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전거 유람기(상)
세계 오지를 자전거로 여행하기 위해 먼저 우리나라를 자전거로 돌았습니다. 여름에 두 번, 겨울에 네 번 도합 여섯 번을 유람, 아니 훈련했습니다. 고요한 숲과 침착한 들판, 어디를 가도 정렬된 풍속과 온화하고 질박한 인심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죠. 오늘은 전국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었던 당시의 기록을 펼쳐보겠습니다. 혹 읽는 중에 문장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과한 표현, 서툰 수식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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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자유이며 생각하는 것은 본능이니 내 스스로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여행은 즐거운 것이 아니며 또한 고통만 따라오는 것도 아니니 오직 감정의 흥기와 침잠이 반복되고 혹 질곡의 인생 시종을 평탄하게 고르는 쇠스랑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자전거 끌고 행신동을 떠나 낙타고개 못미처에서 잠깐 멈추니 이제 여행의 시작이었다.
월산대군 사당은 예전에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다투어 자란 잡초들이 얽혀 서로 키를 재고 고개에 오르니 눅눅한 바람은 적적하고 자전거 바퀴는 저절로 구르니 천하를 주유철환하는 것도 아니건만 문득 도를 생각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관장군 묘역에서 잠시 숨을 고르자 빈 배가 나루에서 흔들거리듯 옛 흔적이 가물대는 것이 차라리 번거로웠다. 풀숲에 쌓인 옛적 이야기는 바위를 덮은 이끼로 변하고 남루한 사당은 늙은 선비처럼 힘을 잃었으니 오직 단아한 능선과 절개를 드러내는 소나무만이 의연할 뿐이었다.
경원선의 마지막 역은 신탄리역이다. 20여 년 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신탄리역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색 바랜 그 당시의 흑백사진이 책상 서랍 어디엔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당시에 나와 함께 왔던 학도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회인불권(誨人不倦)이라 했건만 지금껏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육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책상위에 고인들의 말씀을 올려놓고 그 지고한 뜻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분명 내가 용렬하고 어두웠기 때문이며, 성현들의 엄격한 물음과 책망이 어느덧 빗나가는 화살이 된 것은 또한 내가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결심과 뜻이 부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제의 산양은 조그만 마을로 마치 아이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마을이었다. 고만고만한 키의 작은 집들이 가지런하게 길 좌우로 늘어서 있고 붉은 지붕은 탈색된 도로 색깔과 잘 어울렸다. 어디 찻집에라도 들러 한가하게 쉬고 싶었지만 정작 자전거는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마을을 지나쳐버리니 다만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글로라도 남길 수 있음이 다행일 뿐이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무릎까지 빠지도록 눈이 온 날에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마을이었다.
오천재를 넘어 오미리에 당도해 정거장 한편 의자에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배가 고파 전방 문을 두드렸지만 주인은 어디 출타중인지 아니면 오침중인지 내다보지도 않았다. 화단에 백일홍은 그 빛이 선명한데 고목에 핀 버섯은 윤기가 흐르고 구름 한 자락으로 감을 떠 옷을 차려입은 듯 말쑥한 민가들은 낮은 자세로 마을 앞을 달리는 내를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젊어서 이런 곳에 자리를 정한다면 탈속한 승려가 된 기분으로 한평생을 경건하게 살 것이며 만약 늙어서 내려왔다면 물 맑은 냇가에 발 담그고 시 한 구절을 노래하거나 노둔해진 시력을 당겨 멀리 날쌘 범의 꼬리처럼 내빼는 산맥에 의지한 채 사색에 들어 인생의 잔량으로 버텨볼 만한 곳이었다.
