 하십니다.
이는 영적으로는 죄의 상처를 낫게 하시고 자아의 압제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런데 새벽에는 밖으로 나가 외딴곳에서 혼자 머무십니다.
아침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만, 예수님은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도란 나를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뜻을 받아 파견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얻고 싶은 것을 청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십자가에 봉헌하여 주님의 뜻대로 파견받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라며 두려워하실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나의 삶’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학교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그러면 자기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지만, 또 그들을 떠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하느님 뜻에 완전히 맡겨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이고 하느님의 뜻대로 하루를 리셋(초기화) 하는 것이 오히려 내 힘으로 사는 것보다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귀한 아침기도를 건너뛰게 만드는 것입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 김범석 씨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인생 리셋’이란 부분이 아침기도를 하고 나서 변화되는 것과 비슷해서 소개합니다.
김범석 의사는 롯데호텔로 빨리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운전사는 백미러로 의사 선생님을 보더니 대번 “어? 김범석 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니 이전에 자신의 환자였습니다.
5년 전 그는 폐암 4기인 환자의 보호자였고(아마 아버지?), 1년 뒤에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흉선암 수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재발하여 재수술과 항암을 했는데 다행히 완치되었던 것입니다.
택시 운전사는 차가 막히는 중에 자신이 죽는 줄 알았던 그때를 잘 통과하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쉼 없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첫째 친구가 정리된다.
암에 걸리니까 걱정하며 찾아와 고기를 사 주는 이도 있고 병원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건네는 이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갑자기 연락이 안 되고 심지어 암 보험 작은 것을 들어놓았는데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그 돈을 빌려달라는 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녀에 대한 애착이 줄어든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품 안에 끼고 있을 때는 기대도 많았지만 이제는 결혼해서 아내에게 충실하라고 합니다.
결국 아플 때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고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대했더니 오히려 애들이 아버지를 더 편하게 대한답니다.
셋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저는 이미 4년 전에 죽은 목숨이었어요.
그때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 치료받아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이미 제삿밥 세 번은 먹었을 거예요.
저는 복이 많아서 좋은 선생님 많이 만났어요.
선생님들 시간 뺏을까 봐 외래에 가도 그냥 빨리 나와요. (중략)
저야 이제 특별히 아픈 데 없으니 검사 결과 괜찮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나와요.
밥 잘 먹고 안 아프고 검사 결과 괜찮다는데 더 물어볼 것도 없고요.”
넷째 삶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죽은 사람이 귀신처럼 다니는 거로 생각하니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끼어드는 차가 있어도 이전과는 다르게 “그래라!” 하고 그냥 보내줍니다.
운전한다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나이까지 돈을 벌 수 있는 게 어딘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소풍 다니는 듯이 일을 나오니, 한 달에 200 정도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절대 무리를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빈둥대지 않고 삼식이를 면하고 아내에게 월급봉투 가져다주는 게 아내도 고맙다고 합니다.
제사도 없앴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들이 더 중요하니 아이들 부담 주지 않고 명절에는 가족여행을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명절 때 더 열심히 온다고 합니다.
“암 걸리고 나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암 치료 잘해주셔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들놈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인생이 리셋된 것 같다고. 허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김범석 선생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나름 의사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교수라는 안정된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지금 자신은 많이 배운 것 같지 않고 암 수술도 세 번을 한 택시 운전사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부하느라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인생 리셋이라...
그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는지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덤으로 여기며 오늘 하루 타인을 더 배려하며 살려는 마음을 자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오늘의 삶이 덤이 되려면 나는 어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기도 때 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가 새롭게 주어진 추가의 삶이 됩니다.
그러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달리는 삶이 아닌 사랑하라고 파견받는 삶이 됩니다.
죽음을 잊으니 삶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의 리셋이 매일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새벽이면 더 좋습니다.
기도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 봉헌하고 주님께서 나 대신 살라고 나를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과정에 새벽 기도가 빠지지 않고 복음서에 등장하는 것은 아침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로 30분 정도 나 자신을 봉헌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정 시간이 안 된다면 출근하면서 해도 좋습니다.
아침기도의 인생 리셋의 행복을 모두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수원교구 영성관장, 수원가톨릭대 교수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언제나 깨어 있어서>
“사랑을 받게 되면 버림받을 때를 생각하고, 편안하게 있을 때는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심보감)
우리는 항상 자기의 때를 알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연연해하고 집착하면 결국은 버림을 받게 됩니다.
버림을 받기 전에 떠나면 그를 기리고 아쉬움도 남는 법인데, 그때를 못 맞춰서 결국 명예도 잃고 추하게 됩니다.
아쉬움이 남을 때, 그때야말로 떠나야 할 때입니다.
칭찬을 받을 때, 그때가 떠나야 할 때입니다.
칭찬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 쉽습니다.
