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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소중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생명의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 거짓과 위선을 계속 행하는 분이 남의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길 위해 기도 할수 있을까요?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 받아서 피해자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해괴한 말로 주인공을 미치게 했던 영화 '밀양'의 유괴범-가해자-이 생각납니다. 동산에서 '선생님!' 하면서 예수님을 포옹하면서 입을 맞추었던 유다가 연상됩니다. 어쩌죠? *)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제천기도동산이 어느덧 가을의 초입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지난 6개월은 제 생애 중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제 자신이 겪는 개인적 아픔보다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사랑의교회 온 성도와 한국 교회에 큰 상처를 드린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엎드려 사죄하오니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아마 가장 힘든 시기였을겁니다. 이전과 달리 기획했던 대로 일이 술술 풀리지 않았으니까요. 정체를 알게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좀 구체적으로 본인의 부족함과 잘못을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1. 예배 시간에 멀쩡한 장로님을 5번 반복해서 참소-클릭, 2. 골프와 외유를 위한 과도한 지출, 3. 목회 철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순장과 부목사를 내 보내라고 지시한 것, 4. 교회 자금 운용과 건축 과정에 대한 불투명성, 5. 순장 집사가 석유로 장로를 위협한 일, 6. 대량 논문표절로 박사 2개 받은 것, 7. 특새 CD 판매수익 절취, 8. 복음을 잘못 전한 죄-클릭-...너무 많아 더 적기도 힘듭니다만, 이제까지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직접 사과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무조건 엎드려 사죄하신다니, 그냥 도매금으로 확 묶어서 모두 잊어 버려 달라니요? 공의가 빠진 주님의 사랑도 있나 해서요.
예수님은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 얼른 그와 화해하도록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마태5:23-4. 그냥 교회 홈페이지에 글 하나 비디오 하나 딸랑 올려, "무조건 잘못했으니, 낮게 엎드려서 사죄하니, 모두 다 용서해 달라"는 사과 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얼른quickly'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셨나요? 그렇게 하시기 어려우시나요? 가장 빠른 방법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일어났던 일 모두 책임 지시고 사임한다고 본인이 직접 성도들 앞에서-전에 5번 참소했듯이 예배시간에- 하시면 됩니다. 한 사람씩 사과하는 일은 그 다음에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세상을 압도하는 믿음'을 주장하는 분이라면 진작 그러셨어야 했습니다 *)
동 기간 동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해 제 영혼과 육체는 쇠잔해 갔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저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런 저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 어린 기도를 해주신 성도 여러분께 참으로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평생토록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역하겠습니다.
기도동산에서 주님께 더 엎드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사랑의교회가 회복되고 안정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을 주시기에 일어섭니다.
(* 예상했지만, 성경을 자기 편한 대로 자유롭게 해석하는 "자유주의자"로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엘리야는 교회 헌금으로 초호화판 외유 나 골프 가지 않았습니다. 논문표절과 같은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5번 반복해서 예배시간에 남을 참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추한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남의 돈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가 비슷하다는 말씀인지요? 로뎀 나무 아래서,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길로 가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을 슬퍼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세속화의 길로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끝내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셨다는 말씀인가요? 교회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는 말씀인가요? 내 편을 들어주는 주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불평했다는 말씀인가요? 열왕기 19장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로뎀나무 아래 지쳐 있는 엘리야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의 정신과 육체가 회복되게 천사를 보내 도와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 로뎀 나무 아래서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엘리야가 목도한 죄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치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꼭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의인 7,000명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 증거로 엘리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평생 빚진 자로 살기 전에, 본인이 누구에게 무슨 빚을 졌는지 밝혀 주시는 것이 우선일 것 같고, 얼마 전까지 자신을 여호수와로 묘사했던 잘못과 이제는 엘리야로 표현하는 잘못을 인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 있으시면 열왕기 19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정과 회복을 엘리야처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보십시오. *)
더욱 겸손히 섬기겠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자주 떠오르는 단어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동안 저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교회도 하나님과 한국 교회 및 사회 앞에 교만했던 점을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이곳 제천에 머무르는 동안 순박하면서도 힘들게 살아가는 농민, 시장 박에서 채소를 파시는 할머니, 젊은이가 없는 시골교회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외로워하며 아파하는 성도가 많이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향후 사랑의교회는 우리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위해 “겸손한 섬김이”로서 환골탈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 사랑의 채무자 심정으로 사역에 임하려 하오니 성도 여러분께서도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새로 신축되는 예배당도 이런 목적에 귀히 쓰일 것입니다.
(* 이 말,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이분의 2004년 인터뷰에 나옵니다-클릭 .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 애시당초 3,000억 이상이 든 건물을 올리는 대신, 다른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이티 재난 때 100만불 하시겠다는 약속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남을 돕겠다면, 본인 생활비/교회경비부터 줄여 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더욱 내실을 기하겠습니다
향후 저는 사역이나 활동을 단순화하여 대회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말씀사역과 제자훈련사역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곳 제천에 있는 동안 제가 겪은 고통 중 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성도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성도와 함께 울고, 같이 웃으며 사랑과 위로를 온 마음을 다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목회의 본질인 성도들의 속사람을 온전히 세우며 제자훈련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진력을 다하겠습니다
(* "대외활동을 모두 사퇴하고"가 맞습니다. 최대한 자제라니요? "멀리 떨어져 성도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마당 기도회에 오실 수 있었고, 자주 사용하는 동영상 메시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본인이 직접 지시하지 않으셨다면, 교회 헌금으로 설치한 CC 카메라 모두 없애고, 마당 기도회에 와서 몇분의 손을 잡고 그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서 울고 웃으셨어야지요. 그런 구체적인 행동 없이, 앞으로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겠습니까? "목회의 본질"을 말하기 전에, 신뢰성이 회복되어야 하고 신뢰성이 회복되려면 이런 말 장난 대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본인이 직접 하셨어야지요. 만약 본인이 명령하지 않았다면, 석유방화 사건, 마당기도회 감시 카메라 설치를 주도한 사람을 오늘 내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순장으로 있는 그 집사부터 입니다 *)
또한 교회 차원에서도 비전과 사역과 조직을 조속한 시일 내에 재정비하여 사랑의교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함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주님께서 저희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내실을 다지겠습니다.
