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세 여자 아이가 한 번 구토 해 응급실로 왔다. 멀리 살고 있는데 근처에 있는 휴양림으로 가족 여행을 와 호텔에 묵고 있다고 한다. 낮에는 물놀이를 하며 잘 놀았지만 저녁부터 상태가 좋지 않고 배를 아파하는 것이 아무래도 저녁에 먹은 호텔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엄마는 힘 주어 말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복통은 호전 된 상태였다. 한 번 토를 했지만 두 시간 이상 아무 증상 없이 잘 놀고 있었고, 배 진찰 소견이나 엑스레이 사진도 나쁘지 않았다. 특별한 치료 없이 지켜봐도 될 것 같아 가족들의 상태를 물어 보니 함께 먹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증상이 없다고 했다. 함께 수영장에서 간식을 먹은 언니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다면 음식 자체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지만 무언가 마음 속으로 확인한 듯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얘는 원래 여행 가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 해 보니 저녁 먹을 때 나물이 좀 말라 있고 오래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편도 그렇게 얘기했다구요. 음식을 먹고 나서 갑자기 토하는 건 식중독 증상 아닌가요?”
식중독 진단서를 요구하는 보호자
그녀는 진단서를 요구했다. 가능하면 ‘식중독’이라는 진단명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내용에도 호텔에서 음식 먹은 뒤 발생했다는 내용을 써 달라고 했다. 나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이런 경우 보호자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다만 의학적 개연성이 없으니 그렇게 쓸 수는 없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진료를 마쳤다.
#2. 두 돌을 갓 넘긴 아기가 거실에서 미끄러져 이마를 부딪혔다고 했다. 이번이 두번째인데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실 때마다 어딘가를 다친다고 했다. 지난 번에는 소파에서 떨어졌거든요. 아휴, 어쩌다 맡길 때마다 꼭 이래요. 왜 애를 보는 사람이 애한테서 자꾸 눈을 떼죠? 엄마는 한숨을 쉬고 휴대전화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혀를 찼다. 넘어진 직후에 잠시 울었을 뿐 아이는 활발하게 잘 놀고 있었고 진찰 상 다른 이상도 없었기에 나는 굳이 아이를 깨워 CT까지 찍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제법 잘 걷지만 몸을 완벽하게 가누거나 민첩하게 움직이기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은 자주 다치게 마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소하게 넘어지는 정도이고, 크게 다치는 경우는 드물죠. 엑스레이는 찍어 보겠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안심시키는 말도 해 보았지만 엄마의 미간은 풀리지 않았다. ‘시엄마’ 소리가 다섯 번쯤 반복되니 나도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엄마가 듣기 싫어할 줄 알았지만 일부러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애 봐 준 공은 없다는데 할머니도 친 손주가 다쳐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가서 닿지 않을지언정 허공의 한 마디로라도 할머니를 변호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는 못마땅함인지 불신인지 모를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검사 해 보고 싶어요,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보호자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볼지라도 아이들은 넘어지고 다친다. 엄마든 할머니든 선생님이든 누가 언제 어디서 아무리 주의 깊게 볼지라도 아이들은 반드시 한 두 번쯤 어딘가에 부딪히고 만다. 누구 잘못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성장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다. 머리 외상에 적용하는 평가 점수를 근거로 추가 검사 없이 이틀 정도 잘 관찰 해 봅시다 설명했지만 엄마는 CT를 찍고 싶다고 했다. 확실히 괜찮은 게 아니지 않느냐, 당신이 책임 질 수 있냐 반문하는 그녀에게 나는 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이에게 뇌 CT 처방을 내면서 나는 스스로가 참 소극적이고 무심한 의사가 된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진짜 좋은 것을 설득해 낼 재주가 내 안에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3. 일곱살 아이에게 “주사 맞을래?” 묻는 엄마
일곱 살 사내 아이다. 인근 유치원에서 장염이 유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걸려 온 모양이다. 열 번 가까이 구토를 했고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다고 했다. 모든 구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탈수가 동반된 환자에게는 극적인 호전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 수액이다. 나는 증상과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 수액 처치가 필요한 환자라고 판단했고, 여러 번 찌를 이유가 없으니 수액을 맞으면서 바로 혈액검사를 보자고 제안했다. 엄마가 묻는다. 약으로는 안 되나요? 다른 방법이 없다면 약으로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아이는 그 동안 구토를 더 할 것이며 지금 상태로 미루어 탈수가 진행 중인 것이 명백하므로 병원에 온 만큼 수액을 맞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엄마가 앉아 있는 일곱 살 아이에게 묻는다. “너 주사 맞고 싶어?” 당연히 아이는 도리도리 고개 짓을 한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말한다. “얘가 주사를 무서워 해서요. 안 맞겠다는데 어쩌죠?”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나는 아이에게 직접 묻는다. 알약 한 번 먹어 볼래, 아니면 물약으로 줄까? 독감 치료제와 같이 주사제와 먹는 약이 비슷한 효과를 보일 때도 직접 묻는다. 먹는 약은 5일간 두 번씩 먹어야 하고, 주사는 한 번 아픈 대신 하루로 끝나.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큰 아이들은 스스로 잘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러나 일곱 살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 결정과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의료진이 강력하게 권하는 치료의 방향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놀랍게도 응급실에는 그런 류의 대화가 여럿 더 있다. “네가 병원 가자고 했잖아” 혹은 “네가 병원 가기 싫다고 했잖아.” 드물지 않게 “입원 할래?” 하고 아이에게 묻는 보호자도 있다. 내가 아이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인지, 저 부모들이 대단히 획기적으로 자기주도적인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첫댓글부모가 자식을, 정부가 국민을, 국민이 서로를, 아무도 아무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책임을 떠안고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던 의사들은 이제 생명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 둘 떠난다. 책임을 지울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그 땐 누가 책임을 질까. 우리 사회에는 책임 질 사람이 필요한 것일까, 책임 지울 사람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어디쯤 있는가,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첫댓글 부모가 자식을, 정부가 국민을, 국민이 서로를, 아무도 아무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책임을 떠안고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던 의사들은 이제 생명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 둘 떠난다. 책임을 지울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그 땐 누가 책임을 질까. 우리 사회에는 책임 질 사람이 필요한 것일까, 책임 지울 사람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어디쯤 있는가,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마지막 단락인데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참 그렇네ㅜㅜ
뭔 자식한테 까지 저러는거야 진짜 무책임의 끝인 느낌. 어려서 뭘 알지도 못하는 애 입 빌려서 대신 결정하게 하는 거 봐. 비겁해.
어린애 방사능 맞아가며 씨티 찍자는 부모가 있다고? 놀랠 노자다. 진심 지능이 상실된거야 뭐야 본인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니 충격적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