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추석날 저녁에 달이 하도 밝아서 칠산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다. 벼이삭은 금빛으로 출렁거렸다.
달빛이 비치니 금 반짝이를 뿌린 듯이 곱게 빛난다. 내일이 추석이라 팔에 감기는 바람이 다르다.
바람에는 풋사과 향이 묻어 있다.
두 딸과 들판 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흰구름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 구름을 타고
달도 간다.
"저 달을 봐라, 마치 구름에 달이 가듯이 간다. 박목월의 시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이 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
" 저렇게 구름에 달이 가듯이 나그네도 유유히 남도의 길을 걸었겠지, 책만 봐서는 그 시를 아니 시를
이해하지 못한단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성의 열림이 없이 읽는 시는 죽은 시를 보는 것이다."
들판을 거닐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마도 잠시나마 두
딸이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었으리라 믿는다.
시는 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내가 자화상을 쓴다면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풀꽃들과 이야기하다가 놓치고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쓰고 싶었다. 구름에 달이 가듯이 인생길을 그렇게 가고 싶다. 정신없이 세상을 살기보다는 하나하나
느끼면서 살고 싶다.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풀꽃을 만나면 풀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느리게 천천히 가고 싶다.
바람이 부는 가을 들판에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달을 보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환한 달빛이 은비처럼 쏟아진다.
그 은비를 맞고 나는 다시 들판을 걷는다.
초가을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며 내게 말을 건다.
"나처럼 빨리 가려고 하지마, 너만의 걸음으로 걸어라"
첫댓글 작은 추석날 딸들과 박목월의 시세계를 이해하며 나눈 대화 그림같네요~
'너만의 걸음'으로 사랑스럽게 앞으로 ♬~앞으로 ♬~ 잘 나아가고 있는 해당화님^^*
느린 걸음 빠른 걸음 그 걸음마에 간혹 좋은 사람으로 깜짝 출연해야지
출연료는 공짜랍니다
출연료 드릴게요. 따뜻한 차와 밥 한 그릇 어때요?
이런 횡재!
이름모를 풀꽃들이 달빛을 받아 은은한 본연을 나타내는 것처럼, 가슴 속에 그리운 것 하나 품고 살다보면 저도 빛살 한 조각 쯤은 얻을 수 있겠지요. 천천히 달 따라 걷다보면 각자의 걸음걸이가 정해지겠지요. 우공이산, 칠백리 남도 길이 일리의 산책로처럼 가벼워질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망갈람.
천천히 달을 따라 걷는 동호회를 조직할까요? 가슴 속에 늘 그리움을 품고 살면 또 다른 그리움들이 새끼를 치고 그 그리움은 시를 낳는 어미가 되겠지요^^
시인 문태준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 "먼 산을 보듯 먼 길을 가듯 해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해당화님의 '구름에 달 가듯이'를 읽으니 느릿느릿한 '들밥 풍경'이 떠오릅니다.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자란답니다. 따뜻한 문장과 마음에 박수를 치며 ...
저도 "느림보 마음"을 보면서 더 삶을 음미하면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한없이 감사합니다. 요즘은 감사의 마음이 절절하게 가슴에서 우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