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마태복음(16장~18장) 묵상
※ 교회의 권세
교회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새벽이 교회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때부터 교회가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교회가 공동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120명의 기도하던 성도들이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한꺼번에 체험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때가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라고 보아도 큰 오류는 없을 것이다.
예수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가 세상을 향하여 탄생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교회에 관해 처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 도시는 갈릴리 호수 북방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데
로마황제 가이사랴가 자신을 기념하여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중요한 질문을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다양하게 말하였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하기도 하고 엘리야나 예레미야라고 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묵묵히 들으시던 예수님은 그렇다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이때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마16:16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놀랍다.
주님께서는 거의 수천 년 동안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며 기다렸던 바로 그 "메시야"라는 고백이다.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막히게 정확한 고백이었다.
베드로가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완전히 이해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많은 날을 따라다니며 같이 생활하다 보니,
`이 분은 단순한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선지자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이 분이 바로 그 오신다던 메시야다`라는 깨달음이 왔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너무도 기뻐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줘서 인정받아서 기뻐하신 것이라기 보다
장래 세워질 교회를 염두에 두시고 기뻐하신 것이다.
17절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그러시면서 곧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이 고백이 교회의 기초였던 것이다. 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교회의 회원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신앙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진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관한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로, 교회의 소유권에 관한 말씀이다.
18절,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이 구절을 우리말로 읽을 때는 밋밋하지만 원어를 읽을 때는 재미있다.
베드로는 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너는 돌이다. 이 돌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이런 뜻이다.
앞의 돌은 페트로스 남성 명사이고 뒤의 돌, 반석은 페트라 여성 명사로 쓰였다.
그러므로 페트로스의 고백을 페트라 즉 반석으로 보고,
그런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의미로 읽혀지게 된다.
인간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한 그런 류의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베드로를 첫 교황으로 삼게 된 카톨릭은
페트로스와 페트라를 동일시해 버리는
성경 해석의 오류에 빠져 있음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소유주가 누구인가?
교회의 소유권은 예수님이 가지고 계심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셨다.
교회는 주인 되신 예수님의 소원을 좇아 운영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목사가 설교할 때에는 주님의 소원을 알아서 전해야 한다.
"주님 제가 무슨 말하기를 원하십니까?"
설교할 때마다 이것을 여쭤봐야 한다.
당회원을 위시한 교회의 임직자들도 교
회 일을 의논할 때에 주님의 소원을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내 생각, 내 경험으로는 이런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안 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섬겨야 한다.
둘째로는, 교회의 능력에 관한 말씀이다.
18절 하반 절에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음부는 원어로 하데스(Hades)로서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다.
교회를 죽음의 능력이 정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곳이 교회이다.
멸망해서 지옥으로 가야 될 사람을 영생의 천국으로 안내하는 곳이 교회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문화혁명 때 모택동이 장개석을 쫓아내고 중국을 점령했을 때
선교사들을 다 쫓아내고 목사는 다 감옥에 투옥시키고 교회 문을 닫았다.
그 후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의심이 간다고 가차없이 처형했다.
그러다가 모택동이 죽고 등소평이 들어섰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택동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의 기독교들의 숫자가 100만 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등소평이 들어섰을 때에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1000만 명 이상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다.
목사도 없고 교회도 없고 성경도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이 나았고,
귀신을 쫓을 때 미친 사람이 나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약한 것 같지만 능력이 있다.
어려움이 싹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중에도 평안이 있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기쁨이 있다.
교회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교회의 권위에 관한 말씀이다.
19절에,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여기서 열쇠는 권위의 상징이다.
통치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마태복음 16장 19절을 기초로
구원의 결정권을 교황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는 본문 말씀을 볼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베드로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기신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왔을 때
교회를 대표해서 설교를 했던 분이 베드로였다.
유대 사람들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베드로가 갔을 때에 성령이 내렸다.
이방인에게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성령이 임하도록 한 것도 베드로였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한 사람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시게 함으로써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 모두가 다
한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19절의 약속이 반드시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이 똑같은 약속의 말씀을 다른 제자들에게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결정하면
하늘에서도 그 결정을 인정해 주신다고 했다. 엄청난 책임이다.
아멘.
- 꿀송이 보약 큐티 365일 성경 통독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