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슬픔
참 기막히다
깊고 어두운 막장에서 질식하고 만
압화(押花) 같은 저 벽화는
사랑은 창인데
바람 불면 후드득 전신을 떠는
거기로 푸른 들판이 들어서곤 하는
창에 붙은 풍뎅이 같은 것인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옆길 담벼락에 갇혀서
긴 목숨 죽지 못하고 희바래지는
상처 난 얼굴의 만개한 꽃들이 슬픔으로 있다
두터운 압지(押紙)가 오래, 몸속 깊은
찬란한 빛깔들을 빨아들인 것인가
쏟아지는 땡볕이 숯불가루처럼 날리는 한낮
강을 낀 소읍(小邑)의 우회도로
차 안에서 광속으로 달리는 사람들은
영어(囹圄)의 벽화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참고 참으면 곪는 걸
숨 막혀 터져버리는 걸
누가 허공에 물꼬를 뚫어
소나기라도 쏟아 부어 차라리 씻어 버려라
순결한 벽으로 돌아가도록, 안락하게 잊히도록
사랑하다가
모가지 뚝 부러져
떨어지는 동백꽃의 순한 슬픔, 거기 없다,
망각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어
가슴에서 조금씩 밀려나가는 기억의 썰물
- 김인숙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