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신> 다시, 상징에 관해서 / 임보 (시인, 교수)
로메다 님, 지난번엔 시의 상징에 관해서 얘기했습니다. 관념이나 정신이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표현된 형식이 상징의 구조라고설명했지요? 시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이 지상의 모든 문화들은 상징의 구조에 담겨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안 가지요? 생각해 보십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지요? 어떤 학교의 교표는 그 학교의 상징이고요. 횡단보도의 앞에 켜 있는 붉은 신호등은 '정지' 하라는 의미의 상징이 아닙니까? 더 넓게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음성으로 표현하는 '말'이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글'도 역시 상징입니다. 수사학에서는 집단이 규정해 놓은 것을 제도적 상징, 그리고 특정 민족의 규약인 언어를 언어적 상징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한 건축가가 그의 이상을 담아 어떤 건물을 설계했다면 그 건물은 그 이상의 상징입니다. 한 디자이너가 그의 생각을 담아 만든 의상은 그 생각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어떤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 낸 인간 활동의 결과물은 다 상징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만든 상징들의 숲에 갇혀 살아가는 복잡한 동물들입니다. 로메다 님, 지난 주말에는 지리산의 고운동(孤雲洞)을 찾아 나섰습니다.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머물던 길지(吉地)라는 곳이지요. 가는 길에 천은사(泉隱寺)라는 아늑한 절에 들렀습니다. 그 절에 걸려 있는 유명한 필적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절에는 조선조 후대의 유명한 명필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유적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원교 이광사李匡師는 글씨로 이름을 얻었던 분이다. 양명학에서도 조예가 깊었고 인품 또한 대단했다고 전한다. 1755년 나주에서 있었던 벽서 사건*으로 말미암아 원교는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되는데 그때 30여 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고 하니 그의 인품을 짐작할 만하다. 조정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그를 다시 남해의 신지도로 이배시켰다. 원교는 그 섬에서 22년 간 갇혀 끝내 헤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전라도의 여러 사찰들은 그의 글씨를 다투어 간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해남 대둔사와 지리산 천은사의 것이 유명하다. 얼핏 보면 원교의 굴씨는 멋이 없다. 한편으로 기울어 넘어질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획은 힘이 빠져 구부러질 것 같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제주도 귀양살이 가던 추사가 초의를 만나려 대둔사에 들렀을 때 원교의 대웅전 현판을 떼고 자기의 것을 매달라 했겠는가? 그런데 그 추사가 8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대둔사에 다시 들러 원교의 현판을 거듭 보고는 자기의 것을 떼고 원교의 것을 다시 걸라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다. 천은사 일주문엔 '지리산 천은사'라는 유수체(흐르는 물처럼 자유롭게 쓴 글씨)의 원교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글씨로 하여 자주 일어났던 천은사의 화재가 멈췄다는 것이 아닌가.
* 나주 벽서사건 : 을해옥사, 윤지 등이 1725년에 나라를 비방하는 글을 나주객사에 붙여 사주 및 유배를 당한 사건.
로메다 님, 이 글을 여기에 끌어들인 것은 하나의 글씨 속에도 얼마나 무궁한 상징이 서려 있는가를 말하고자 해서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추사가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매달라고 했던 것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글씨 속에 서려 있는 상징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요. 천은사의 글씨가 화재(火災)를 막았다는 얘기는 그 글씨에 서린 주지(主旨)가 얼마나 강렬한 상징이었던가를 말하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로메다 님, 시도 그 글씨처럼 강렬한 상징의 힘을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는 비유가 아니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비유의 기능을 역설했습니다만 시인은 상징에 기대지 않고는 그의 장광설을 다 담을 수 없을 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쓴 「신발에 관한 동화」라는 내 졸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장에 가서/ 신발을 사 오셨다// 5남매의 신발/ 다섯 컬레 고무신이었다
성미 급한 형은/ 며칠 신다 굽이 터지자 엿 사 먹고 말았다// 마음 착한 누나는/ 매일 깨끗이 닦아 조심 조심 신었다// 개구쟁이 막내 동생은/ 개천이고 산이고 첨벙대며 신고 다녔다// 소심한 누이동생은/ 댓돌 위에 얹어 놓고 바라다만 보았다// 나도 돌밭 길을 달릴 때는/ 두 손에 벗어 들고 맨발로 뛰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형제들을 불러 놓고/자신의 신발들을 가져오라 이르셨다
형은 없는 신발을 가져올 수 없었고/막내의 신발이 제일 엉망이었다// 가장 양호한 신발은/ 누이와 누님의 것// 새 신발이 필요한 자는 바꾸어 주리라/ 아버지가 이르셨다
그러자 손을 번쩍 든 놈은 오직/ 막내뿐이었다 - 「신발에 관한 동화」 전문
로메다 님, 당신은 이 작품에 등장한 여러 형제자매들 가운데 어떤 유형에 가까운 인물인가요? 성경에 이러한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주고간 달란트[돈]를 불리는 종들에겐 주인이 칭찬을 하고 불리지 못한 무능한 종을 꾸중한 이야기 말입니다. 이 글도 발상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신발을 둘러싼 한 가족의 얘기만을 한 것이 아닙니다. 신발은 하나의 상징물입니다. 신발은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일 수도 있고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환경'이나 '도구'가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여기에 등장한 형제자매들 역시 다양한 성품과 능력을 지닌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상징합니다. 상징의 구조는 이처럼 숨기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말합니다. 시에서의 상징의 매력과 기능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작품에 등장한 '고무신'은 내가 처음으로 설정한 개인 상징입니다. 개인 상징은 생소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발언은 참신한 개인의 입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이것이 시를 쓰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로메다 님, 상징은 감추면서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말하는 기법입니다. 작품 속에 당신만의 상징법, 개인 상징을 끊임없이 모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환절기에 몸조심하십시오. 천은사 입구에서 내가 잡은 수홍교의 석양 풍경과 원교의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보내니 완상하시기 바랍니다.
- 임보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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