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인 죠지 뮬러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 건너가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영국은 농경시대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산업혁명 시대였기 때문에 거리에는 거지와 고아가 가득했다. 하루는 죠지 뮬러가 성경을 읽다가 아이디어 하나를 얻었다. 성경 시편을 읽다가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는 말씀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을 먹이고 입히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이므로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고아원의 총무를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길로 그는 선교사가 되려던 생각을 바꾸고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국 브리스톨에 역사상 가장 큰 고아원을 세우고 2천 명의 고아들을 돌보며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킨 역사적인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다. 죠지 뮬러가 성경을 읽다가 얻은 아이디어로 인하여 런던 거리를 방황하던 고아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어떤 비젼을 얻었는가 ?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적극적인 비젼 본문 : 딤후4:7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순교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적극적 신앙으로 주어진 목회 사역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일평생 주의 복음 사역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은 그가 평생동안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전투적 자세로 믿음 생활에 임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 소망을 가진 비젼 있는 성도의 신앙 자세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는 적극적인 신앙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사도 바울을 본받아 적극적인 비젼을 가지고 믿음 생활에 승리를 이루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함(창6:9)
1)불의를 멀리함 노아는 인류 최대의 대홍수 심판에서 가족과 더불어 구원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시 사회는 불의와 부정이 범람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온 사회가 불의에 빠져 있었는데, 유독 노아만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불의를 멀리하였습니다. 사실 온 사회가 부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여기서 혼자만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적극적인 자세로, 사회에서 도태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적극적인 신앙 자세로 사회의 불의와 싸우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노아의 적극적 신앙 자세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가진 성도는 전투적인 자세로 불의와 싸우고 불의를 멀리하는 법입니다.
2)성결에 힘씀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성결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가 소매를 끌며 유혹할 때 겉옷을 뿌리치면서까지 유혹을 물리치고 멀리 도망쳤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적극적으로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다면 성결을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듯 성결한 삶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성도는 적극적인 자세로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물리쳐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사회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성도덕이 문란해져 온갖 유혹이 난무한 이 세상에서는 더더욱 적극적인 신앙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삼상15:22)
1)무조건 순종함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이유를 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울 임금은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에게 속한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남김없이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좋은 짐승들은 탐이 나서 모두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사무엘의 질책을 받자 하나님께 제사드릴 것이라고 변명하였습니다. 실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불순종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2)전심으로 순종함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전심 전력을 다해 순종하는 법입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순종하고, 또 그렇지 못하면 적당히 하는 것은 결코 적극적인 순종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정녕 적극적인 순종 자세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런 자세로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였습니다(엡6:6). 금년 한해 우리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철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3. 하나님께 충성함(계2:10)
1)목숨 걸고 충성함 적극적인 신자는 위기가 닥쳐도 목숨 걸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결코 변절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선열들은 모두 이런 충성된 자들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의 박해하에서 목숨 걸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 예수님의 제자들, 또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두 이렇게 목숨을 잃을지언정, 결단코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갖추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말세의 때에 불어닥칠 박해에 대비하여 지금부터라도 주님 향한 충성심을 저버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신앙 훈련을 쌓아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를 주님은 큰 상급으로 후하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2)끝까지 충성함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께 충성하되, 끝까지 충성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두 번 충성하다 잠깐 후에 변절하는 자를 충성스런 자라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충성스럽다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일관변함없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적극적 신앙 자세를 가진 자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을 받은 그날부터 주님 앞에 돌아갈 그날까지 변함없이 충성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일평생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듯이 말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시다. 나아가서 목숨 걸고 하나님께 충성합시다. 이런 적극적인 신앙과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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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복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