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 Buchanan - My Sonata (81) “기타는 마음이고 성격이다. 기분이 울적할 땐 기타도 울적하고 기쁠 땐 기타도 노래를 한다. 자기의 마음 기분을 잘 반영할 줄 아는 연주인이 결국은 끝까지 남는 법이다.” 로이 부캐넌은 1940년 9월 23일 미국 아칸소 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가스펠 음악을 즐겨 들었던 그는 9살 때 본격적인 기타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4살 때엔 이미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재즈 기타리스트들과 교류하는 수준에까지 와 있었다. 얼마 후 로이 부캐넌은 'Suzie Q'로 잘 알려진 데일 호킨스를 만나 그의 백 밴드에서 3년 정도 일하게 되었다. 70년대로 접어들자 로이는 기타리스트로 점차 명성을 얻어가 TV에선 그의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교육용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로이는 '폴리돌'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72년에 공개된 이 앨범에는 명곡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이 수록되어 수많은 기타 마니아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연주에 감동한 제프 벡이 자신의 앨범 [Blow By Blow]에 '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로이에게 헌정한 사실은 유명하다.) 로이 부캐넌은 73년 두 번째 앨범 [Second Album]을 공개하는 데 이 앨범은 그 높은 음악적 완성도로 인해 'Stereo Review'에서 '올해의 레코드'로 지명되었다. 77년에는 스탠리 클락, 스티브 크로퍼 등을 초빙해 만든 역작 [Loading Zone]을 발표해 또다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85년엔 앨범 [When A Guitar Plays The Blues]로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New Music Awards의 ‘올해의 블루스 앨범’상을 수상하였다.
이처럼 현역 기타리스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로이 부캐넌은 88년 8월 갑자기 세상을 떠남(교도소에서의 자살...)으로써 기타 팬들을 놀라게 했다. 로이 부캐넌은 대중적인 인기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에만 전념하며 살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철저한 블루스맨, 그것도 블루그래스, 록커빌리 등 미국의 서민적인 체취가 늘씬 풍기는 아메리칸 블루스록의 수호자이다. 그는 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탁탁 튀는 기타 특히 피킹 하모닉스에 의한 자극적인 오버 톤─을 즐겨 구사하고 거기에 'The Messiah Will Come Again', 'Mrs. Pressure' 등에서처럼 볼륨 주법을 장기로 쓴다. 이러한 독자적인 주법으로 쉽고 친근하게 들리는 멜로디라인을 뽑아내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의 1981년 앨범 [My Babe]에 수록된 작품으로 인기 차트엔 오르지 못했지만 오늘날 블루스 록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쓴이 : 모은(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있는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