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신> 활유(活喩)와 의인(擬人)의 시법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지난 몇 차례의 편지에서는 주로 시의 내용에 해당하는 '시정신'에 관해서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시의 형식, 시적 장치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시적 장치의 특성을 감춤(은폐지향성), 불림(과장지향성), 꾸밈(심미지향성)이라고 지적한 것 기억하시지요? 시에서의 비유의 속성은 불림 곧 과장성이라고 했고, 비유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은유는 불림과 감춤의 두 특성을 아울러 지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시에서 즐겨 구사되고 있는 활유법과 의인법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활유와 의인도 수사법에서는 비유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두 가지 표현법이 유사하지만 같지 않습니다. 다음의 내 글을 보면서 그 차이를 익히고, 의인법을 구사하는 방법도 터득하기 바랍니다.
활유(活喩)와 의인(擬人)
생명이 없는 무생물에게 생명성을 부여하여 생물처럼 그리는 것이 활유법이고, 인간이 아닌 비인물체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이 의인법이다. 활유와 의인도 수사법상 비유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 겨울 산은 눈 속에서/ 오소리처럼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산의 체온을 감싸고 돋아나 있는/ 빽빽한 빈 잡목의 모발(毛髮)들// 포르르르/ 장끼 한 마리/ 포탄처럼 솟았다 떨어지자// 산은 잠시 눈을 떴다/ 다시 감는다. ―임보 「冬眠」 전문
(나)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김동명 「파초」 부분
(다) 감옥 속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머리통만 커다랗고/ 몸들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세계를 불태우려고/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 이세룡 「성냥」 전문
글 (가)는 겨울 산을 한 마리 짐승이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무생명체인 '산'이라는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한 마리 짐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무생물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루는 기법을 두고 '활유(活喩)'라고 한다.
글 (나)에서의 화자는 '파초'라는 식물을 여인처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비인물을 인격화해서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의인(擬人)'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생명체인 파초를 의인화한 것이니까 활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글 (다)는 성냥갑을 감옥으로, 성냥개비를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죄수들로 다루고 있다. 생명이 없는 성냥개비를 죄수로 인격화해서 표현했으니 이는 활유이면서 또한 의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활유와 의인은 유사하지만 같지 않다. (가)와 (나)에서처럼 확연히 구분되기도 하고 (다)에서처럼 두 기법으로 다 설명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수사법상의 기교로 본다면 활유보다는 의인이 한 단계 위인 상급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의인법이 실현되는 경우를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해 보기로 하자.
첫째, 비인물에게 인간적인 동작(動作)이나 사고(思考), 발언(發言) 등을 부여한다. 예를 들자면, '바다가 춤춘다(춤추는 바다)'는 표현은 인간적 동작인 춤추는 행위를 바다에 부여한 것이다. '산은 사람들을 미워한다(사람들을 미워하는 산)'라는 문장은 산으로 하여금 인간처럼 미워하는 사고를 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 더구나 내 몸에 손대지는 말라/ 어기면 경고 없이 해치워버리겠다(― 이형기 「고압선」부분)'라는 작품에서는 고압선에게 인간처럼 발언을 시켜 의인화하고 있다.
둘째, 비인물에게 인체적 조건을 부여한다. '진달래 입술' '산의 허리' '바다의 가슴' '달의 얼굴'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체의 부분을 끌어다 사물에 부여함으로 인격화를 꾀하는 것이다.
셋째, 비인물에게 문화적인 속성을 부여한다. '파초의 치마가 푸르다'라는 표현에서 '치마'는 잎을 은유한 것이면서 한편 인간의 문화적 속성인 의상을 파초에게 부여한 것이므로 의인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압선'을 '흉악범'이라고 했다면 이 역시 의인법적 은유다. 글 (다)에서 '성냥갑'을 '감옥'에 비유하고 '성냥개비'를 '어릿광대'와 '죄인'들에게 비유한 것 역시 문화적 속성을 사물에게 부여한 의인법적 은유인 것이다.
활유나 의인은 화자의 감정이 사물에 전이(轉移)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엄동설한에 눈 속에 묻혀있는 바위를 보고 '얼마나 춥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위가 아니라 화자다. 사실 생명체가 아닌 바위는 감각이 없으니 추위와 더위를 느낄 까닭이 없는데 이를 바라다본 인간이 자신의 감정으로 사물을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사물에 대한 동류 의식의 발동이며 세계에 대한 시인의 애정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 정신은 휴머니즘에 자리한다. 그러나 그 표현의 기법―곧 무생명체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활유나 비인물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은 과장 내지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불림의 기법'인 시인의 엄살로 설명이 가능하다. ―『엄살의 시학』pp.36∼39
로메다 님, 활유나 의인법은 정체된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법이므로 활력을 느끼게 합니다. 다음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생동감을 맛보도록 하십시다.
흉악범 하나가 쫓기고 있다 인가를 피해 산 속으로 들어와선 혼자 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겁에 질린 모습은 아니다 늬우치는 모습은 더욱 아니다 성큼성큼 앞만 보고 가는 거구장신
가까이 오지 말라 더구나 내 몸에 손대지는 말라 어기면 경고 없이 해치워 버리겠다 단숨에
그렇다 단숨에 쫓는 자가 모조리 숯검정이 되고 말 그것은 불이다 불꽃도 뜨거움도 없는
불꽃을 보기 전에 뜨거움을 느끼기 전에 이미 만사가 깨끗이 끝나버리는 3상3선식 33만 볼트의 고압 전류...
흉악범은 차라리 황제처럼 오만하다 그의 그 거절의 의지는 멀리 하늘 저쪽으로 뻗쳐 있다 ― 이형기 「고압선」 전문 로메다 님, 호젓한 산 속에 세워져 있는 고압선의 철탑을 거구장신의 흉악범으로 보았습니다. 철탑은 생명이 없는 존재니까 활유면서 의인법이 되겠군요. 철탑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지만 듬성듬성 연이어 있는 모습에서 성큼성큼 산을 넘어가고 있는 무법자로 묘사한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33만 볼트의 고압전류를 지니고 있는 가공의 철탑이므로 흉악범으로 설정한 것이지요. 얼마나 생동감이 넘친 작품입니까? 활유나 의인의 기법은 사물에 대한 친화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한 사물을 자아화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사물에 대한 화자의 따스한 체온이 담겨 있습니다. 이 역시 불림(과장)의 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겨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