하루 종일 궂은비가 내렸는데 미시령과 속초를 지나 대포항에 와서야 겨우 비가 그쳤다. 동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 이름이 동해이기 때문이다. 푸른 해풍이 바다를 말리지 못하는 것은 풍부한 물이 늘 거기에 있기 때문이며, 사해의 용이 몸부림 쳐도 두렵지 않은 것은 또한 동해가 그것을 꼭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 의지한 어부들이 사시로 고기를 건져 올리며 창해의 그림자를 만드는 구름이 언제나 바다의 어머니인 동해와 같이 있으니 사람들은 가슴에 답답하거나 아니면 풀지 못한 문제나 미처 하지 못한 얘기가 있을 때 동해로 달려가는 것이다.
닥목령을 넘자 바로 고원지대였다. 좌측으로는 암반대기라고 쓴 이정표가 나타나고 오른편짝으로는 대관령의 풍력발전기 날개가 보였다. 길 좌우 구릉으로는 고원의 초지처럼 펼쳐진 채소밭이 장관이었다. 여기서 키우는 남새가 모두 도시 사람들의 밥상 위로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가뭄이나 홍수라도 나는 날이면 남새 값이 뛰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더듬이를 세운 나비들이 창공을 선회하고 조금 낮아진 구름이 남새밭 언저리를 둥둥 떠다녔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들은 얘긴데 이 지역에 소나무는 많지만 송이는 물론이고 뱀과 다람쥐가 사라진지 20년도 넘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소나무에 해를 가하는 솔잎혹파리나 재선충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항공방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눈으로 뵈는 것과 속사정은 다른 것이다.
정선에서는 조양강이 동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물고기 등처럼 곧게 벋어나간 태백산맥으로부터 큰 표주박을 엎어놓은 듯 동강이 휘어져 흐르는 곳에 안주한 정선은 지금이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지만 옛날만 해도 정선 주변은 거지반 오지였다. 특히 정선장은 근동에서 가장 큰 장이었는데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 있는 것이 주변으로부터 버섯이나 산나물 같은 임산물이나 두태와 같은 밭곡식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가꾸고 채집한 소박한 먹을거리들이 모이고 가리왕산을 비롯해서 육중한 산과 준엄한 능선 사이로 취선의 휘청대는 자취를 닮은 동강이 흐르니 잠시나마 세속의 풍진으로부터 벗어나 은자의 정취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선으로 왔던 것이다.
성황당(城隍堂)은 우리나라 마을 전역에 볼 수 있는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전통 사원이다. 우리 충청도에서는 서낭당이라고도 불렀는데 대부분 느티나무나 팽나무 같은 오래 된 나무 밑에 있다. 화암 못미처 한 마을에 이르니 마을 입구에 성황당이 있는데 놀라운 것은 성황당 옆에 서있는 나무였다. 수령이 330년 이상이나 된 음나무, 보통 엄나무라고도 한다, 가 마치 큰 칼을 차고 대군을 호령하는 장수처럼 버티고 있는데 이제까지 이렇게 큰 음나무는 치악산 전제 정상에 있던 음나무 빼고는 처음 봤다. 전제에 있던 음나무는 얼마 전에 열반하셨으니 이제 이 음나무가 내가 본 음나무 중에서는 최고령인 셈이었다. 정월에는 동네사람들 모두 추렴하여 성황당에 제를 올리고, 단오에는 음나무에 줄을 매어 그네를 띄었을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화전민들이 살던 곳을 중심으로 아직까지도 당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때맞추어 제를 올리는 곳이 많다. 호남지역이나 충청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이른 오후에 강원도 태백 장성으로부터 도계를 넘어 경북 봉화군에 도착했다. 예전 여기를 지날 때도 똑 같은 생각이었지만 마치 나라간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숲은 윤택하고 계곡은 서늘하여 달리는 내내 머리는 뜨거웠지만 몸은 시원했다. 정암사라는 암자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 입구 삼거리 정자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는데 밤에는 북두칠성이 고함을 치면서 사방의 영신들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북쪽으로는 영월 제천으로 가는 길이고 곧장 가면 현동이었다. 밤늦도록 삼거리에서 소나무 밀반출을 감시하는 분과 얘기를 나눴는데 허름한 나그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말상대까지 되어주시니 어떻게 이 은택을 다 갚을 수 있겠는가.
