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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 플 렉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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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드라마에서는 결혼식 때 꼭 이러더라
어젯밤 괜한 답답함 덕분에 창문을 열고 잠이 들었다. 재윤이 나간 후 지연은 우습게도 정말 재윤만을 향해 눈물이 났다. 이제는 더 이상 온전히 그녀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절망감마저 들었다. 몸을 감싸는 햇빛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어렵게 떴다.
유리 구두를 뺏긴 신데렐라의 마음이 이럴 것 같다. 아름다운 드레스, 호박으로 만든 멋진 마차, 그리고 곧 깨질 듯해서 더욱 매력적인 유리 구두. 그것들 보다 가지고 싶은 왕자. 어느 것 하나 손에 남은 것 없이 예전으로 돌아가 다락방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신데렐라의 모습과 겹쳐져 간다. 유리 구두가 없는 신데렐라의 세상은 잔인하다. 세상 모두가 왕자의 결혼식을 축복한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그 ‘세상 모두’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고립되어 간다.
지연은 바로 욕실로 들어가 몸의 피로를 녹였다. 그런데 양치질 때문인지 입 안이 텁텁해 냉장고를 열었지만 맥주 두 캔 말고는 마실 것이 없었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그녀는 겉옷을 들었다.
“그러고 가게?”
“뭐야, 너?”
어제와는 달리 말쑥한 차림으로 최대한 멋을 낸 재윤이 문을 열자마자 보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 하는 그의 모습이 얼떨떨했다.
“결혼식 안 가?”
“…뭐?”
“가자. 가면서 옷 사고, 미용실 들리면 되지 뭐. 오늘 내가 쏠게.”
“안 가.”
“그럼 어쩔 수 없지.”
“악!”
재윤은 부은 눈의 지연을 들쳐 업고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재윤의 차에 도착하기까지 지연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아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는 했지만 무사히 차 안으로 들어갔다.
“너 뭐하는 거야.”
“누나 납치 하고 있는 중이잖아.”
지연은 더 이상 화 낼 기력도 없는지 시트에 몸을 완전히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나 안 나오면 어쩌려고 했니.”
“쳐 들어가려고 했지.”
“어떻게?”
“1014”
“…….”
“남자친구 생일이라니 너무 뻔하다.”
“그래, 내가졌다.”
“한 숨 자.”
재윤의 말이 주문이라도 된 듯이 지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에 빠졌다. 목이 마른 것도 잊은 채 깊은 무의식 세계로 들어갔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서야 눈을 떴다.
“이제 일어났어?”
“이게…다 뭐야?”
“자는 동안 메이크업이랑 머리는 했어. 옷 골라봐.”
“깨우지.”
“화장 해 주는 분이 힘들어하긴 했는데 곤히 자서 깨울 수가 있어야지. 이건 어때?”
“예쁘네. 근데 흰 옷은 좀.”
“와- 이 와중에 신부 배려하는 거야?”
“…….”
재윤은 지연에게 하얀 원피스 하나는 쥐어주곤 탈의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지연이 옷을 들고 우물쭈물하자 재윤은 원피스를 그녀의 몸에 대주곤 탈의실 안에 있는 전신거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봐. 예쁘지? 갈아입고 나와. 내 마지막 선물이야.”
“마지막?”
지연의 되물음에 재윤은 그냥 웃어보였다. 그의 웃음이 왜 그리도 가슴을 울리는지 알지 못 했지만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지연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재윤은 그대로 결혼식장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호텔 근처의 옷 가게였는지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다. 식장 밖에는 화려한 화환들이 줄을 이었고 귀한 집 자제라는 티가 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제 식이 시작되는지 서로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일제히 안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도 가자.”
“…잠깐만. 나 그냥 갈래.”
지연은 그녀의 두 눈으로 상혁의 결혼식을 볼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재윤은 어떻게 식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그녀를 데려왔는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손목이 잡힌 채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랑 신부 행진의 마지막 지점에 서자 재윤은 지연의 손목을 놓았다. 지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상혁에게로 갔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 입은 모습이 두 눈에 그대로 박혔다. 그 때 재윤이 지연의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게 했다. 그러고선 그녀를 향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예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웃음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했다.
“누나.”
“재윤아.”
“사랑해.”
“…….”
“사랑한다, 이지연.”
지연의 귀에 달콤한 말을 남긴 재윤은 빠른 걸음으로 신랑, 신부에게 다가갔다. 하객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놀란 탓인지 일제히 재윤을 쳐다 볼 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 때 재윤이 재희 앞에 섰다.
“이 결혼 반대야.”
재윤이 재희의 손목을 잡고 상혁을 바라 봤다. 상혁은 갑작스러운 재윤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혹시나’하는 마음에 지연을 찾았다. 저 멀리 하객들 사이에 흰 원피스를 입은 지연의 모습이 보였다. 재윤은 재희의 손목을 잡고 상혁을 지나치며 속삭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네요.’
재윤의 돌발행동에 상혁의 부모님과 재희의 부모님은 노발대발을 하며 사람들에게 잡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재희를 잡고 있는 재윤이 더 빨랐다. 재윤과 재희는 식장 밖으로 도망갔다. 재윤은 아침에 미리 수연에게 호텔 1층에 차를 가지고 대기 해 주기를 부탁했다. 수연이 운전하는 차에 재윤과 재희가 타자마자 차는 출발하고, 그 뒤를 쫓던 경비들은 결국 그 자리에 서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
“…….”
