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로페즈
로페즈는 빠르면서도
역동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로페즈의 진가는 바로 그의 왼발에서 드러나는데,
절묘한 킥과 함께
파워풀한 강력한 킥을
겸비하고 있다는데
중론이 모아진다.
아르헨티나의 라싱클럽을 거쳐 96~97시즌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에
안착했다.
이적 첫 해 3골에 그쳤지만 이듬해 12골을 터뜨렸고
98~99시즌에는 21골을 터뜨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1999년에는 발렌시아를 코파 델 레이(스페인 FA컵)와
슈퍼컵 우승으로 견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인 라치오로 이적하는 밑거름이 됐다.
00~01시즌 3,560만 유로의 이적료로 라치오 유니폼을 입은 로페즈는
곧 부상을 당하면서 리그에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경기에 출전, 5골을 터뜨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그 이전인 2000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발렌시아 소속으로
5골을 뽑아내 큰 경기에서 강한 로페즈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당시 발렌시아는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무른 바 있다.
'스타군단'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95년 남아공과의 경기를 통해 성인대표팀에 합류한 로페즈는
96년 올림픽에서 한골을 기록했고, 98년 월드컵에서도
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2한일월드컵은
로페즈를 비롯한 모든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로페즈는 3경기에 모두 모습을 드러냈으나 득점을 터뜨리지 못했고,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던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에 패하면서 조별예선에 탈락, 대회 최대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베르나르도 코라디
190cm의 장신 공격수 베르나르도
코라디는 제공권이 단연 돋보이는
스트라이커이다.
특히 경기장에서 내뿜는 승리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코라디가
라치오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시에나 태생인 코라디는
고향클럽에서 주목을 끄는데 실패, 당시 하위리그에 속해있던 칼리아리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코라디가 세리에 A에 데뷔한 것은
99~00시즌. 76년 생인 코라디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늦은
시기에 이탈리아 최고의 무대에
데뷔한 셈이다.
00~01시즌 키에보로 이적한 코라디는 2년동안 20골을 터뜨리며
주목을 끌었고 '명문' 인터밀란으로 이적하는 호기를 맞았으나
호나우두, 비에리 등의 쟁쟁한 공격수들이 버틴
1군 엔트리에 포함되기가 여의치 않았다.
결국 02~03시즌 라치오로 이적한 코라디는,
장신 공격수가 절실했던 팀 상황과 맞물리면서
비로소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라치오의 주축멤버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라치오에서의 활약은 코라디를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시키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코라디는 유로 2004 지역예선 핀란드(2-0 승)와의
경기를 통해 '아주리 군단'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고,
총 5경기에 출전 2골을 터뜨리며 이름값을 해냈다.
스테파노 피오레
재능이 풍부한 중앙 미드필더로 최근
에는 오른쪽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팀의 볼 장악률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되고 있으며 태클에서도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상대 수비진들의 예상을 깬
1, 2차 동작으로 공격에서도
예리함을 과시하고 있다.
94년 당시 19세의 나이에 파르마
소속으로 데뷔했다. 그해 유벤투스와의 UEFA컵 결승에 출전했고,
리그에서도 8경기에 모습을
내비쳤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결국 피오레는 코도바,
키에보에 임대됐고, 97년 파르마로 원대복귀해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피오레는 99년 우디네제로 이적하면서 공격에서도 눈을 떴는데,
2년간 활약하며 미드필더로서는 적지않은
18골을 터뜨렸다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한다.
현 소속팀인 라치오에는 2001년 안착했다.
당시 피오레는 지아니케다와 함께 라치오로 동반 이적했는데,
둘의 이적료는 무려 4,700만 유로에 달했다.
물론 피오레의 비중이 컸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후 라치오의 중원을 든든히 지키면서
라치오의 주축멤버로 자리매김했고, 02~03시즌 5골을 터뜨리며
팀의 UEFA컵 4강 진출, 챔피언스리그 티켓 획득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
유로2000 예선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압권이었으나 지난 한일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는 탈락한 아쉬움도 간직하고 있다.
첫댓글 피파2001할때, 라치오 디게 쎄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