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여시(愼終如始)
일의 끝을 처음같이 신중하게 하라
愼 : 삼갈 신(忄/10)
終 : 마칠 종(糸/5)
如 : 같을 여(女/3)
始 : 처음 시(女/5)
출전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第64章
老子 道德經 第六十四章
무리하게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손쓰기 쉽다.
其脆易泮, 其微易散.
굳어 있지 않은 것은 풀기가 쉽고,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은 흩어지기 쉽다.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일이 생기기 전에 잘 처리를 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털끝 만한 싹에서 부터 자라고, 아홉 층의 높은 대도 터닦기에서 시작되며, 천리 길을 가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爲者敗之, 執者失之.
성공하려 애쓰는 자는 실패를 하고,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는 놓치게 된다.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없고, 잡고 늘어지지 않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다.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 언제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실수를 하게 된다.
愼終如始則無敗事.
마지막 손질을 처음처럼 한다면 실패는 없다.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이 없음을 욕심으로 삼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널리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움으로 하고 사람들의 지나친 행동을 본래로 되돌리고, 만물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하여 무리하게 스스로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譯)
편안할 때 위태함을 잊지 않으면 보전하기가 쉽고, 낌새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계획하기가 쉽다. 취약한 것은 깨트려지기가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버리기가 쉽다. 그러므로 나타나기 전에 대책을 세우고, 어지럽게 되기 전에 미리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만한 싹에서 나온 것이고, 구층의 높은 누대도 흙을 다진 위에 세운 것이며, 천리의 먼 길도 발밑에서 시작한 것이다.
미리 방지하지 못하고 억지로 하는 자는 실패하고,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고 억지로 잡는 자는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억지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없고, 억지로 붙잡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잃는 것이 없다.
백성들의 하는 일을 보면 항상 거의 완성하게 되었을 때 실패한다. 끝까지 처음처럼 조심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세상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는 것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얻기 어려운 보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잘못을 도(道)에 복귀시킨다. 그리하여 만물의 자연을 도울 뿐이고 감히 억지로 하지 않는다.
(解)
한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같은 나무줄기에서 생기고, 9층의 누대도 한줌의 흙을 쌓는데서 시작되고, 천리의 여행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기본을 잊고 무엇을 하려는 자는 일을 망칠 것이요, 무언가에 집착을 하면 오히려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아름드리나무도 털끝같은 씨앗에서 생겨나고, 구층 누각도 한 삼태기 흙을 쌓는 데서 시작되고, 천리의 먼 길도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억지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고, 붙잡고 있는 자는 잃어버린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억지로 행함이 없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고, 집착함이 없기 때문에 잃어 버리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일을 행함에는 항상 거의 성공하려다가 실패하는 일이 많은니, 나중 삼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신종여시(慎終如始)
일의 끝을 삼가하기를 최초의 때와 같게 하라
서기로 2022년이 시작되었다. 해마다 처음엔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여러 가지 각오를 하곤 한다. 시작도 마침도 없는 대자연의 세월은 무한해도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는 인생은 유한하기에 시작과 마침이란 화두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유명한 소주 브랜드가 된 '처음처럼'은 노자가 말한 '여시(如始)'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무엇을 처음처럼 하라는 말인가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갖가지 생각이 들겠지만 역시 마침을 처음처럼 하자는 캠페인이 정석으로 보인다.
무질서도가 점차 증가되는 방향으로 우주가 흘러간다는 물리법칙이 인간의 몸과 생리와 심리에도 적용되기에 방치해 버리면 점차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쪽으로 어지러워지기 쉽다. 그래서 고인들도 늘 매일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인생을 살아가자고 주장한 것이 아닌가.
