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경향신문 사설
제목: 최저임금을 대하는 압구정동과 울산 태화동의 차이
최저임금 인상을 앞둔 지난해 말 232가구가 거주하는 울산 태화동 주상복합아파트 리버스위트 안내문이 내걸렸다. 새해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되 부득이하게 관리비를 올릴 수밖에 없어 2가지 안으로 입주민 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투표안에는 최저임금 730원에 맞춰 경비원 급여를 인상하는 방안과 휴게시간을 1시간 30분 늘리고 경비원 수를 감축하는 방안이 담겼다. 입주민 투표결과 경비원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68%였다. 경비원들은 노동시간 조정이나 인원변동 없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입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매달 9000원 가량의 관리비를 더 내야 했지만 비용을 나누며 함께 사는 쪽을 선택했다. 입주민들은 "공동체의 일원인 경비원에게 지출하는 비용은 비싸지도, 아깝지도 않다" 면서 상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입주민 투표를 주도한 주민자치위 관계자는 "가구당 1만원이 되지 않는 관리비 인상액 때문에 입주민을 위해 일해온 경비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했다. 울산 리버스위트 아파트 입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나눠 지며 '더불어 살기'를 신천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라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의 입주민대표회의는 지난해 말 경비원 94명 전원을 해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는 관리비 부담 증가와 경비 업무의 전문성 확보를 해고 사유로 들었다. 경비원 노동조합은 입주민 부담을 덜기 위해 휴게시간 연장과 퇴직금 산정방식 변경 등을 제안했지만 묵살당했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되면 구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의 급여는 월 32만원가량 오른다. 3000여 가구가 매달 3570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울산 리버스위트 아파트 입주민들이 올해부터 추가로 내야 할 관리비의 3분의 1수준이다. 그러네도 구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는 경비원 전원을 해고하고, 경비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기는 쪽을 택했다. 부자동네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의 일자리를 빼았는 야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시세가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갖고 있는 주민들이 월 5000원도 안되는 추가 부담을 꺼려 경비원을 해고한 것은 적은 비용도 나눠 질 수 없다는 이기주의적인 판단의 결과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을'인 50여면명의 경비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고용불만에 내몰려 있다. 대부분 24시간 교대제 근무를 하지만 휴게시간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해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9월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은 경비원에게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년마다 계약갱신을 통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의 지시를 경비원들이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뿐 아니라 탈원전.지구 온난화 해결.복지 확대 등 삶의 질 향상은 시민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혜를 보고 그 비용을 각자 나눠 지겠다는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발휘할 때만 가능하다. 시민들이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살기를 원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건비와 전기료, 세금 등을 더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일이다. 물론 그런 현상은 내가 조금 더 낸 비용이 나에게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정글사회의 법칙을 압구정동 아파트 입주민이 잘 보여주었다. 적은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시장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압구정동 모델이다. 그러나 다른 접근법도 있다. 약간의 부담을 나눠 지면서 상생을 모색한 울산 태화동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