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산 바람소리길
장마가 중반으로 접어든 칠월 초순 주말이다. 장맛비는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으나 우리 고장은 마른장마 수준이라 강수량이 적은 편이다. 그간 두어 차례 내린 비는 지표면을 적셔준 정도 지나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 청도 운문사 솔바람 길을 걸을 때 계곡은 말라 명징한 웅덩이만 남고 바닥을 드러냈다. 가지산 학심이계곡과 운문산 아랫재 깊은 골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약했다.
사실 이번 주말 비가 와주길 은근히 바랐더랬다. 강수를 명분으로 새벽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나와 종일 도서관에 머물까 싶었다. 지난주 일요일 북면 최윤덕도서관을 들렀더니 장서나 열람실 여건이 좋아 다시 찾고 싶었다. 냉방이 잘 된 공공도서관을 찾으면 책에 파묻혀 지낼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이번 주는 일요일도 강수가 없을 듯해 후일로 미뤄야겠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린 토요일 첫새벽 길을 나서 원이대로에서 양곡으로 가는 216번 버스를 탔다. 삼귀 해안으로 가는 버스는 운행 간격이 뜸해 배차 시간을 봐두었다가 첫차 운행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 회사로 출근하는 이들도 없어 혼자 타고 창곡에서 공단 배후를 달려 양곡으로 갔다. 작년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양곡천 천변을 따라 산성산 둘레길 바람소리길 구간으로 갔다.
창원 근교 여러 산 가운데 ‘산성산’은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다. 안민고개를 거쳐온 불모산이 장복산에서 터널로 통과한 나머지 구간이 산성산이다. 십여 년 전 해안 군사시설을 제외한 구역으로 산성산 둘레길이 뚫렸다. 양곡천에는 마창대교로 통하는 접속도로엔 높다란 교각이 걸쳐졌다. 한 뼘 땅도 허투루 여기지 않은 부지런한 이들이 가꾼 텃밭을 지나 편백 조림지 숲으로 들었다.
등산로 들머리 편백림 숲 그늘에 휘어진 가닥으로 주황색 꽃잎이 달린 나리꽃을 봤다. 백합과에 해당하는 나리는 대개 볕이 잘 드는 곳에 서식하는데 거기 자생하는 하늘나리는 응달에서도 꽃을 피웠다. 꽃잎이 하늘을 바라본 방향이라 하늘나리고 옆으로 향하면 중나리라 불렀다. 꽃잎에 점박이가 낀 참나리는 암수 꽃술이나 꽃잎의 크기가 다른 나리보다 월등하고 키도 높이 자랐다.
아까 지나쳐 온 양곡천과 가까운 등구산에는 약수터가 있어 양곡 주민들이 더러 찾았다. 산성산으로 드니 산행객이 드물어 등산로는 묵혀지다시피 했다. 다른 곳보다 산행 초입까지 접근성이 다소 불편해 산행객이 잘 찾지 않은 숲길을 걸었다. 해발고도를 높여 산으로 오르니 물이 흐르던 계곡과 멀어졌다. 아침 숲으로 들면 산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물이 귀하면 새도 드물었다.
숲으로 시야가 가려진 골짜기는 장복터널에서 진해로 넘나드는 차량 바퀴 구르는 소리가 가까운 듯이 들려왔다. 바람소리길이 바다숲속길로 이어지는 산마루 산성산 쉼터 정자에서 간식으로 커피와 술빵 조각을 떼어먹었다. 비는 오지 않아도 안개는 자욱하게 끼었다가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산마루 산등선 참나무 숲을 누벼 자색으로 갓을 펼친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연중 산을 찾은 숲에서는 겨울을 제외하고 야생화 탐방은 기본이고 봄날은 산나물을 뜯고 여름철은 영지버섯을 만난다. 산나물은 봄이 다 가도록 식탁에 올려 찬으로 삼아 잘 먹었다. 참나무 고사목에 붙는 영지버섯은 장마철에 갓을 피워 자라 가을이 되면 벌레가 파먹거나 절로 사그라진다. 그 전에 채집해 찌거나 말려 벌레가 꾀지 않게끔 조치해 건재로 삼아 약차로 달여 마신다.
나이가 들어 이제 예전만큼 산을 누빌 체력이 아니다. 근교 식생에 훤해 어느 산자락으로 가면 영지버섯이 자라는지 꿰뚫고 있으나 산행을 무리할 생각이 없다. 낭떠러지는 다가가지 않으면 되고 뱀이나 벌도 피할 수 있다. 멧돼지를 만날까 봐 염려는 되나 그보다 옻나무가 더 무섭다. 옻 알레르기가 심해 개옻나무 가지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가려워 연고를 발라 증상을 가라앉힌다. 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