공자는 제자를 조카사위로 맞아들이면서 한 가지를 보고 결정하였다. 이 제자가 시경의 한 글귀를 매일 반복해서 읊조리는 것을 보고는 조카 사위로 삼아도 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흰 옥의 흠은 잘 닦고 갈면 없어지겠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어찌할 방법이 없구나!' 이 구절을 매일 반복하면서 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새해 거창한 결심도 좋지만 이 제자처럼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도 처음처럼 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신종여시(愼終如始)
세모(歲暮)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아쉬움이 가슴을 쓰리게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생각나서도 그러겠지만, 한 해가 가고 나이 들어간다는 회한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에 비춰볼 때 일 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세상은 '예전처럼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공자가 "춘하추동 사계는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라고 말한 것은 천지의 단절없는 운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에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떻게 시작하는가보다 어떻게 끝을 내는가로 평가된다. 결과 중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시작은 누구나 잘할 수 있다. 문제는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노자 도덕경에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하게 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愼終如始則無敗事)"는 말은 유시지중(有始之重)과 유종지미(有終之美), 곧 시작의 중요성 못잖게 마무리를 잘하라는 가르침의 강조다.
끝의 중요함을 이르는 말은 일찍이 '시경(詩經)' 탕편에서 '누구나 일을 시작할 때는 잘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지속시켜 나가는 자는 얼마 안 된다(靡不有初 鮮克有終)'고 꼬집은 바 있다.
전국시대 진(秦)의 무왕(武王)은 조금 강대해지자 자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걱정하던 가신(家臣)이 진언했다. "우리 진나라가 인접국가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염려됩니다. 예전에 진(晉)나라의 지백(智伯)이나 오(吳)나라 부차(夫差), 양(梁)나라 혜왕(惠王)은 처음엔 큰 공을 세우고 패권을 차지했지만 끝까지 힘을 발휘하지 못해 치욕과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라며 시경의 이 구절을 인용했다.
진언의 효과가 있어, 진나라는 훗날 시황제 때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有始者必有終)'고 했다. 사흘 남은 올 한 해 마무리를 잘해, 새날의 디딤돌로 삼길 기대한다.
신종여시(愼終如始)
'사유종시(事有終始)'는 "온갖 일에는 마침과 처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始終(시종)이라 하지 않고 終始(종시)라 했을까? 대부분 사람은 주로 시작을 먼저 말하고 끝이나 맺음, 마침은 나중에나 드물게 말한다.
더구나 "시작이 반이다"는 말을 곧잘 하지 않는가. 이렇듯 사람들은 시작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시작은 쉽게 하면서도 '끝맺고 마치는 일'은 소홀히 하거나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끝맺음이나 마침을 앞에 내세운 것이리라.
사람의 일이란 끝맺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가 죽기 전에는 늘 새로운 일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죽음이야말로 몸이 썩어가는 것 말고는 더는 자신에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사태다. 살아 있는 한, 늘 무슨 일이 생기거나 또 무슨 일을 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그 자신이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해야만 하는 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 시작을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잘 추스르고 제대로 매조져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이 아니라 해서 내버려 두었다가는 도리어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하므로 매조지거나 끝맺는 일, 곧 마침을 분명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관자(管子)'의 '정세(正世)'에서 "성인이란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도에 밝고, 인사의 마침과 처음에 익달한 사람이다(聖人者, 明於治亂之道, 習於人事之終始者也)"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의 마침과 처음을 잘 아는 것은 성인의 자격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꼭 성인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마침과 처음의 이치를 터득하려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삶이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는 그 나라 모든 사람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숱한 일들을 꾀하므로 잘 매조지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 점에서 '대학'이 마침과 처음을 말한 것은 탁월하다.
'순자(荀子)' '의병(議兵)'에 나온다. "반드시 일에 앞서 깊이 헤아려야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거듭 생각해야 한다. 처음처럼 삼가며 마쳐서 마침과 처음이 한결같아야 한다. 이것을 크나큰 길함이라 한다(慮必先事而申之以敬. 愼終如始, 終始如一, 夫是之謂大吉)."