(*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 온 느낌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화려한 전력을 갖고 반성하지 못하는 분이 당선될 가능성은 O입니다만, 교회에선 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도 다 알고, 하나님도 아 아시는데, 어떻게 세상을 압도하시겠습니까? 어떻게 복음의 능력을 가르치겠습니까? 어떻게 제자가 되라고, 제자의 삶을 살라고 남에게 권면 하겠습니까? 어떻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진정 주님의 사명을 들으셨다면, 이제라도 엘리야처럼 엘리사에게 사역을 맡기고 떠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엘리야에게 들려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내 사역은 내가 정한 사람으로 충분하고, 내 심판은 내가 정한 방식으로 내 때에 꼭 할 것이니, 너는 걱정 말고 사역을 떠나 가만히 있으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셨나요? *)
새 시대를 열어가는 제물이 되겠습니다
고난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성경은 고난이 때로는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시 119:71). 이번 고난은 저의 뼈를 깎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하여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나아가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지는 제물 되어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겪은 이번 고난이 거룩하게 승화되어 복음적 평화통일, 다음 세대 양육, 세계선교 완수라는 소명을 잘 감당하여 새로운 영적 도약의 출발점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 왜 밀양의 주인공이 미쳤는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조차도 1.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하고, 2. 종교적인 말로 장난을 쳐서 피해자의 가슴을 후벼파며, 3. 결국 진정한 사과 대신 다시 한 번 가슴에 못질을 했다는 영화의 주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간단했습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였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목양한다는 교회의 성도들을 미워하고 내쫓으면서, 평화 통일, 다음 세대 양육, 세계선교가 가능할까요? 목사님이 인용하시는 다윗이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았나요? 다윗은 자신의 원수였던 사울의 손자를 자신의 식탁에 앉혔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 손자가 자신의 곤경 중에 배신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그를 용서해 주었던 사람이 아닙니까? 자신을 저주했던 시무이가 잘못 했다고 하자,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사람이 아닙니까? 자신의 잘못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고맙다고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사람이 아닙니까? "고난"이라고 하셨는데, 누가 자초한 고난입니까? 무슨 고난입니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섞어서, 피해자를 더욱 괴롭게 하는 말일 것 같습니다. 본인이 "제물"이 되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죽었으면 살았을" 그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
주 안에서 하나된 성도 여러분,
저는 한없이 부족하여 허물이 많지만, 광야에 길을 여시고 사막에 생수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사 43:19).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통해 오히려 더욱 굳건하게 하시며, 진리의 터 위에 견고히 교회를 세우시느 하나님의 은총을 믿습니다(벧전 5:10). 사랑의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다시 거듭난 형제요, 자매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롬 8:39). 그 사랑의 힘으로 이제까지 한국 교회에 관행처럼 내려오던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은총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기간 동안 제게 큰 힘이 되었던 다윗의 고백(시40:1~3)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길 원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던 우리를 주님께서 끌어올리시고 반석에 두시며 그 걸음을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행하십니까? 바로 생명의 주님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새 마음, 새 영으로 새 노래를 지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 노래는 헝클어진 비전을 다시 세우고, 소명을 새롭게 하며, 사명의 주춧돌을 바로 잡아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이 은혜의 대열에서 낙오됨 없이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신앙의 경주를 잘 완주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주후 2013년 9월16일 제천기도동산에서 오정현 드림
(* 바로 이런 이중적인 모습으로 남을 기망하려 했기 때문에, 결국 옥목사님도 "너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너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다. 내가 평생 생명처럼 사랑한 양 떼들을 위해서다. 그들을 위해 지도자 된 우리는 좋지 못한 일로 욕을 먹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돌을 맞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회가 본질을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놀음에서 벗어나,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이제라도 나오시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미워했던 죄 지은 자에 대한 심판을 행하셨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누구든지 구원 받기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오른편 강도는 "저를 기억만 해달라"고 겸손히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받아 주시면서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라고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이제라도 돌아 오세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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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 주시는 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로뎀 나무로 몰고 갔던 장본인이 엘리야를 사칭한다는 지적 너무 옳습니다
교회마당에서 교인들의 인사도 받지 않는 다는 증인들이 자자한 소문의 장본인께서 주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사랑이 무었입니까? 사랑과 공의는 결국 뗄수 없는 하나일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고전13장에서 사랑을 이런것이라고 밝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함께 기뻐한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분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말장난에 그친 옥목사의 반성문을 잘 분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읽고는 마음이 힘들어서 다시 보기도 싫었는데 김다움님 인내심을 가지고 잘 참으셨네요. 명쾌한 지적입니다. 오목사에게 등기로 부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누군지를 알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이렇게라도 해야 하기에...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