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구글, 나무위키, 네이버지식백과
2살 때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 홀어머니와 두 오빠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이화여전 가정학과를 졸업한 뒤 남편의 응원으로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하지만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야당 의원 정일형의 아내라는 것을 트집잡아 판사 임용을 거부하자 1954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야당 국회의원의 아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소박맞은 아내, 첩, 시국사범들이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게 되었고, 이들을 변호하면서 법률이 남성에게 유리하도록 적혀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가족법 개정과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서며 한반도 페미니스트들의 대모로 1994년까지 활동하다가 은퇴한다.
1996년에 당선을 장담했던 아들 정대철이 9시 뉴스 앵커 출신의 신한국당 박성범 후보에게 패해 낙선하자 받은 정신적 충격과 노환이 겹쳤는지 치매에 걸려 2년 간 가족도 못 알아보고 지내다가 1998년 12월 17일에 별세했다.
여담이지만 열렬한 김대중 지지자였다. 남편이 김대중과 같은 계보에서 활동한 것도 있었겠지만, 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5.16 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해 폐인처럼 지내던 김대중에게 자신의 후배이자 비서인 이희호와의 결혼을 주선했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DJ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검사를 향해 “눈이 나빠 사람이 잘 안 보이면 이 안경을 하나 더 쓰고 사람을 똑똑히 보라. 김 선생이나 나를 뭘로 보고 이따위 행동들을 하느냐.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시원하게 한 말씀 하였다고.
서울특별시 국립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1931년 평양 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모교의 교사가 되었다.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에 입학하여, 1936년 수석으로 졸업했고, 1949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였다.
1952년 제2회 고등고시에 최초의 여성합격자가 되었고, 이어서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1952년부터 각종 청원서와 진정서를 통해 가족법개정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현재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를 창설하여 가족법개정운동을 주도하였다.
1962년 가정법원 설치를 제안하고, 1963년 가정법원이 설치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을 지냈다. 1970년 국제법률구조연합회 이사 및 부회장, 1973년 세계여자변호사회 부회장, 1981년 국제법률가위원회 위원, 1986년부터 1996년까지 동 위원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76년 국내외 여성 100명의 힘을 모아 한국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설립하는 등 인권과 여권운동에 몰두하였다. 1969년에는 55살의 나이로 「한국 이혼제도 연구」라는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에는 미국 뉴저지 드류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를 받았고, 1963년부터 1971년까지 이화여대학교 법정대학 교수 및 법정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의 과제로 생각한 것은 ‘여권운동은 인권운동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신념하에 이루어야 할 여성권익 향상을 위한 여성운동이었다. 그의 운동은 호주제 폐지, 이혼 때 재산분할청구권과 부모친권, 동성동본불혼제 등의 ‘가족법개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노력은 1989년 가족법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1977년 이른바 명동3·1사건으로 실형을 받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으나, 1980년 복권되었다. 19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 및 여권신장에 미친 공헌으로 1971년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1975년 막사이사이상, 1982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1984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 1989년 브레넌인권상을 수상했고, 국내에서는 199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이혼제도연구』·『여성을 위한 법률상식』·『차라리 민비를 변호함』·『쪽박으로 한강물을』·『현대여성의 모럴』·『가족법개정운동 37년사』·『북한여성연구』·『나의 만남, 나의 인생』 등이 있으며, 유고집으로 『정의의 변호사가 되라 하셨네』 등 20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첫댓글 작년에 음악극 보러가서 처음 알았는데 진짜 대단한분..
멋지신분 존함 외워야지
오늘 길위에 김대중 봤는데 이희호 여사가 비서로 근무하셨을 때 이 분 사무실에서 일하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