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5.8 포항 5.4 그리고 요나의 기적
발행일2017-11-26 [제3071호, 3면]
신화의 나라, 대한민국은 지금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즉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신화가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난 이후 독일을 선두로 세계는 급속하게 탈핵사회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가 탈핵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임기 중 5기의 핵발전소가 추가 건설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탈핵을 선언했으면서도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핵발전소를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지난 10월에 있었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절차’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권고’로 가능해졌습니다. 탈핵운동을 하던 시민사회, 환경단체들뿐만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돈보다 높은 가치로 여기던 수많은 시민들이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모든 핵발전소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권고가 이뤄진 밑바탕도 그렇고, 핵발전소의 안전을 장담하는 그 속마음은 ‘돈’ 때문에라도 핵발전소는 안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포항 지진을 경험하며 ‘핵발전소는?’하는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을 적에도 사람들은 ‘핵발전소는?’하는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다행히 경주 지진에 이은 포항 지진 여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핵발전소에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입니다. 참으로 천행입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확신은 허황된 맹신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양산단층과 그에 연결된 지진대에 핵발전소가 밀집돼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오랜 경고는 망상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 한반도에 규모 7.5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루카 16장) 속에서 지옥불에 떨어진 부자는 ‘라자로’를 형제들에게 보내 경고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청합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너무 맞아 떨어집니다. 편안하고 부유한 삶에 빠져 생명을 도외시했던 부자처럼 소비중심적인 삶을 포기하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너무 닮았습니다. 전기 사용과 돈 때문에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오랜 고통과 대도시로 향하는 초고압송전선로로 고통당하는 밀양, 청도, 당진 등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들의 고통을 무시했던 우리의 모습은 바로 ‘라자로’에게 무관심했던 ‘부자’의 모습입니다.
돈과 그것으로 만들어낸 기술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들은 놀라운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마태 12,38~39)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얼마나 반생명적인 죽음의 시설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런 반생명적인 죽음의 방사능을 양산하는 시설인 핵발전소가 지진대와 근처에 무려 18기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5기를 더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던 한수원의 홍보야말로 파멸로 이끄는 악의 속삭임이었습니다. 2083년에나 완전한 탈핵이 이뤄진다는 정부를 보며 미래세대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지적하던 이들의 생각도 잘못됐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5.8 경주지진에 이은 5.4 포항지진은 우리 세대에도 파멸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길은 ‘우상숭배(핵발전소)를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예언자들의 외침에 다시 귀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신고리 5, 6호기뿐만 아니라 모든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은 중단돼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재앙을 막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시작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양기석 신부 (천주교 창조보전연대 상임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