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끝자락 79년 가을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국내 정세는 혼돈의 소용돌이였다.
이 무렵 불모지 광할한 모래들판 공사 현장은
돌풍의 사풍(砂風)이 휘몰아치는 악천후와 악전고투의 날들이 비일비재
평지의 모래는 한쪽으로 쌓여 야트마한 언덕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모래 바람이 몰아칠 때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는 그야말로 어둠의 장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보안경을 착용 한들 세차게 스며드는 미세모래를 차단하지 못해 눈물 모래 범벅으로 무용지물 이었다.
국내 공사 현장에선 비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지만
사우디에선 사풍 부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사풍으로 공 쳤던 공기(工期)를 만회하기 위해선
이동 자가발전기로 점등 어둠을 밝혀 야간작업은 다반사
현장 소장 이하 모든 직원들은 어떻게든 준공기일까지 공정을 완수 하여야 갰다는 일념이며,
이런 끈기와 부지런한 저력은 사우디 사람들이 코리언의 악착같은 근면성을 인지하였든 토대이기도 하였다 .
첫 근무지 도시명 ”다하란“
지역에서 수십킬로 떨어진 모래사막에 단지부지를 조성하는
공사명 “다하란 공업단지 조성 공사 "
공업단지 제반 시설 조성은 물론
단지 내에 상주 하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끔
사택, 병원, 출장소, 경찰서, 여가시설, 트레이닝 시설 등등
건물이 들어서는 복합단지 조성이기도 했던 건설현장
단지조성 전기공사 우선순위는
송전선로 특고압을 수전
지상 변전실에서 고,저압 전력용, 전등용으로 승하
각 건물 배전함, 분전함 인입구로 전력 케이블을
지중 매설 하는 지중선로 공사 이다.
전력 케이블을 지중 매설하기 위해서는
터파기 공사 포크레인 장비는 필수 이며,
사전 터파기를 해 놓으면 사풍이 수시로 불어 재켜
되파기를 수시로 해야 하는 공기 지연의 난관이 허다했으며,
전기과장의 책무로서 공기 지연 상황을
공정 회의 때 보고 설명 하면서 마음고생이 많았었다.
사우디의 기후
40도이상 50도에 근접한 뜨거운 내륙 지역은 너무 건조해 땀이 흐르는 즉시 증발되어 온전신이 불에 타는 느낌이고
해변 지역은 너무 습기가 많아 땀이 흐르면 온전신이 땀으로 목욕 껀적 껀적 불쾌지수가 말이 아니였다.
낮은 워낙 뜨거워 밤 야간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야간 점등에 자가발전기는 필수 장비 였었다
이날도 야간 작업에 대비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아래 이동 발전기를 시운전 점검하든
어느 젊은 기능공의 화상 죽음을 잊지 못한다
뚜껑을 열어놓은 휘발유통의 가솔린 증발에 발전기의 엔진 과열이 전이 되어 순식간에 자연 발화
얼굴, 가슴 부위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20대 초반 젊은 기능공
홀어머니 슬하 어려운 형편에 고등학교 2년 중퇴하고 청계천공구 상가 발전기삽에서 일하다 발전공으로 취업한 그 젊은이
붕대를 칭칭 감아 눈이 보이지 않은 상태 였으면서도 태연하게 씩씩한 자세를 유지 하며 노래까지 불렀던 그가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4일 만에 생을 마감 했었던 아까운 그 젊은이의 처참한 모습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생생 하다
우리나라 승용차 원조격인 포니
건설현장내 이동 수단은 포니1, 포니픽업이었다,
포니1을 운전
이날도 하늘은 뿌였고 사풍이 불까 말까 조마조마 마음 조리면서
캠프에서 수킬로 떨어진 변전실공사 상황을 둘러보고
사무실로 귀사 하던 중 아닌 게 아니라 또 사풍이 휘몰아 쳤었다.
시야를 가린 사풍 때문에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정차 중에 있던중
난데없이 현지인 차량이 운전석 옆문을 들이 박았다.
순간 정신은 아찔 왼편 갈비뼈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으며,
문은 안쪽으로 움푹 찌그러졌으나 파손 되지는 않았었다.
그 현지인은 사풍으로 인해 시야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
저속으로 운전 하며 헤매다 나의 포니1와 추돌 했으며,
천만다행 갈비뼈는 뿌러지지는 않았었고 타박상으로 심한 통증만 계속 되었다
약 2주 동안 물리 치료를 받고서야 다시 현장일을 할수 있었다.
만약 사풍이 휘몰아치지 않는 청명한 날씨에
현지인이 고속으로 들이 박았으면
영락없이 황천객이 되었을지도 모를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생각 하면 그 지긋지긋한 사풍이 내 목숨을 구했든 것 같다
만 오년동안 두 개 현장 전기공사 하자보수까지
포니1에 승차하면서 완수 했던 젊은날의 추억이다
6~70년대
빈곤속의 빈곤 타파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 왕 회장님은
경제 부흥의 초석을 다진 파트너 였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경제인은 현대그룹 고 정주영 왕 회장님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회장님은 담뱃갑 내 은박지 종이
하얀 이면을 메모지로 사용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현대건설!
쟁쟁한 세계적 기업들을 물리치고 사우디 쥬베일 항구 공사 (수주액 : USD 9억)를 따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우뚝선 건설업체다.
고 박정회 대통령과 고 정주영 왕 회장님의 감동실화를 옮겨 본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못하겠다하면 나도 포기 하지요“
정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 입니까?”