▶️ 愼(삼갈 신, 땅 이름 진)은 ❶형성문자로 慎(신)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세밀하다는 뜻을 가진 眞(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세밀히 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愼자는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愼자는 心(마음 심)자와 眞(참 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眞자는 신에게 바칠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참됨을 뜻하는 眞자에 心자가 결합한 愼자는 조심스럽게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愼(신, 진)은 ①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②근신(謹愼)하다 ③두려워하다 ④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⑤따르다 ⑥삼감(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함) ⑦성(姓)의 하나 ⑧진실로, 참으로 ⑨부디, 제발, 그리고 ⓐ땅의 이름(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삼갈 각(恪), 원할 원(愿), 삼갈 비(毖), 삼갈 근(謹), 삼갈 욱(頊)이다. 용례로는 매우 조심스러움을 신중(愼重),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신독(愼獨), 신중하게 사려함을 신려(愼慮), 신중히 생각함을 신사(愼思), 상사를 당하여 예절을 중시함을 신종(愼終), 삼가고 조심함을 신계(愼戒), 신중하게 가려 뽑음을 신간(愼簡), 말을 삼감을 신구(愼口), 신중하고 면밀함을 신밀(愼密), 여색을 삼감을 신색(愼色), 신중히 다룸을 신석(愼惜), 조심하여 고름 또는 선택을 신중히 함을 신선(愼選), 조심하여 지킴을 신수(愼守), 말을 삼감을 신언(愼言),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음을 신기(愼機), 삼가서 침묵을 지킴을 묵신(愼默),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란 뜻으로 설날을 일컫는 말을 신일(愼日), 언행을 삼가고 조심함으로 과오나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들어앉아 행동을 삼감을 근신(謹愼), 힘써 삼감을 근신(勤愼), 삼가지 아니함이나 신중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불신(不愼), 겸손하게 삼감을 겸신(謙愼), 경계하여 삼감을 계신(戒愼), 공경하고 삼감을 경신(敬愼), 혼자서 스스로 근신하는 일을 독신(獨愼), 온화하고 신중함을 온신(溫愼), 두려워하고 삼감을 공신(恐愼), 성품이 질박하고 신중함을 질신(質愼), 어렵게 여기고 조심함을 난신(難愼), 몹시 두려워하고 언행을 삼감을 외신(畏愼), 양친의 상사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공경을 다한다는 말을 신종추원(愼終追遠), 일이 마지막에도 처음과 같이 신중을 기한다는 말을 신종여시(愼終如始), 처음 뿐만 아니라 끝맺음도 좋아야 한다는 말을 신종의령(愼終宜令),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이르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등에 쓰인다.
▶️ 終(마칠 종)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冬(동, 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冬(동, 종)과 바느질을 다 하고 나서 실(실사(糸; 실타래)部)을 매듭짓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마치다를 뜻한다. 冬(동; 겨울)은 네 계절(季節)의 끝이므로 실 사(糸; 실타래)部를 덧붙여 감긴 실의 끝이 되고 널리 끝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終자는 ‘끝나다’나 ‘마치다’, ‘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終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冬(겨울 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冬자는 새끼줄 양 끝에 매듭을 묶어 줄이 풀리지 않게 일을 마무리했다는 의미에서 ‘끝내다’나 ‘마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冬자가 ‘겨울’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糸자를 더한 終자가 ‘끝내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終(종)은 끝,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①마치다 ②끝내다 ③사람이 죽다 ④다하다 ⑤이루어지다, 완성되다 ⑥채우다, 상당하다 ⑦끝, 마지막 ⑧사방 백 리의 땅 ⑨열두 해 ⑩윤(閏)달 ⑪항상(恒常), 늘 ⑫마침내, 결국(結局) ⑬비록,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칠 료(了), 마칠 졸(卒), 마칠 필(畢), 마칠 준(竣), 마칠 파(罷), 그칠 지(止), 끝 말(末), 끝 단(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처음 초(初), 비로소 시(始)이다. 용례로는 일을 마침을 종료(終了), 끝이나 끝판을 종말(終末), 끝을 냄을 종결(終結), 그 날의 업무를 마침을 종업(終業), 맡아보던 일을 끝냄을 종무(終務), 죽을 때까지를 종신(終身), 필경에 또는 마침내를 종내(終乃), 마지막과 처음을 종시(終始), 전쟁이 끝남을 종전(終戰), 한 때 매우 성하던 것이 주저앉아서 그침을 종식(終熄), 간행을 끝냄 또는 끝낸 그것을 종간(終刊), 마지막에 다다른 판국을 종국(終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를 종일(終日), 최종으로 도착함을 종착(終着), 끝을 냄이나 끝이 남을 종지(終止), 죽거나 없어져서 존재가 끝남을 종언(終焉), 결정이 내려짐을 종결(終決), 맨 끝이 되는 곳을 종점(終點),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를 임종(臨終), 단계나 차례에 있어서 맨 나중을 최종(最終), 오복의 