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정몽규 아웃
정답은 숙종입니다
조선 숙종은 갑작스러운 현종의 죽음으로
14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름
보통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
대비(왕의 엄마)가 수렴 청정을 함.
그러나 숙종은 수렴청정없이 14살에 바로 정사를 봄
그렇다면 대비가 수렴청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 이었는가?
놉
숙종의 어머니는 그 유명한 명성왕후
성질머리와 정통성 둘다 대단했던
그 명성왕후임
그런 명성왕후가 수렴청정을 포기함
왜죠...??
숙종은 어린나이부터 군왕조기수업을 받아왔음
정통성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자질과 능력 또한 인정받은 것.
이런 숙종이 14살 왕이 되자마자
즉위 1년만에 유~명하다 못해
실록에만 3000번 이상 언급된 원로대신과 기싸움을 함
바로 우암 송시열임
숙종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때도
이름 날렸던 인물로 서인의 대표 인물이자 정치 실세임.
왜 숙종은 이런 인물과 즉위하자마자 트러블이 있었던 걸까?
바로 두차례의 예송논쟁 때문임
숙종의 아버지 현종 시대에
서인(송시열) 남인은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함.
자의대비는 인조의 부인임
워낙 어린나이에 인조에게 시집을 와서
아들 효종이 죽고, 며느리 인성왕후가 죽도록
멀쩡하게 살아있었던거임.
아들 효종이 죽었을때, 그리고 며느리가 죽었을때
자의대비는 상복을 몇년 입어야하는가
숙종의 입장에서
즈그할아버지의 정통성은 깎아내리고,
차남이니 어쩌구 하며
왕족에게 사대부의 예법을 똑같이 적용하라고 하는
송시열이 고깝겠음?
그러니 숙종에게 송시열이 눈엣가시였을거임
그런데 왜? 예송문제를 다시??
아버지 대에 잇었던 일을 숙종은 왜 다시 언급한걸까?
아버지 현종의 죽음 후 숙종이 즉위했으니
이제 현종의 행장을 기록해야 했음
행장에는 왕의 일대기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에 관여한 대신들의 과오나 업적에 대해서도 기록이 됨
다만, 당시 행장을 작성하라는 어명을 받은
인물은 송시열의 제자였음
송시열은 말햇다싶이
조선 후기 엄청난 정치적 거물임
정말 왕도 못건들 정도의 인물이었음
볼드모트마냥 송시열의 잘못은 쏙
빠진채로 행장을 올린거야
숙종 개같이 분노함
그리고 집어던지면서 다시 써오라 함
그래서 신하가 다시 행장을 올림
왕이 쓰래서 다시 썻지만
송시열은 함부로 건들 수가 없음.
하지만 왕도 너무 무서움
그래서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가 없으니
돌리고 돌리고 아주 돌려서~ 작성함
이를 다시 읽은 숙종
분노하며
대놓고 말했다함
“송시열의 잘못을 적어와라”
재차 다시 써오라 하며 숙종은 이렇게 말했대
14살이 말이야...
서인들이 이와 관련해서 항의성으로 사직을 청함 ㅎ
하지만 숙종 개의치않고
사직 바로 수리 함ㅋㅋㅋㅋㅋㅋㅋ미친ㅎ
예
결국 이단하는
왕의 명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송시열은 결국
나중에...
장희빈 아들 원자책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유배당하고, 결국은 사약마시고 죽습니다...
첫댓글 역사는 역시 재밌어
머리도 좋고 성질머리도 보통이 아니었으니 저게 가능한거지.. 대단해
제목부터 심상챤네... 숙종인가? 하고 들어왔더니 바로 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