“1973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 국가들은 달러를 주체 하지 못하는데
그 돈으로 여려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낮에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왕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당시 유조선에 기름을 넣어 우리나라로 싣고 와서 비우고 갈 때 물을 채워서 갔었다)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 도와 줘~”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절대 부족하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 나갔고,
보잉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 왔다
나도 칠십년대 후반부터 팔십년대 초반 까지 만 오년간
모래사막을 누비며
40도가 넘어 거의 50도에 달하는 뜨거운 태양열에
휘몰아 치는 모래바람(사풍)에 한치 앞을 볼수 없었던
극한상황에서도
젊음의 패기로
전기공사 담당
건설역군으로
치열했던 삶의 현장 이었다
달러 수집에 비록 모래알 정도지만
일조에 자부심을 느낀다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 했든가
첫댓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쿠웨이트 자하라와 사우디 리야드에서
모래폭풍 맞아가며 일햇던 기억이 납니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Supervisor와
다투던 기억도 아련하구요...ㅎ
그렇지요 Superviso(감독) 과 최종 아프로바 득하는 업무가 제일 힘 들기도 했지요
최선을 다 해 놓았어도 감독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캔슬
재 시공 하느라 무척 힘들었지요 ㅎ
감사 합니다 ^^
오랫만에 뵙게 되어 실례인 줄 알지만
이곳에서 인사 드립니다.
저도 80 년데 초 사우디 제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요. 항상 건강하세요.
애국자십니다.
존경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 합니다 아델쌤~
지금 회상 하면 꿈만 같기도 해요^^
그 시절을 사신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노후가
평안하셨음
좋겠습니다..
젊은날의 치열 했던 삶이였건만
노후 대비는 원만 하지 못한 현재의 삶 입니다
감사 합니다 ^^
모래사막 자그만치 5년시간의 노력
대단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포니1의 사고가 모래바람때문애
덜 다쳣다는글에..안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회장님의
대화내용 긍정적인 사고의 가치관은...
배울점이 많으며...우리 후대들께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추억의 사진전>--66번재 응모
감사합니다
빈곤 타파!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경제 부흥의 초석 파트너 였던 두분
잊지 못하는 존경스런분들 입니다
감사 합니다 ^^
오랫만이에요, 산자락님.
추억의 사진전으로 글을 올렸습니다만,
삶의 이야기로도 좋은 글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시절,
산업역군으로 중동으로 가셔서
역경을 무릎쓰고 애국하셨습니다.
수고하셨음에 감사하네요.
오랜만에 요기서 보니 억수로 반가워요
동시대 연배로 미력한 저의 젊은시절 삶을 공감 해 주시니
또한 억수로 감사 합니다
가까운 시일내 백신접종 대상 이겠지요
건강한 분위기서 만날 날 기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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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돈이지만 젊음의 패기가 중동 진출을 가능케 했어요
감사 합니다 ^^
중동에 다녀오신 것, 글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국가의 역군으로 파견되어
열사의 사막에서 모래바람과 사투를 벌리신 생생한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이제 평안한 노후 즐기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해외 2년 근무후 국내 보직은 허울좋은 사내 규정 이었습니다
두개 현장 하자보수까지 만 오년 근무 하다보니 지긋지긋 해서
돈이고 뭐고 모든게 싦었지요
이 또한 지나가리
지나고 보니 삶의 추억이 되었지요
감사 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공사 도중 사풍이 휘몰아 칠때면
공기지연으로 안절부절 낙심 했었지만
한편 사풍의 덕으로 목숨을 보전 하였으니
고맙기도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
같은 동시대를 살아온 역군들로
지나온세월 생각하면 가슴 먹먹한 얘기입니다ㆍ
동시대 역군으로 공감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
멋진 모습 세월이 도적이요 잉?
오랜만 억수로 반가워요
추억의 사진 있나 해서 눈 싯고 찾아봐도 엄네요
올려봐요^^
https://youtu.be/gVhnssX0Xjc
PLAY
달러 수입에 일조 하셨다는
그 때 그 청년을
훔쳐간다 그 세월
잡으러 갑시다ㆍ ㅎㅎ
저 청년을 보니
뭉쿨합니다ㆍ
오랜만이군요 돼지 엄마 반갑습니다
낭군님도 중동 건설역군이었다는 것 기억 하고 있어요 ^^
치열한 삶의 현장 사실적 묘사 잘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젊은이의 죽음도 목격하시는 등 산업 역군으로 성실하게 일하셨던
님의 발자취는 귀하고 귀한 추억담이 맞습니다. ^^~
참 장하십니다.
정주영회장도 산자락님도.^^
국내 봉급으로 전세방 한칸 얻지 못해서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제일 존경하는 경제인은 정주영 왕 회장님이었지요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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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왕 회장님의 유명한 멘트 " 해 보기나 했어~"
누구보다 도전 정신이 투철 하셨던 경제인 이었지요
왕 회장님의 대선 당시 아파트 반값 공약 기억 하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
비슷한 시기에 사우디 근무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구글 지도를 보고 현장 캠프와
다녔든 길들을 보면서 고생했든 시절 생각 합니다
작업복도 회사는 다르지만 비슷한 모양이였고
포니1의 추억도 많이 있고 교통사고도 아련히
남아있습니다.고생 하셨습니다
아~그랬었군요
열악하고 치열했던 당시 삶의 현장이
오랜세월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