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들어보자!
행복이 별거더냐!! 그렇지만 누구나 보이지 않는 행복을 갈구(渴求)한다. 행복은 빨강 노랑 파랑의 고운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벼슬이 높다고 행복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단, 내 몸 건강하고 근심과 걱정 없고 욕심 내려놓으면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던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근심과 걱정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긴장하며 살라는 하늘의 명령인 것 같다. 그 명령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그
반면 신께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란 묘한 감정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행복이란 아름다운 허구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맛볼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살면서 기쁜 일이 생기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전율이 몸에 흐른다. 또 즐겁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땐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때론 아름다운 웃음이 나온다. 이때 잠시 멍에를 벗고 행복이란 세계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도
그러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
행복을 맛보려고 몇 분의 산울림 가족과 산행을 하기로 했다. 양평에 있는 추읍산으로 번개 산행을 하러
간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산 이름이다. 그래서 그 산에는 어떠한 보물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침 일찍 송광 선생께 추읍산 가는
길을 상세히 메모해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상세하게 적은 메모가 전파를 타고 날아온다. 그 메모를 보고 있을 때 신인희 님께
전화가 온다. 잠실 롯데 지하에 있는 환승역 4번 게이트로 오라는 전갈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산행할 도구를 바로 챙겼다. 롯데 환승역을
가기 위해 석촌호수를 걸어갈 때 필자를 본 개나리꽃이 노란 웃음을 방긋 터트려 반가이 맞이한다. 하늘엔 연분홍 벚꽃이 만개하여 화려하게 꽃
대궐을 만들어 놓았다. 이 아름다운 장면에 반해 잠시 물끄러미 벚꽃과 눈을 맞추었다. 코로나로 인해 폐쇄된 호수는 오전 5시부터 4시간 동안
주민들 건강을 위해 운동하라고 개방한다. 주민들은 봄의 전령사 벚꽃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걷는다. 롯데
환승역에 도착하니 변용각 님을 비롯해 4분이 담소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1200번 버스가 도착해 탑승했다.
우리는 도농역에 내려 전철로 갈아탔다. 그때가 9시다. 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바다를 공중에 만들어
놓았다. 자연의 아름다운 장면만 보아도 행복이 가슴을 파고든다. 차를 몇 번 갈아타고 우리가 오늘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추읍산으로 가기 위해
"원덕역"에 내렸다. 원덕역에서 추읍산 입구까지는 약 1km라고 이정표에 써 놓았다. 황면연 회장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황 회장은 젊고 패기가
넘치며 항상 유머가 풍부한 분이다. 거기다 마음도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다. 세종 임금의 신임을 듬뿍 받았던 명재상 황희(黃喜) 선생의
27대손이라고 들었다. 그 선생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산울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늘 가족처럼 챙기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회장이다.
올라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게 가파르다. 고즈넉한 오솔길 양옆엔 일명 두견꽃이라고 하는 진달래가 봄을 즐기며 아름다운 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그때 우리가 땀을 흘리며 힘들게 걷는 것을 새들은 보았나 보다.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우리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재조골 댄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거두어 가고 몸에선 엔도르핀이 돌기 시작한다
추읍산(582m)은 양평군 용문면과
개군면 경계를 이룬다. 북쪽 흑천 건너 용문산을 바라보고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추읍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산은
처음부터 깔딱 고개로 이루어진 산이다. 다행히 암능(岩陵)이 없고 흙 산이라 위험한 곳은 없다. 그러나 경사가 심해 등산하기 만만치 않은
산이다. 왜 이 고생을 하며 필자는 산에 올라갈까? 행복을 만들기 위해 오늘 산행을 한다고 했다. 예쁜 꽃망울을 터트린 아름다운 진달래가
반기고 새들이 고운 노래를 불러 주건만, 그런데도 깔딱고개를 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행복은 고생해서 사는 것만은 아닐진대 왜 나는 이 고생을
할까? 아니다. 이것은 고생이 아니다. 단, 진주알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릴 뿐이다. 수필이라는 옥동자가 태어나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진주란 옥동자가 아닐는지요!! *읍(揖)=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 배(拜)보다는 가벼운 인사하는 예(禮)의 하나다.
이산의 8부 능선까지 올라왔다.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일행은 모두 지쳐 보인다. 필자는 사력을 다해서 걸어야 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행복을 잡으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했다. 얼마 안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 기다리고 있는 애인과 빨리 상봉하고 싶다. 만나면 너무도 기뻐 날아다닐 것만
같다. 숨도 쉬지 말고 올라가자. 그래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애인을 만나야 한다. 필자를 기다리고 있는 애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외로움을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토록
그립고 보고싶었던 애인을 단숨에 끌어안았다. 그러곤 호흡을 가다듬고 기쁨의 입맞춤을 했다. 머리가 황홀하다. 이렇게 보고 싶었던 애인과 상봉을
하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그녀의 몸에는 추읍산 582m라고 새겨놓았다. 잠시 후 가슴을 가다듬고 사방을 바라보았다. 남한강물이 넘실넘실
흐르고 남한산성이 보인다. 강 건너엔 여주시가 보이고 앞에는 용문산이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검단산과 예봉산 천마산까지 보인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상에서 애인과의 사랑 어린 대화를 마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吟味)하느라 정신이 없다.
