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틈새
장마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을 칠월 둘째 목요일이다. 날이 밝아오니 어제 아침 강한 강수대가 형성되어 비를 뿌렸던 장맛비는 그쳐 하늘이 흐렸다. “벼 포기 불려가는 논바닥 들여보고 / 지렁이 싫다 않고 우렁이 더 좋아라 / 모가지 길게 빼고서 먹잇감을 겨눈다 // 첫새벽 먹이 삼켜 든든히 채운 속이 / 반나절 못 넘기고 또다시 허전해 와 / 하루해 저물기 전에 논두렁을 살핀다”
앞 인용절은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보내는 시조로 ‘백로 한 끼’라는 제목을 붙여 카톡으로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했다. 아침 일찍부터 근교 들녘으로 나가 보내는 일과 중에 흔히 보는 여름 철새가 백로다. 어제는 빗속에 이른 아침 근교로 나가 들녘에 피는 달맞이꽃을 찾아 글감으로 생활 속 남기는 긴 글과 시조를 한 수 남겨두었다. 나는 어디든 길을 나서 걸어야 글감이 생긴다.
이른 아침 소답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타고 회사나 비닐하우스로 나가는 부녀들 틈에 끼어 근교로 향했다. 아침에는 집을 나설 때 등산지팡이를 준비해 정류소 근처 조경수에 가려서 숨기다시피 기대 놓고 떠났다. 그걸 지니고 근교 들녘 일터로 출근하는 이들에 보여주기는 결례가 될 듯해서였다. 지팡이는 나중 점심 이후 오후에 나설 산행에서 필요해 미리 확보해 두었다.
마을버스가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으로 향하니 시야에는 장마철 특유의 옅은 운무가 낀 풍광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주남저수지를 비켜 간 신등마을에서 내렸다. 거기는 고등포와 상등 장등과 함께 ‘등’자 돌림으로 된 지명이 나온 마을이었다. 시골 초등학교가 있는 신등과 나란한 신동마을로 향했다. 신등과 이웃해 뒤늦게 형성된 촌락이라 ‘신촌’이나 ‘새마을’이라는 뜻의 신동이었다.
농가와 인접한 창고를 겸한 소규모 공장이 있는 마을을 지났다. 텃밭으로 가꾼 작물로 꽤 긴 이랑에 심은 참깨는 꽃을 활활 피웠다. 고추도 주렁주렁 달린 열매가 붉게 착색이 되어 갔다. 주남 일대 들녘의 토질은 어디나 기름져 벼농사가 잘 되지만 집 근처 짓는 밭농사 작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콩은 잎이 무성해 멱을 따주었고 넝쿨로 나가 맺어진 열매는 늙은 호박으로 여물어갔다.
마을 어귀는 낮에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원 시설이 나왔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농촌이면 유아원이 있을 농촌 마을이 우리는 요양원이 흔했다. 골목을 지나도 적막하기만 해 아이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마당에 뛰노는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덮친 고령화는 농촌은 물론 도시도 구도심 주택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국가적 재난이라 앞날이 몹시 걱정된다.
마을에서 다시 들녘으로 나가자 논에는 백로들이 먹이를 찾다 내가 다가가자 나래를 펼쳐 사라졌다. 녀석들이 떠난 논바닥엔 우렁이가 더듬이를 드러내 기어 다녔다. 아까 떠난 백로가 먹이로 삼는 우렁이였다. 신동에서 가촌을 거쳐 가술로 가니 장터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채소와 생선을 펼쳤다. 오전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국수로 이른 점심까지 해결하고 시내로 복귀했다.
소답동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아침에 둔 등산지팡이를 찾아 짚었다. 시내를 관통해 안민터널을 앞둔 사거리에서 내렸다. 성주사 수원지 아래 자동차 정비 사업장을 지니니 제2 안민터널 입구였다. 상수원 수원지 댐을 거쳐 성주사 경내에서 불모산으로 가는 등산로로 들었다. 산행 들머리에서 멧돼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손에 쥔 지팡이는 호신용으로 전환해 주변을 경계했다.
소나무들과 섞여 자란 활엽수가 우거진 숲을 거닐었다. 계곡 너럭바위는 어제 내린 장맛비로 불어난 물이 소리를 내면서 흘렀다. 숲 바닥에 영지버섯이 자랄까 봐 참나무 고사목 그루터기를 유심히 살폈는데 한 무더기만 찾음에 그쳤다. 산마루를 넘어 불모산동 저수지로 나가 버스 종점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귀가 전 동네 카페에서 꽃대감 친구를 만나 한담을 나누다 왔다. 24.07.11
첫댓글 논고동 참 오랫만에 봅니다
어릴 적 추수 후 논바닥 구멍에서 찾아낸 논고동은 크기가 작았더랬는데 ~
근래는 양식을 해 식자재로 쓰거나, 무논에 풀어 키워 제초제 대용으로 삼드군요.
물속에 기어 다니는 광경을 보니 더듬이가 달린 달팽이가 가는 모습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