현동에서 녹동을 지나 안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개노리재 내리막을 달리다 범바위와 만났다. 조심스레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니 펄럭이는 만사의 자취 같기도 하다가 혹 도인의 장삼자락처럼 편안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윽하고도 편안한 풍광에 감회가 밀려오면서 문득 시 한 수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그 위세에 눌려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노래 한 구절은 불러야 할 것 같아 비유할 만한 글자를 찾았지만 결국 낙강의 기세와 힘이 넘치는 걸출한 용모에 굴복하고 말았다. 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껴안고 앞으로 툭 튀어나온 산은 마치 말이 목을 구부리고 물을 마시는 형상인데 어느 선비는 그 모습을 갈마음수(渴馬飮水)라 하여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 라는 비유로 명쾌하게 표현했다. 낙강, 퇴계선생은 낙동강을 낙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음은 저처럼 빼곡한 산맥의 골이 막히지 않고 트였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만나는 대부분 조그만 읍내의 정거장은 늘 쓸쓸하고 외롭다. 승객들은 표정이 없으며 서로들 상대방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대합실 안은 언제나 누추하고 어두우며 오래 된 버스 시간표에 적힌 목적지는 모두 생소하여 마치 어디 다른 행성의 알 수 없는 도시나 시골이름과도 같다. 벽에 붙은 때 묻은 부착물과 포스터는 낯이 설며 삐딱하게 기울어진 나무의자와 수십 년도 넘어 보이는 낡은 소파는 선뜻 앉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바로 이런 정거장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스스로 여행자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버스는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도착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시간은 어느새 동무가 된다. 매표원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행선지를 말하면 고개만 끄덕이며 건네는 표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길을 가다가 행정구역이 바뀌게 되면 대부분 많은 재를 만나는데 옛날에는 이런 고개에 얽힌 사연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 지방 사람들로부터 사연을 들어보면 소 팔고 고개를 넘던 사람이 돈을 안 털린 적이 없으며, 또 고개를 넘어가던 누군가가 여우에게 홀리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거기다가 좀 심하면 고개를 넘다가 호랑이를 본 사람도 있으며, 누군가는 비 오는 날 재를 넘다가 귀신이나 도깨비불을 본 사람들도 종종 있다. 참으로 옛적 고개는 사연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은데 그 이유는 고개를 넘어야 읍내나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으니 고개를 넘었던 사람들의 이런 저런 무용담이 하나 둘 보태지고 부풀려져서 탄생한 얘기들일 것이다.
밀양 밀성 손씨의 아흔 아홉 칸 고택은 지나간 영화의 흔적을 유서처럼 뚜렷하게 남겨놓은 채 나그네의 시선에 묵묵히 대꾸하였다. 머리맡에 놓은 목침처럼 딱딱하면서도 손때가 잔뜩 묻은 고가의 문지방과 대문의 손잡이, 그리고 처마로부터 기둥으로 흘러내리는 유연한 곡선과 직선의 조합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옛 이와의 만남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다. 저 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왔을까. 대문의 문고리와 지붕의 기와에 붙어있는 이끼는 셀 수 없이 지나간 계절들을 암기하고 있을 것이며, 점잖게 버티고 있는 기둥은 그 명멸의 그림자를 심장 안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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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기도 고양시 월산대군 사당으로부터 강원도 동해를 거쳐 안동까지
참 대단한 역주의 기록이네요.
대퇴부 둔부가 팽팽하시겠어요.
그래야 또 세계로 내달릴 테니까요.
자전거 여행은
오늘 목표 도시나 마을을 정하고 가는게 아니고
가다가 날 저물면 그곳에서 야영한다
제 철칙이고
언제나 지켰습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아요.
감사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전거 여행은 특이해서
가면서 체력이 만들어집니다.