봄을 맞이한 추읍산은 진달래 꽃향기를 바람에 날려 봄이 왔음을 알린다. 모든 식물과 나무는 새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보노라면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정상에 있는 애인을 보기 위해 허겁지겁 올라오느라 배가 좀 출출해 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정상을 약간 비켜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명당을 잡아 점심을 먹는다. 세상 돌아가는 재미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으니 꿀맛이다.
재미난 이야기는 웃음을 생산해내니 이것 또한 향기롭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먹는 것도 하늘이
준 복이다. 이젠 하산을 해야 한다. 하산하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추읍산은 산수유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맘때면 산수유 축제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상까지 올라오면서 한 그루의 산수유도 보지 못했다. 이게 웬일일까? 산수유는 어디 숨어 있을까! 궁금증이 유발하기 시작한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변용각 님께 물어보았다. 대답인, 즉 남서쪽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에 산수유가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곳을 몹시
가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산수유를 보고 가자고 했다.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한다. 그때 마침 황면연 회장의 따님이 황 회장께 전화가 온다. 아빠가
이 산을 오셨다기에 모셔가려고 왔다는 것이다. 효녀 딸을 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산수유 군락지를 보고 갈 수 있었다. 너무도
기쁨이 쏟아진다. 우리 일행은 수백 년 된 산수유를 보기 위해 내리 마을로 방향을 바꿔 하산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추읍산 정상을
‘마당재’로 불렸다 한다. 여주에 세종대왕 능을 쓸 때의 일이다. 묏자리를 파고 보니 땅속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이에 지관을 잡아 가두려 하자,
지관은 “나를 잡지 말고 칠읍산 마당재에 우물을 파도록 하시오. 그러면 마당재에서 물이 나오고 그 대신 세종대왕 능 자리의 물기가 싹 가실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해서 마당재로 불렸다는 설도 전한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 따르면, 추읍산 정상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었으나 묘하게 6·25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추읍산은 풍수적으로 산세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정상에서 사방으로 산을 에워싼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일품이다.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을 말함
남서쪽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수령이 400~500년가량 된 산수유(山茱萸)나무 1만5,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4월 초 노란 산수유꽃이 온 마을을 뒤덮을 때를 맞춰‘개군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축제 때에는 길놀이, 산수유 백일장, 추읍산 등산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우리는 마을로 들어섰다. 산수유(山茱萸) 노란 꽃이 만개하여 내리 마을 전체가 노랗게 보인다. 올해‘양평
산수유축제는 주읍리․내리 군락지에서 4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열린다고 하였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안타깝게도 취소된 것 같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았지만 쓸쓸함만 묻어난다. 주읍리(注邑里)는 국립 지리 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나오는 행정지명이다. 마을회관에는 한문으로
‘趨揖里(추읍리)’라고 쓰인 간판이 붙어 있다. 이 마을은 봄이면 온 마을이 노란색으로 물들고, 가을이면 새빨간 산수유 열매로 염색되어 있다고
한다.
산수유 마을 주읍리 유래를 알림판에 의해 적어본다. 원래 여주군 개군산면 주읍이었으나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읍으로 변경되었다. 마을 뒷산인 주읍산은 정상에서 보면 일곱 고을이 보인다고 하여 칠읍산이라고도 불리고 일곱 파지의 보물이 있다 하여
칠보산이라고도 불렸다. 속설(俗說)에 따르면, 명지관(名地官)이 마을 뒷산에 올라 보니 이 산이 용문산에 뒤쫒는 형상이므로 추읍(趨揖)산이라
명명했다. 1995년 8월 15일 이후로는 주읍산에서 원 지명인 추읍산으로 바꾸어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되었다. 1963년 1월 1일부터
여주군에서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의 각 속 지명은 다음과 같다. 고사터, 서낭데이, 섬바위, 솔꾸제이, 신당이고개, 언덕말, 오야골,
지정고개, 집 너머 고개, 화랑골, 가자골, 너러석거리,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조선 세종대왕의 영릉 터를 여주에 조성하면서
당시에 묘터에서 물이 나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노승이 산수유마을 뒷산인 추읍산을 가리키며 "저 산 정상 바로 오른쪽 아래를 파보면 우물이
나올 것이요. 그러면 이 묘터의 수맥이 그리로 빠져나가 물이 안 나올 것이요"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이에 실제로 추읍산에 우물을 파니
세종대왕 영릉 터에 물이 사라지고 묘역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세조 때에 당시 귀한 산수유나무 몇 그루를 이 마을에
하사하였고 그 나무들이 퍼지면서 산수유마을의 귀한 소득원으로서 조성되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추읍산 정상의 아름다움과
산수유 마을에서 노랗게 핀 산수유꽃을 행복이 넘치도록 감상했다. 그때 황 회장의 따님이 차를 갖다 댄다. 우리는 염치를 무릅쓰고 차에 올랐다.
뒤풀이를 황 회장 따님 집에 가서 숯불에 돼지고기 구우며 가든파티를 하자고 한다. 달리던 차를 마트에 세운다. 고기 등등 푸짐하게 먹거리를 사서
실었다. 산언덕에 아담하고 예쁜 집 앞에 차를 세운다. 여기가 황 회장 따님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황 회장은 따님 교육을 잘해 출가를 시킨
것 같다. 말솜씨며 행동 하나하나가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다. 오늘 산행 마무리를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가든파티로 행복하게 끝을 맺었다.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