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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은 의인의 삶 (잠2-114)
2024년 5월19일 (주일)
찬양 :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본문 잠24:15-16절
☞ https://youtu.be/GM-ZZGPMbtY?si=w8JPIZ_-E4uwBHaq
거룩한 주일 아침 오늘도 주님을 예배하며 더 깊이 알기를 원한다. 진실로 내겐 후반전 주님과 더 깊은 교제와 주님의 이끄심을 받는 시간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있다. 주님 ~ 당신을 예배합니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27번째 선인들의 교훈이 나온다. 15-16절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메시지 성경으로 다시 읽는다.
<선한 사람의 삶을 방해하지 말고 그를 이기려 들지 마라. 아무리 쓰러뜨려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오래 넘어져 있지 않고 다시 일어나며 악한 사람은 넘어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의인의 삶을 악인들이 아무리 건드려도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니 건드림이 무익하고, 오히려 자신이 친 덫에 자신이 걸려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인 즉 선한 사람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적 선언처럼 들려진다. <방해하지도 말고 이기려 하지 마라>는 유진피터슨 목사의 번역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려진다. 방해할 수도 이길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아멘. 아멘. 아멘.
삶이란 자리를 살아가면서 <악인>의 방해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 악인들 때문에 의인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악인>이 방해는 할 수 있어도 이길 수 없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의 싸움은 악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다. 아니 의인의 삶이란 넘어짐을 통해 더욱 빛이 나는 삶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의인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를 지키시기에 결코 패배할 수 없는 삶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처럼 혹여 이 땅에서 의인이 피를 흘리며 끝나는 것 같아도 그것은 끝나지 않으며 다시 더 강력하게 일어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아멘.
어제 주일을 준비하는 날인데 올해 부모님 산소를 가 뵙지 못해 일찍 산소를 다녀왔다. 물을 준비해서 산소를 씻어드리고, 주변의 풀을 뽑고, 산소 앞에 난 가시나무들을 다 제거하고 왔다. 정돈된 모습이 감사이다.
부모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다시금 어머님의 신앙을 몸에 새기며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내 몸이 안 하던 일을 하니 몸살이 났다. 그래도 주일 예배 말씀을 준비해야 하기에 잠시 쉬고 다시 말씀을 준비하느라 밤늦게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신다.
너무 당연한 일이고, 그저 부모님 산소를 돌보는 아주 미약한 일도 이렇게 하고 나면 몸살이 나는 것이다. 의롭게 산다는 것, 분명 육체적으로 방해를 받고, 정신적으로 방해를 받으며, 또 환경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되고, 효도가 되고, 축복이 된다. 마찬가지로 의로운 삶, 선한 삶이란 자리는 그렇게 악인의 시기와 방해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이기에 결코 패배할 수 없다. 다윗의 고백이 생각난다. 시23: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의인의 삶은 악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란 사실을 깊이 묵상하는 아침이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하시는 길임을 믿고 이 길 끝에서 만날 주님을 기대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걸을 수 있는 의인의 삶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의인인가? 악인인가?
이 둘을 가르는 지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이 기준이 된 사람인가? 에 달려있다. 진정한 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신이 기준이 된 선하다는 착각에 빠진 인간의 삶이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일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가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며 그가 악이란 생각하는 것에 대해 벌일 그 무서운 싸움들이 인류의 잔인한 역사를 만들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스스로 착하다는 사람의 특징은 용서가 없다. 누구보다 잔인하다. 그리고 자신이 기준이기에 자신을 향한 잣대는 한없이 용서한다. 선한 일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내 안에도 이런 마음들이 있다. 내겐 무한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흠집 하나도 결코 용서하지 않는 그런 무서운 죄성이 ~
주님이 하셨던 말씀 <네 안에 들보를 빼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너무도 쉽게 넘어지는 존재이며, 내가 공정하며 진실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가 진정한 선인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깊이 다짐한다.
오늘도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서 내가 마치 선한 것처럼 누군가를 정죄하는 듯한 태도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겸손히 바로 내가 죄인임을 알고 그저 주님의 말씀앞에 겸손히 서서 그 앞에 반응하는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을 따르는 의인의 삶을 기억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축복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성경적 진실을 알게 하시고 내가 선할 수 없음을 알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은 의인으로 겸손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내 의지와 감정과 경험과 지식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아는 그런 종이 되어 오직 주님을 전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사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라마나욧선교회 충주지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