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업계 온-오프라인 혈전 끝나나
오프라인 총공세에 온라인서점 무릎
결사항쟁 다짐했던 예스24·와우북은 이미 백기
교보, 영풍, 종로 등 대형 오프라인 서점들의 `도서정가제 입법추진`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온라인 서적할인 판매업체들이 한국출판인회의의 도서공급중단 결정에 끝내 무릎을 끓었다. 온라인 서점업계 수장격으로 결사항쟁을 외쳤던 예스24와 와우북은 지난달말 한국출판인회의에 온라인 할인판매 중단의사를 밝혔다. 오프라인 대형 서점들과의 대립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서적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출판사들에게 밉보였다간 영원히 이 바닥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 하지만 알라딘·북스포유·인터파크·크리센스 등 몇몇 온라인 할인 판매서점들은 한국출판인회의에 결코 승복할 수 없다는 마지막 저항에 나섰다. 이들은 출판인회의가 제시하는 판매방식을 따르지 않고, 독자 판매방식을 고수해서라도 서적 할인판매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도서정가제 파문으로 시작된 온라인·오프라인 일대 혈전의 결말이 보이는 서점업계를 돌아봤다.
글 유화설 hiafrica@ssyber.com
사진 안일권 pt999@ssyber.com
조은희 goodhee@ssyber.com
출판인회의 온라인에 극약처방
인터넷 서점 예스24 yes24.com와 와우북 wowbook.com이 최근 도서정가제에 승복하겠다고 백기를 들면서 그 동안 도서를 할인해 판매하던 온라인 서점업계가 사실상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최근 한국출판인회의가 도서를 할인판매하고 있는 온라인 서점 측에 책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의함에 따라 `도서정가제의 존폐`에 대한 갈등은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온라인 서점 측은 도서정가제가 폐지돼야한다는 주장이고, 출판인회의 측은 도서정가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9월 7일 교보문고는 국내 주요 출판사가 모인 자리에서 "출판사들이 겉으로는 정가제를 내세우면서도 인터넷 서점들에는 할인판매를 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그 대안으로 자사 온라인 서점에서의 할인판매를 고려 중"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에 따라 출판인회의측은 자구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9월 9일, 문화관광부와 손을 잡고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 입법을 예고했다. 이 법안에는 발행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책을 할인 판매할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온라인 서점들은 "정가제 의무화는 시장경제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의 갈등은 점차 관련업계로 확산돼 이해를 같이하는 업체들과 정부부처까지 가세한 블럭을 형성해 집단적인 갈등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온라인 서점들은 인터넷기업협회를, 오프라인 서점들은 출판인회의를 각각 응원군으로 끌어들여 힘겨루기 싸움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 이런 와중에 지난 10월 27일 한국출판인회의는 ▲도서는 출판사가 표시한 가격으로 판다 ▲마일리지는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배송료는 각 사의 판단에 맡긴다 등의 영업원칙을 지키는 온라인 서점에게만 책을 공급한다고 통보했으며 이를 지키지 않는 인터넷 서점 업체에게는 도서 납품을 일절 허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예스24에 도서공급이 끊긴 것은 지난 10월 23일부터. 하루에 1만5000권의 물량을 소화해내는 예스24로서는 크나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 예스24는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책공급이 끊긴지 일주일만인 10월 30일 사이트에 공지를 내걸고 `도서정가제`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고객에게 알렸다. 한국 인터넷 서점의 대표를 자임하며 도서정가제 반대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던 예스24가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만 것. 그간의 거센 저항의 몸짓이 일순간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와우북의 경우 예스24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와우북은 지난달 인수한 오프라인 서점 골드북을 함께 운영하는 입장이라 온라인 서점 측의 입장만을 완강하게 고집할 순 없었던 처지. 실제로 와우북의 김일희 실장은 "골드북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도 끝까지 버텼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예스24와 와우북은 "그들에게 맞설만한 대응방법이 없어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이며 "보다 나은 서비스와 이벤트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고 답했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스24와 와우북이 일단 빠져나갔지만 할인판매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마저 꺼진 것은 아니다. 알라딘·북스포유·인터파크·크리센스 등 9개의 온라인 서점들은 11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도서공급중단 조치에 대해 "정가제라는 명목으로 도서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기존 서점의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며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또 "한국출판인회의와 합의하지 않은 출판사의 책의 출고를 막는 것은 경쟁을 제한하는 부당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할인판매제를 고수하겠다는 이들 업체들은 "워낙 출판 유통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든지 책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복안을 밝혔다. 출판유통의 동맥을 잡고 있는 거대 조직과 맞서 게릴라전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온라인 서점들이 불과 일주일만에 손을 든 것과는 달리 이들이 법정 투쟁까지 불사하겠다며 강력하게 맞대응 하는 것은 충분한 협의도 없이 출판인회의가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aladdin.co.kr의 조유식 사장은 "판매방식은 당사자인 온라인 서점이 판단할 사안이지, 출판사가 특정방식을 강요할 순 없는 일"이라며 "그런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행동"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출판인회의측의 재반격도 만만치 않다. 한국출판인회의의 유통대책특별위원회의 이승용 위원장은 "도서를 할인해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들 때문에 전국 오프라인 서점들의 생존권이 위협 당하고 있다"며 "할인판매는 오히려 독점기업의 등장을 초래해 가격인상을 야기 시킨다"고 주장해 서로의 극명한 입장차이의 합일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보 막강 파워 유감없이 발휘?
온라인 서점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마치 온라인 서점과 한국출판인회의와의 대립구조를 띄는 것 같지만 사실상 오프라인 서점의 맹주인 교보문고와 온라인 서점 업체와의 싸움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예스24의 월매출액이 인터넷 교보문고의 매출액을 따라잡게 되자, 급기야 온라인 서점들에 위기의식을 느낀 교보문고가 온라인 서점을 견제하기 위해 움직인 결과라는 얘기다. 그러나 교보문고의 위성계 전략기획실장은 "국내 서점계의 최고 위치에 있는 우리를 흠집내기 위한 모함"이라고 이러한 소문을 단호히 부인했다. 실제로 온라인 서점 측이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서에는 `교보문고가 담합했다`는 내용의 문구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위 실장은 "이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시정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 측 역시 "교보문고가 출판사에 돌린 `온라인 서점에 책을 공급할 경우, 매장에서 책을 빼겠다`는 공문을 증거로 갖고 있다"며 교보문고 측의 반론을 일축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들은 출판인회의측에 보낸 공문을 통해 "모든 서적에 대한 할인 판매율을 10%로 제한한 것은 그 동안의 협상 내용을 모두 무시한 일방적인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한국출판인회의 측은 "온라인 서점들이 그 동안 자신들의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처럼 최후통첩을 통해 판매방식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양진영간의 힘겨루기는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책에 명시된 도서정가는 저자와 출판사의 계약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인터넷 업체나 할인마트가 할인해서 판매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한 온라인 서점 측 역시 "한국출판인회의가 도서정가제를 강제하기 위해 납품을 거부하고, 서적 도매상에 출판사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책 출고를 막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에 해당한다"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