영국 속담에는 “바보를 칭찬해 보라. 그러면 훌륭하게 쓸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을 받은 사람은 하나같이 바보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떠나야 할 사람은 안 떠나고 떠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떠나서 희망이 없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들었습니다.” (루가4,42).
치유와 말씀에 사로잡혀 예수님과 오래도록 머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하시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습니다.
“성인은 언제나 깨어 있어서 하늘이 명하는 바를 알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다”
(이현주)
주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 안에 계셨습니다.
밥을 드실 시간이 없이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한적한 곳을 찾고, 이른 아침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한 덕분입니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때, ‘네가 꼭 필요하다고 할 때’ 주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그 얘기가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지 아니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가 떠난 자리가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어디에든 연연해하지 말고 단순하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을 즐기고 싶은 유혹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요한 세례자를 기억해 봅니다.
그는 인기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합니다.
“나는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한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제 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수를 알고 뒤에 오실 분을 위해 자리를 뜨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드러내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재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증거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삶의 모범과 표양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없습니다.
- 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원장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묵상글
<예수님의 자상함과 부드러움 앞에 부인의 굳게 닫혀있는 영혼의 물꼬가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수제자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마침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시몬의 장모’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참으로 특별합니다.
시몬의 장모 입장에서 예수님은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위 시몬을 빼앗아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딸을 ‘생과부’가 되게 한 원인 제공자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사위 시몬과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장모 입장에서 ‘열 받게’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다가가시어 특별한 작업을 하십니다.
열을 꾸짖으십니다.
참으로 기이한 모습입니다.
그러자 즉시 열이 가셨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조금 웃기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데, 사실 ‘화병’이 아니었을까요?
갑작스레 혜성처럼 등장한 예수란 존재,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멀쩡히 잘 지내던 사위 시몬의 가출, 그로 인해 생과부가 된 딸, 정말로 무책임한 사위 시몬!
장모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열불 나는 일,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열이 머리끝까지 뻗지 않을 수 없는 시몬의 장모였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십니다.
고열로 인한 혼수상태에서 헛소리까지 하고 있는 부인의 모습에 예수님의 마음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당신 어머니에게 하듯이 아무 말 없이 부인에게 다가가 그저 손을 꽉 잡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손과 장모의 손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갔을 것입니다.
‘죄송해요. 부인. 제게 시몬이 필요합니다.
부인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몬이겠지만 더 큰 일을 위해 시몬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는 부인의 몸을 앞으로 당겨 그 자리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인의 열이 내렸습니다.
열에서 해방된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자상함과 부드러움 앞에 부인의 굳게 닫혀있는 영혼의 물꼬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꽉 막혀있던 흐름이 열리니 그간의 분노와 걱정, 원망과 화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이제 일말의 미움이나 적개심도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 예수님 일행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 살레시오회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묵상글
<복음의 홀씨들>
오늘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주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 주시고, 이에 사람들을 피해 외딴곳에 가서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곳까지 찾아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주님을 붙잡는데, 이에 주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콜로새서를 시작하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여러분에게 다다랐다고 하는데, 한곳에 머물라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며 주님께서 선포하신 그 복음이 마침내 콜로새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이 먼 곳까지 다다른 것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어서 콜로새 신자들이 열매를 맺고 있음에 매우 흐믓하게 여기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의 이 기분이랄까 느낌을 압니다.
30여 년 전 저는 프란치스칸 전통에 충실한 복음 선포를, 곧 순회 선교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 신안군 자은도에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안군 자은도로 가게 된 것은 알고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당이 없는 곳 그러니까 복음에서 가장 먼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당시 목포 북교당 성당 신부님께 전화하여 한 곳을 소개해달라고 해 갔지요.
그런데 목포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 가는 그곳에 도착해 보니, 그 멀고도 외딴 곳에도 신자들이 이미 있는 것이 감격이었습니다.
이곳에까지 복음이 전해져 있다니!
누가 언제 민들레 홀씨처럼 이곳에 복음을 가져왔는지!
그렇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복음의 홀씨였습니다.
그런데 홀씨는 자기가 목적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 목적지가 따로 없고 바람 부는 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가는데 이때 홀씨가 지녀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든지 가겠다는 의지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원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의 홀씨들이어야 합니다.
어디에 떨어지든지 거기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홀씨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홀씨들에게 또한 필요한 것은 순응성입니다.
순응성은 순종과 적응이 합친 말입니다.
더 붙어 있으려 하지 않고 바람이 불면 미련없이 떠나는 순응성, 어디에 떨어지든 거기에 적응하고자 하는 순응성과 적응하는 순응성입니다.
그러니 안주는 금물이고, 편견과 고집도 금물입니다.
아무튼 순례자와 나그네들인 프란치스칸은 복음의 홀씨들임을 묵상하고 마음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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