감자 삼태기는
캐면서 무거워지지만
자전거 여행은
가면서 가벼워집니다.
지적 얻음과
지적 버림의 차이죠.
다음 편
곧 쓸게요.
고마워요.
풍경이 살아있는 듯 합니다
자전거 위에서 보는 나무 풀 바위
그리고 느끼는 바람.
굳이 형이상학적 도구를 쓰지 하지 않아도
그 뭔가 느낍니다.
감사해요.
자전거 유람기 !!
세계 오지를 자전거로 여행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자전거로 먼저 돌으셨다는 말씀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장문의 긴 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자전거 여행 완주하시기를
바라며 건강히 성공 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히말라야, 파미르, 안데스 등등
많이 다녀보고
다 좋았지만
어머니의 오래 된 광목 치마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 강토
최곱니다.
고마워요.
운동중에서도 걷기운동과 자전거 운동은
누구에게나 좋은 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높은산야 까지의 자전거야행은
인내심 없이는 할수 없는것..정말 대단하시네요-
설명도 감사합니다..
저는 당시에는 드물게
C/C++ 프로그램 개발자였습니다.
속된 말로
회사에서 매일 개발업무로 날밤 깐다고 하죠.
오죽하면 꿈 속에서도 코딩/디버깅
몸 망쳐서 프리랜서로 돌아서고
다시 공무원으로
결국 자전거로
모든 걸 복구했습니다.
감사해요.
아름다운 사진에 걸맞는 멋진 글 입니다.
쇠스랑등 정겨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 하는군요.
정선 조양강 부근에 제 선배가 운영하는 통나무 팬션이 있어 조양강 이야기도 반갑습니다.
저도 한 때는 여행자, 럭비공이라 불리울 정도로 여행을 즐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해 럭비공 이란 재미있는 별명을 붙여주신 분은 저의 직장 상사님 이셨습니다.
긴 글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아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
예단할 수 없지만
제 경험으로 본다면
여행은
처음이고
진행형이며
종래 끝입니다.
고마워요.
사진 좋고 글 좋습니다.
세계의 오지 자전거 여행기
계속되는 건필 기대해 봅니다.건강하세요.
나이 들어가면서
(죄송합니다)
글쓰기도 여러가지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군요.
문장을 나열하는 데
혹인은 한 글자를 놓는데
온 힘을 다한다고 하지만
제게는
특별한 책략이나 노고는 없고
좀 생뚱맞고 건방지지만
그냥 나오는 대로
편하게 쓸 뿐입니다.
감사해요.
잘보았습니다
void main (void)
{ ....
자전거=good;
while(1)
{ 감사;}
}
#include <자전거.인생>
main( void )
{
do {
printf("계상하여 그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n");
} while ( TRUE );
return 0;
}
고마워요.
날이 참 좋습니다~^^
홀로 누비는 편안한 여행기
스치는 바람처럼
싱그럽네요~
이제 은퇴도 했으니
오월쯤 어디든 출발하려고 합니다.
침낭, 텐트, 취사도구
그리고
자전거
점검 중입니다.
고마워요.
이글을 오늘 읽으면서 .... 자전거 여행의 묘미가 전해집니다
오르막엔 어떻게 하시는지요 .자전거 무척 힘드실텐데요 자동기어로만 하시는지요
저는 완전초보 여기 부산 수영강을 따라 광안리 자전거도로에서만 잘 다니고 있죠
마을유적지마다 설명도 어쩜 표현도 넘 잼나게 잘 읽고 있습니다 . 감사 드려요.
안녕하세요.
오르막에서는 물론 기어비를 조절합니다.
앞의 체인링을 인너(안쪽)으로 세팅하고
뒤의 카세트는
근육의 수용 여부에 따라
조절합니다.
자전거를 타신다니
같은 동호회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열심히 운동하셔서
아주 짧은 거리라도 여행을 하신다면
큰 울림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