하나로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고종(考終),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종(年終), 끝을 완전히 맺음을 유종(有終), 나중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를 내종(乃終), 사람의 목숨이 끊어져 죽는 때 또는 일의 마지막을 망종(亡終), 끝이 없음을 무종(無終), 좋지 않은 최후를 악종(惡終), 유종의 미를 거둠을 선종(善終), 처음과 끝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시종(始終),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음을 종시일관(終始一貫), 끝내 소식이 없음을 종무소식(終無消息),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사모의 정을 종천지모(終天之慕), 그 사람을 한평생 인간다운 대접을 해 주지 않는 일을 종신불치(終身不齒), 죽을 때까지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종신지질(終身之疾), 빚돈을 갚지 않음을 종불출급(終不出給), 끝내 방문하지 않음을 종불투족(終不投足), 어떤 일을 한번 끝내어 마쳤다가 다시 시작함을 종이부시(終而復始), 끝내 회개하지 않음을 종불회개(終不悔改), 식사를 하는 짧은 시간이라는 뜻으로 얼마 되지 않는 동안을 종식지간(終食之間), 하루낮 동안 들이는 수고를 종일지역(終日之役), 영원히 계속되는 슬픔을 종천지통(終天之痛),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는 그 사실을 자초지종(自初至終),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관철함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이나 나중이 한결같아서 변함 없음을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나 나중에는 게으름을 이르는 말을 시근종태(始勤終怠), 끝까지 굳게 참고 견딤을 견인지종(堅忍至終), 부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기를 원하다는 뜻으로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이르는 말을 원걸종양(願乞終養), 우정을 끝까지 잘 지켜 나가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흉종극말(凶終隙末)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始(비로소 시)는 ❶형성문자로 乨(시)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시)와 여자(女)의 뱃속에 아기가 생기는 일이 시초라는 데서 '비로소', '처음'을 뜻한다. 始(시)는 어머니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일, 또 한 집안의 시초, 시조(始祖), 나중에 '사물의 시작'이란 뜻으로도 쓴다. ❷회의문자로 始자는 '비로서'나 '일찍이', '옛날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始자는 女(여자 여)자와 台(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台자는 匕(비수 비)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것으로 수저를 입에 가져다 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女자가 더해진 始자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이는 엄마가 주는 양분을 통해 삶을 시작하게 된다. 始자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아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始(시)는 ①비로소 ②바야흐로 ③먼저, 앞서서 ④일찍, 일찍부터 ⑤옛날에, 당초에 ⑥처음, 시초(始初) ⑦근본(根本), 근원(根源) ⑧시작(始作)하다 ⑨일으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처음 초(初), 근본 본(本), 비롯할 창(創), 비롯할 조(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끝 말(末), 마칠 종(終)이다. 용례로는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한 족속의 맨 우두머리 조상을 시조(始祖), 시작한 처음 무렵을 시초(始初), 시작되는 처음을 시원(始原), 어떤 일을 맡아보기 시작함을 시무(始務), 일의 처음과 끝을 시말(始末), 직업 또는 학업 따위의 일을 시작함을 시업(始業),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함을 시동(始動), 일련의 동작 운동이 시작되는 점을 시점(始點), 어떤 일이 시작되는 때를 시기(始期), 맨 처음 출발 또는 발차함을 시발(始發), 처음으로 자연 그대로 사람의 손이 가해지지 않음을 원시(原始), 처음으로 시작함을 개시(開始), 천지가 비롯된 무렵이나 만물이 시작된 때를 태시(太始), 어떤 사상이나 학설 등을 처음 내세움을 창시(創始), 맨 처음을 본시(本始), 마지막과 처음을 종시(終始), 아무리 돌아도 처음 비롯한 곳이 없음을 무시(無始),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관철한다는 말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이나 나중이 한결 같아서 변함없다는 말을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나 나중에는 게으름을 이르는 말을 시근종태(始勤終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다는 말을 종시일관(終始一貫),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시작도 끝도 없다는 뜻으로 불변의 진리나 윤회의 무한성을 이르는 말을 무시무종(無始無終), 살고 죽는 윤회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일컫는 말을 무시범부(無始凡夫),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천지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을 보본반시(報本反始),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들음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문(今始初聞),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