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끝마실에 납시는 동무가 기왕에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겠지만
두셋이면, 너댓이면, 대여섯이면,,,
나 혼자면 그건 또 어때서...
어차피
내 팔 내 흔들며
나, 여기 '오늘도 걷는다마는'~...
별고을, 성주 성밖숲에 있는 나그네 설움, 백년설 노래비
사람들이 꿈 같은 세상을 살다가, 갈 수만 있다면~...
그런데 누리던 꿈같은 꿈의 무대가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은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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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취일지언정 축하한다,
불행도 비극도 그만하기에 다행이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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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위안을 받거나 위안을 삼는 것은 그것이 비록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언정 현명한 자세가 아닐 수 없을 것!
예전에
"절망은 없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찬서리 내리고 눈보라 치는 뜰에도 봄은 다시 오고 꽃은 다시 핍니다....... (어쩌고 저쩌고 ㅋ)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심연옥은 일제강점기 어린 시절부터 무용연구소에서 무용공부를 했지만, 딸 가진 부모들이 공연무대에 서는 것을 말리던 시절이라 그 일을 접고 중앙 공업연구소에서 타이피스토로 활동했다.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뜨자 어린 동생들을 기르며 생활하기에 타이피스트로는 가정생활이 어려웠고 또 완고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라 연예활동을 생각하고 있던 중 친구들과 극장공연을 관람하러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가극의 주인공이 되고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가수 심연옥의 탄생이다.
국도극장의 그 공연은 가수 이난영의 부군이자 그 시대 대표적인 연예스타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단의 공연이었고 그 공연무대에서 옛 가무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 주리를 보았다. 심연옥은 주리와 함께 그 악단의 지휘자 김해송을 만나 어렵지 않게 KPK악단 단원이 되었다.
별고을(星州)이 낳은 "나그네 설움" ,
白年雪(본명 이갑룡 1914~1980)님에 혼인한 ㅎ 별고을 며느리,
"아내의 노래" 심연옥(沈蓮玉 1929 ~2021)~
참
단아하시고 고우시고
아침 이슬처럼 반짝이는 모습
은쟁반 구르는 옥구슬 목소리~ 옥성[玉聲]~~~...
심연옥(沈蓮玉, 1929년 ~ 2021년 10월 4일) , 서울 태생.
1947년 KPK 악단에서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 시기 KBC 레코드에서 <한강>(최병호 작사.곡)을 취입하였다.
김해송씨에게 발탁되어 뮤지컬 작품 오페라 《 투란도트》(1948), 《카르멘환상곡》(1949), 《로미오와 줄리에트》(1950) 등에서 늘 주인공으로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6.25가 발발하고 김해송씨가 납북된 후 국내에는 뮤지컬을 제작 감독할 사람이 전무한 상태인지라 사랑하던 뮤지컬 무대를 잃게 되었다.
그 이후 유행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전향하여 몇곡을 취입하게 된다.
1952년 <아내의 노래>가 대표적이며
1957년 가수 백년설과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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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옥님의 자태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대중가요는 그의 취향이 아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
뽕짝대는 대중가요를 그런대로 잘 하던데 자신에겐 정녕 어떠했을까...
듣고 즐기는 이들에겐 손해될 일 없지만
당사자에게는 꿈같은 활동무대였고, 이상향 같은 뮤지컬이었는데 전쟁의 포화속에 그 꿈의 무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옛 소녀의 꿈이 스쳐 지나간 순식간, 텅빈 전쟁터 하늘~...
심연옥 - 고향역
1957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1
< 단어>
* 배당(褙襠): 소매가 없는 윗옷, 민소매, Sleeveless (Tank Top)
*일본어; *袖 (そで,소데) : 소매 ,
- 袖無(そでな)し 소데나시=sodena[袖無]sh =소매없음
- たなし[手無, 袖無, 타나시 ] : 통소매의 작업복
고향 역(심연옥).산포도.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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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다빈님,
ㅎ~
같이 걷는
길 벗
길 동무
동행자
동반자~
마음의 길 벗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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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골이 별꼴이지 뭘 어쩌겐노요.
끝말방은
제가 있는 한 문 닫지는 아니합니다.
제가 없어지면
얼마간은
진짜 개미 1도 안 나타는 날
간혹 있을지도...
끝말방의 값진 가치를
제대로 발견 못하면 그건 대책 무!!!
6.25 전쟁 발발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라가 이렇게 위대?해져도 우린 말없이 ~
날씨가 무더우니 카페도 방문자 많음 더위에 지칠까봐...
전쟁은 인명과 참 많은 걸 빼앗아 가는 비극임에도 이직도 세계 곳곳에선 포화가 그치질 않는군요.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자태와 목소리 뮤지컬의 꿈을 접고
뽕짝 대중가요 가수로 생활 하다 결혼하면서 거의 접다 싶이한 가수 활동,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겠지예?
누구에게나 제일 중요한 건 건강 또 간강, 특히 멀고 먼 곳에 계시는 갑장님 별고을님이시기에 늘 강녕하시길 바라옵니다.
의료 수준, 체계, 보험 제도 등이 잘 갖추어져 있기를~
1947년 그 당시 오페라는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요 개척자일텐데...
그 꿈의 무대가 사라지다 니 얼마나 암담하고 처참했을까요.
그 분은 필시 대중 가요는 아니었나 봅니다.
무더위 날씨
존체 평강하세요.
@별고을 안타까운 일이었군요. 전쟁의 화마가 가져온 이루 헤아릴 없는 비극적인인 일들...
성주 성밖숲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간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멀지않은 화목정도 몇 번 가고
또 어느 가문의 선산도 가고 한 3~4군데 들리며. 노래비 보긴 했을텐데 맥문동 담느라 정신 없어 확실한 기억이 없군요.
난
개인적으로
심연옥씨의
한강
노래를 좋아합니다
목소리가
은구슬 같아요
따라서
많이 불렀답니다
백년설과 결혼??
성주며느리가
되었네요 ~^^
성주 며느리
아내의 노래비 하나
세워드려도 훌륭하고 값진 기념이 되련만...
일본의 이춘미(미야코 하루미)하고...
그런 생각은
아마도
저만 하는지도 모르겐네요.
39도 더위에
생존하셨습니다.
각별 건강 챙기세요.
맞아요.
나 혼자면 그건 또 어때서...
혼자도 외롭지 않아요.
둘이서는 다정하고
삼삼오오도 좋고요.
타이피스트가 직업이던 시대
저도 컴퓨터가 도스가 나오기전에는 타이핑으로 인쇄했지요ㅎ
옛가수들 소개 감사합니다.
우리
혼자 밥 먹으면
이상한 나라가 되었더군요.
혼자 있으면 못사는 줄 , 죽는 줄 아는 것이야말로
정말 대책 무 ㅂ니다.
세상 엄청나게 변화했습니다.
타이프 소리에 일과가 시작되고
전화기 있는 집은 부유한 집이던 때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