수연은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궁시렁거렸다. 아침에 재윤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재윤의 작전을 듣자마자 어제 그가 전화로 했던 모든 말들이 납득이 되었다. 재희가 무엇을 바랄지는 몰랐지만 결혼을 앞둔 새신부의 모습은 아니었기에 수연은 재윤의 편에 섰다. 아직도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지금의 재희 모습이 나았다.
“누나 손목 잡고 나와 줬어. 내가. 기분이 어때?”
“날 위한 건 아니겠지.”
“맞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야.”
“재윤아. 나를 이용해. 날 이용해서 그녀를 잊어.”
* * *
“아”
재윤과 재희가 식장을 나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상혁과 지연은 두 눈이 마주쳤다. 재윤이 지연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며 쥐어준 것은 옷이 아니었다. 상혁이었다. 지연은 상혁의 눈길을 받아줄 자신이 없어 망설임 없이 뒤돌아 뛰었다. 쉬지 않고 호텔 밖으로 나온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한 허탈감을 느낀 그녀는 호텔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를 타곤 그 곳을 떠났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이것 좀 놓으세요. 가 볼 곳이 있어요.”
“그 여자한테 가려는 것이야? 그 여자가 꾸민 짓이냐? 아까 같이 온 남자가 왜 우리 새아가를 데려가는 거야!”
상혁은 누구에게 들릴까 싶어 속삭이는 상혁의 부가 우스웠다. 그 또한 이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마주쳤던 재윤의 눈빛에서 대충 간파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녀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을 궁금해 하는 인파를 뚫고 달려가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나왔지만 지연은 상혁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주차장으로 가 그녀의 집 앞으로 운전했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함께 갔던 바, 카페, 그리고 공원을 다 가봤지만 아무 곳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새삼 함께 했던 추억이 별로 없음에 기운이 빠졌다. 순간 추억에 빠진 상혁은 한 곳이 떠올랐다. 벌써 어둑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지체 없이 핸들을 돌렸다.
* * *
재윤은 말없이 재희를 쳐다봤다. 그녀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그렇게 한 동안 서로를 쳐다보다 그는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누나랑 나랑 참 닮았다.”
“나 네 옆에 있어도 돼?”
“아니.”
“…….”
“나 누나 상처 줄 걸. 예전에 누나를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래서 누나를 잊기 힘들었던 거 보다 더 못 잊을 거야. 아마.”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누나 힘들어 하는 모습 보면 난 연기 할 수밖에 없어. 그 사람을 잊은 척, 그리고 누나를 사랑하는 척.”
“그럼 그냥 두지 그랬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서 날 또 혼자로 만드는 거야?”
“누나도 그런 결혼 원하지 않았잖아.”
“아니!”
갑자기 소리 지른 재희 덕에 수연도 운전하던 것을 멈추고 급정거를 해 버렸다. 앞으로 쏠린 재희를 재윤이 받쳐주었다.
“괜찮아?”
“난 결혼을 원하지 않은 게 아니야. 그냥 널 원했을 뿐이야.”
“…….”
재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재윤은 재희를 데리고 나오면 지연도 사랑을 되찾고 재희도 벗어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만이 모든 것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이후에 자신이 모두를 위해 해결 해 준다는 자만감에 빠져 모든 것을 희생하는 듯한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재희의 최후의 돌파구를 막은 것도, 이제야 털어내려 하던 지연의 아픔을 도려낸 것도 그였다. 결국엔 변화의 계기만 줬을 뿐 다시 스스로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
“누나를 위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어.”
“…….”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어. 누나도, 그 남자도, 그리고 나를 위한 일이었어.”
“잠깐, 잠깐. 그 사람은 누구고 그 남자는 누군데?”
재희와 재윤이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던 수연이 결국에는 못 참고 끼어들었다. 사실 재희는 재윤이 식장에 나타나 그녀의 손목을 잡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그녀와 곧 결혼하게 될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여자가 재윤과 함께 있던 지연임을 깨닫고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 이렇게도 엇갈린 관계가 또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재윤이 수연에게 간단하게 설명 해 주는 모든 일들이 재희에게 사실이라고 말 해 주고 있었다.
“그럼 지연이랑 김상혁감독이랑 사귀는, 그러니까 애인이라고? 그 개자식이 김상혁이었다고?”
“응”
“넌 그걸 다 알고 재희를 데리고 나온 거고? 지연이를 위해서?”
“…응”
“하”
수연은 모두와 연관되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지연과 재연을 만나게 해 준 것도 그녀였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 아끼는 동생들 그리고 엇갈린 인연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순 없잖아. 재희 너는 어떡할래? 집으로 갈래?”
“집으로 가야지.”
“감당 할 수 있겠어?”
“나도 같이 가.”
“안 돼.”
“내가 벌인 일이야. 저번처럼 누나 혼자 감당 하도록 안 해.”
“…너 알고 있었어?”
“지레 짐작했었어.”
“…개자식.”
재희는 재윤에게 이별을 고한 날 세상을 버렸다. 살아야 할 이유를 버렸었다. 재윤을 위해. 재윤은 재희가 이별을 고한 날 도망쳤다. 이런 식으로 사이를 끊을 여자가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생각하는 일 일까봐. 혹시라도 누나가 날 위해 인생을 버렸을 까봐. 그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역시나 다시 찾아 온 재희의 눈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어보였다. 그저 재윤의 모습만이 비춰 보일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레스피토입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봤었던 많은 분들이 다 어디 가셨는지...ㅠㅠ
속상한 마음뿐입니다.
참 이 카페는 제 학창시절부터 힐링의 공간이었는데...!
다시 부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 올립니다^^
어떤 분에게는 제 소설이 잠시의 기쁨이 되길 바라면서.
늘 힘쓰시는 운영진분들께도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1.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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