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에서
“달이 뜨는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시든다. 바늘꽃과 두해살이풀로 4장의 꽃잎으로 노란색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한 개씩 달린다. 저녁에 꽃이 피는 이유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박각시나 나방 등 야행성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꽃잎이 축 쳐진 모습을 보지만 밤 8시 정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한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반전을 볼 수 있다.”
앞 인용절은 중앙지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기자가 쓴 ‘김민철의 꽃 이이기’에 나온 내용 일부다. 김민철은 들꽃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춘 문화부 기자로 야생화를 문학 작품과 결부시켜 이해 쉽도록 잘 풀어주었다. 이번에는 박완서 단편 ‘티타임의 모녀’에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달맞이꽃을 소개했다. 달맞이꽃은 한여름을 맞아 피는데 장마철인 지금이 개화가 한창이다.
달맞이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주 친근한 식물이지만 고향이 남미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우리나라에 일찍 들어와 자리 잡아 전국 어디서나 흔하다. 우거진 숲에는 들어가 살지 못하고 파헤쳐 놓은 공터나 길을 만든 가장자리 또는 경사지에서 흔하다. 길쭉한 주머니 같은 열매 속에 까만 씨앗이 들었는데, 한때 이 씨앗으로 짠 기름이 성인병에 좋다고 유행을 탄 적 있다.
요즘은 낮에 꽃이 피게 개량한 낮달맞이꽃도 주택가 화단 등에 많이 심어 키우는 경향이다. 달맞이꽃보다 꽃이 좀 더 크고 일찍부터 핀다. 낮에 피면서 꽃이 분홍색인 분홍낮달맞이꽃도 점점 늘고 있다. 꽃을 가꾸는 웬만한 집이면 낮달맞이꽃을 볼 수 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에서도 지난봄부터 꽃을 피워, 친구는 유튜브 방송 소재로도 활용했다.
달맞이꽃이 밤에 피는 까닭은 수분 꽃가루를 옮겨주는 박각시나방이 밤에 활동하기에 그때를 기다려 피어나서다. 볕이 뜨거운 낮을 피해 밤에 피는 꽃으로는 달맞이꽃 말고도 몇 종이 더 있다. 그 가운데 꽃향기가 유난히 그윽한 ’옥잠화‘가 있고, 각기 다른 꽃 색깔이 교배 결실 이후 혼합형으로 나타나 멘델이 유전법칙에서 우열의 법칙으로 어긋난다는 예로 등장하는 ’분꽃‘도 있다.
밤에 피는 꽃의 경우 흐린 날이나 비가 와도 낮에는 꽃이 피려는 낌새를 전혀 보여주지 않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분꽃을 검색해보면 ’저녁밥 지을 시간을 알려주는 꽃‘으로도 소개된다. 저녁에 피는 꽃으로는 박꽃도 놓칠 수 없는 꽃이다. 이런 꽃들은 밤새 꽃잎을 닫고 아침에 반짝 펼쳤다가 한낮에는 꽃잎을 오므리는 나팔꽃과는 개화 특성이 대비되기도 한다.
꽃밭에 가꾸는 분꽃이나 옥잠화는 여러해살이로 겨울은 잎줄기가 시들고 이듬해 뿌리에서 새잎 새순이 돋아 꽃을 피운다. 달맞이꽃은 야생화로 들녘으로 나가면 어디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반면 박꽃은 농작물로 가꾸어 식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요즘 재배 농가를 보기가 쉽지 않다. 조롱박은 관상용 터널을 조성하기도 하나, 그 경우는 꽃이 아닌 열매를 보기 위함이다.
일전 김민철 기자의 달맞이꽃 칼럼을 읽다가 나는 자꾸 어릴 적 봤던 ’박꽃‘이 떠올랐다. 여름날 저녁 마당에 모기를 쫓는 풀을 태우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대나무 평상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었다. 사랑채와 이어진 두엄간 초가지붕으로 넝쿨을 타고 오른 박이 하얀 꽃을 피웠다. 그 꽃이 저물어 덜 여문 박은 나물로 먹고, 단단해지면 톱으로 잘라 바가지로 삼아 썼다.
장맛비 속에 주중 수요일 이른 아침 우산을 펼쳐 쓰고 길을 나섰다. 근교 들녘으로 나가 달맞이꽃을 만나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여름날 저녁 마당 모깃불 연기 속에 / 박각시 찾아오는 밤이면 피던 박꽃 / 초가집 사라졌으니 그 꽃마저 못 본다 // 세월이 흐른 만큼 달라진 산천 풍경 / 한여름 들녘 들길 화사한 달맞이꽃 / 지난날 박꽃 추억을 아슴푸레 살린다” ’달맞이꽃에서‘ 전문이다. 2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