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탐방] 정병경.
ㅡ자락길ㅡ
21세기에서 15세기 시대를 음미한다는 것은 경이롭다. 한 주 전에 한양도성 길을 산책했다. 시간이 부족해 못다 본 나머지 구간 탐방이다.
이준수 박사가 추천한 서대문 안산의 메타쉐콰이어숲으로 먼저 나선다. 독립문역에 내려 데크길로 들어섰다.
가을 하늘을 시샘하는 훼방꾼으로 인해 포인트를 놓칠 때가 있다. 다행히도 이번주는 비 소식이 없다. 청명한 날씨 덕에 도성에서 몇백 리 밖의 사물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아직까지도 멀리 볼 수 있어 눈이 보배롭다.
예전의 초가와 기와집을 연상하며 시내를 내려다 본다. 오백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탈바꿈한 모습은 격세지감 상전벽해다. 내가 태어난 시절만 해도 황무지다.
ㅡ홀로서기ㅡ
백로가 지나 한낮의 강렬한 햇살이 한풀 꺾여 열기가 식었다(强弩之末). 지난번의 반대길인 안산자락길을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간이 쉼터는 인생 소담笑談 정류장이다.
산자락에 자리한 봉원사의 팻말이 보인다. 절 모습이 궁금해서 오솔길을 밟는다. 크고 웅장한 사찰이 한가롭다. 왼편에 큰 건물은 보수중이다.
다시 둘레길에 들어선다. 무악정毋岳亭 앞 벤치에 잠시 앉아 간식을 먹었다. 혼자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오랜 세월 수행이 축적되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나홀로 생활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집을 열심히 지어 공급해도 주택이 부족한 이유중의 하나는 독신자가 많아지는 현상 때문일까!
혼자 즐기는 습관을 몸소 익혀야 한다. 서로 만나지 않으면 분쟁의 소지가 적다. 어느 단체에서 SNS에 주고 받는 문자를 본다. 종교나 정치 등 자극적인 이야기로 언쟁이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다.여럿이 만나면 입을 닫는 습관을 익힌다.
다시 데크길을 걷는다. 메타쉐콰이어 숲이 나타난다. 역시 웅장하고 볼 만하다. 눈요기로는 최고다. 안산은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 꽃이 지면 눈길이 안 가는 잡목들은 들러리다. 원대리 자작숲과 규모를 비교해본다. 막상막하다.
ㅡ가교ㅡ
다시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 인왕정을 지난다. 선바위, 해골바위가 눈높이에 있다.
안산자락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부처바위와 마주한 남산타워가 서로 교신이라도 하는 모습이다.
태초에 없던 이름들! 기차바위, 범바위, 선바위, 해골바위는 언제부터 이름이 붙여졌을까! 천재지변 없이 영원히 지니길 빌어본다.
국사당 방면으로 하산한다. 경사가 심하다. 바위 아래에서 기도 삼매경에 든 무속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숨소리도 잡음이다. 가늘게 바위틈을 타고 떨어지는 샘물은 리듬이다.
인왕산 도성길에서 갈라지는 1.5km의 '돈의문 터' 도성 안길로 접어든다. 공원과 주택이 접해있어 가까이에서 도성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는 동네다.
덕이 없는 나라가 소란하다고 한다. 임금에게 덕이 있으면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고달프지 않다. 성벽이 있다고 안전하지는 않다. 준비성이 있는 정신력이 곧 내 땅을 지키는 길이다. 계곡의 수달을 의식하는 물고기가 지닌 방어 태세를 교훈삼는다.
안내 판넬에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에 눈길이 간다. 성을 쌓은 돌에 공사를 담당한 지방과 구간의 시점을 표시한 기록이다. 성벽이 무너지면 공사 담당은 다시 쌓아야 한다. 당시에도 실명제가 있었다.
사직터널 (송월 1길)위 지점에서 도성은 없고 상가ㆍ주택으로 이어진다. 아쉽지만 상상으로 이어본다. 탐방을 마치고 독립문 방향으로 걷는다.
안산과 인왕산에 둘러쌓인 독립문 공원엔 인파가 오후를 즐긴다. 지나간 역사가 필름으로 스친다. 가을 산행은 몸이 따라주어 즐겁고 행복하다. 시 한 수 읊조리고 떠난다.
"오백 년 한양도성
오천 년 우리 역사
혈맥이 돌고 돌아
누누이 억만 세월
부여한
삼강오륜을
잊지 않고 새기리."
하루 발품 3만5천보를 이룬 내 몸에 감사한다. 다음엔 남산구간과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의 낙산구간이다. 다시 전철을 타고 원적지로 향한다.
2021.09.10.
첫댓글 안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가을 풍광이 멋집니다.
그러나 정병경 선생님의 시 한 수가 더욱 멋집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진정으로
돌고 돌아 3만5천보의 흔적에
역사에 흔적하나 깊이 찍어놓으신
계절의 아름다운 시간이십니다~
오래오래 보존하여 후세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